[크리틱] 어떤 배신 / 김영준

한겨레 입력 2021. 1. 22. 14:26 수정 2021. 1. 2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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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블레이크의 기이한 생애를 잘 요약하기는 힘들다.

블레이크의 정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알려져 있다.

블레이크는 외국인으로 영국에 왔고, '케임브리지 5인조' 같은 상류계급 출신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블레이크 자신의 말, "속한 적이 없으니 배신이 아니다" 역시 수치스럽게도 그와 정확하게 같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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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김영준 l 열린책들 편집이사

조지 블레이크의 기이한 생애를 잘 요약하기는 힘들다. 어머니는 네덜란드인이고 아버지는 이집트 출신의 유대인이었다. 그는 성년이 된 후에야 영국에 처음 가보았다. 영국 정보부 요원이 되었다. 한국전쟁 초기 서울에서 체포되어 3년간 북한군 포로 생활을 했다. 복직한 뒤 소련을 위해 이중간첩 노릇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영국 사법사상 최장기 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거짓말처럼 소련으로 탈출했다. 어느 날 소련이라는 나라가 사라진다. 뒷날 그는 인터뷰에서 후회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고 했다. “배신하려면 먼저 거기에 속해야 한다. 나는 (영국에) 속한 적이 없다.” 이 유명한 말은 영국의 민족적, 사회적 편협성에 대한 고발로 여겨졌다. 그는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타계했다.

블레이크가 소련으로 ‘편을 바꾼’ 시기와 동기는 여전히 추측의 대상이다. 그가 정말 북한 포로 시절에 세뇌가 된 것인지(본인은 부정한다)의 미스터리는 그 자체로 흥밋거리지만 여기서는 생략한다. 스파이로서 블레이크의 최대 업적은 동베를린 지하에 미국과 영국이 땅굴을 파서 몰래 설치한 감청시설을 소련에 알려준 것이다. 덕분에 소련은 이 시설을 계획 단계에서부터 알고 있었지만, 완공 후 1년 넘게 운용되도록 모르는 체하고 있었다. 블레이크의 정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알려져 있다.(그런 문제에 관한 한 러시아인들에 대한 신뢰가 별로 없던 동독 정보부장 마르쿠스 볼프는 다른 동기를 제시한다. 러시아인들은 첨단 미국 통신장비를 노획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충분히 기다린 러시아인들은 1956년 터널을 ‘발견’한다. 충격적인 망신을 당한 영미 정보부가 내부의 ‘두더지’(배신자)를 자력으로 찾는 데 얼마나 걸렸을지는 알 수 없다. 1961년 ‘두더지’에 대한 정보를 손에 쥔 폴란드 정보장교가 서방에 망명하면서 블레이크의 운은 끝난다.

블레이크는 외국인으로 영국에 왔고, ‘케임브리지 5인조’ 같은 상류계급 출신도 아니었다. 케임브리지 5인조는 소련에 충성한 배신자라는 점에서는 같았으나, 운이 좋았는지 당국이 죄를 물을 의지가 없었는지 한 명도 제대로 형을 살지 않고 유유히 소련으로 잘 빠져나갔다. 반면 아무 배경이 없는 블레이크에게 선고된 42년형은 대중에게 어처구니없는 느낌을 주었다. 작가 존 르카레의 말은 어떤 일반적인 정서를 요약한 것이다. “나는 필비(5인조의 한 명)를 아주 싫어하지만 블레이크에게는 동정심을 느낀다. 블레이크 같은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들이 봉사하는 사회계급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이런 말이 블레이크에게 큰 위안을 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 그는 비주류 출신이니 이해해줘”가 당사자에게 좋게 들릴 수 있는 경우를 상상하기는 힘드니까. 그렇지만 블레이크 자신의 말, “속한 적이 없으니 배신이 아니다” 역시 수치스럽게도 그와 정확하게 같은 말이었다. 그건 설명이라기보다는 ‘양해의 말씀’에 가까웠다. 확신범이라면 딱히 하지 않아도 될 얘기였다.

오늘날 필비나 버제스 같은 ‘5인조’의 인물들은 영화나 다큐멘터리의 인기 있는 소재가 되었다. 그 인기는 아버지 세대에 반항하는 록스타에 대한 선호와 비슷한 점이 있다. 이들이 개인으로서 비정치적인 매력을 획득한 것, 블레이크는 그렇지 못한 것, 그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필비와 버제스는 자신을 배신자라고 인정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도 않았고 정당화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마 그래서 그들은 좋게든 나쁘게든 개인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었나 보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배신자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어느 보호막 뒤에 서 있기를 선택한 인생에게 그런 출구는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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