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없거나 무료할 때 각자가 시간을 소비하는 방법이 다소 다르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인터넷 시대에서는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 플랫폼을 동해 별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영상들이 중요한 ‘킬링타임 콘텐츠’로 떠오른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등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온라인 영상 콘텐츠 소비는 우리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바쁜 일상에도 2020년 우리의 온라인 동영상 하루 평균 시청 시간은 1시간30분을 넘었다.

최근 동영상 콘텐츠 중 브이로그, ASMR, 먹방 콘텐츠는 ‘본능자극 영상 콘텐츠(Instinct Stimulus Video Contents)의 메이저 장르로 꼽힌다. 이번 글에서는 ‘먹방’이 왜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외국인들은 먹방을 어떻게 생각하며 보는지, 국가의 성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다 같이 식사하는 습관에서 더욱 활성화된 ‘나홀로 먹방’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은 일상의 인사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안부를 물어볼 때,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말이나, 고마움을 표현할 때 “나중에 밥 한번 살게” 라는 말이나, 상대의 행동이 탐탁치 않을 때 “정말 밥맛 떨어진다”는 표현도 이러한 사례일 수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는 가족들이 다같이 식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가족을 다른 말로 식구, 즉 ‘같은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같은 조직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친밀하게 칭할 때 식구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인기를 얻고있는 ‘홀로 먹방’ 영상이 ‘다같이 식사하는’ 습관 때문에 더욱 활성화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일지도 모른다. 2009년경 아프리카 TV 플랫폼을 통해 처음 등장한 먹방은 개인방송 시장에 주요 장르로 자리잡았고 유튜브로 그 영역을 확장하며 현재까지 가장 인기있는 테마로 꼽힌다.
초기 먹방은 체중 감량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는 다이어터들이 고열량 음식을 많이 먹는 크리에이터들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마이너 콘텐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싱글족 가구형태가 증가하고, 코로나19로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면서 혼밥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일상적인 먹방을 찾아보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초기 먹방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인기를 끌었다면, 요즘 먹방 트렌드인 Vlog 먹방은 카테고리별로 차별화해 직장인 여성의 먹방, 단란한 신혼부부의 먹방, 돈독한 자매의 먹방 등 ‘보통의 일상적인 모습 속 먹는 행위’를 보여준다. 유튜버와 구독자 사이의 친밀감, 유대감 등을 토대로 하는 콘텐츠 중 하나인 Vlog는 함께 식사하는 느낌을 줄 수 있어서 혼밥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적합한 콘텐츠로 여겨진다.
‘Mukbang’이 흥행하는 또 다른 나라는?

2016년 미국 CNN이 먹방을 함께 식사한다는 의미의 ‘소셜 이팅(Social Eating)’으로 소개하면서 ‘Mukbang’은 글로벌한 콘텐츠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먹방의 세계화가 시작됐다. 2018년 미국의 디지털 문화 전문 매체인 와이어드는 “먹방은 국경 없는 문화 유전자이며, 이제 주류 문화로 성장했다”고 소개했다.
영국, 일본, 스페인, 호주 등 세계 언론에서도 먹방을 사회적 이슈로 다루기 시작했다. 미국의 여성 패션잡지인 코스모폴리탄의 한 기자는 현재 미국 유튜버들 사이에선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먹는 먹방 문화가 생겼다며 먹방을 소개했고,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먹방을 ‘푸드 포르노(Food Porn)’라고 언급하며 음식을 먹는 행위나 만드는 과정을 자극적으로 전달해 식욕을 이끌어내는 행위가 마치 인간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포르노와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고 분석했다.

세계 1위 유튜버인 퓨디파이(PewDiePie)가 먹방을 소개하는 영상은 900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캐나다와 스페인 등 해외 유튜버들이 올린 불닭볶음면 먹방은 2000만 조회수를 넘기기도 했다. 일본 유튜버 ‘키노시타 유우카’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먹방러(Mukbanger)로 유명한데, 크지 않은 체구를 가진 아주 평범한 모습의 이 유튜버는 매 콘텐츠마다 평균 5000kcal가 넘는 양의 음식을 먹으며 보는 이의 놀라움을 자아낸다. 먹는 행위에 ASMR(자율 감각 쾌감 반응)을 접목한 형태, 즉 먹는 소리를 자세히 들려줌으로써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콘텐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
먹방은 2016년경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카메라 앞에서 많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통해 구독자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동시에 평소에 보지 못했던 지역 음식에 대한 궁금증이 인기를 더욱 증폭하게 만들었다.. 먹방의 전성기 때는 영상당 조회수가 백만 회 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었다. 팔우로수가 4000만명이 넘는 슈퍼 먹방 인플루언서들이 각 플랫폼에 존재했다.
하지만 먹는 행복과 즐거움을 나누는 먹방의 원래 취지와 달리, 중국에서의 먹방은 더 많은 구독자와 영상 조회수를 달성하기 위해 과한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로 변질했다. 심지어 먹고 나서 음식물을 다시 토하거나 먹는 동시에 뱉는 등 촬영 각도를 이용한 조작이 생기기도 했다. 먹방 인플루언서가 과식으로 입원하거나, 폭음 폭식으로 건강을 해치는 모습들로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자 중국 당국은 2020년 하반기부터 과식 먹방 콘텐츠를 각 플랫폼에서 단속하고 있다. 올해 4월29일 ‘반음식낭비법’이 반포되는 등 음식낭비 행위를 단속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러시아는 ‘Sulbang', 술을 매개체로 한 스토리 속 감정이입

러시아에도 전형적인 먹방 콘텐츠가 있지만 시청률은 매우 미비하고, 대신 술을 매개체로 한 술 토크쇼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바 앤 더 시티’ (‘Бар в большом городе’)’는 다양한 세대의 유명인들이 출연해 칵테일을 마시고 다양한 게임을 하면서 최근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토크쇼다. 매번 다른 세대, 장르, 가치관의 유명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이 영상을 보고 있으면 같은 바에 앉아 스타들과 대화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 (‘Зашкварные истории’)’ 채널에서는 호스트와 게스트(스타)들이 아파트 내부 같은 아늑한 스튜디오 테이블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출연진들이 때로는 술을 마시면서 그들의 삶에서 부끄러우면서 재미있고 기억할 만한 장면을 회상하며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베땨는 술을 좋아해’ (Петя любит выпить)’는 러시아에서 인기있는 유튜브 방송인데, 술과 함께 친근한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꾸려진다. 배우, 가수,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등이 게스트로 나온다. 호스트인 Petya는 게스트에게 직접 오리지널 칵테일을 만들어 제공하며 진행하는데, 이들이 술을 마시며 진행하는 생생한 토크쇼는 코로나19 이후 대면 모임이 금지되면서 기억이 흐릿해진 친구들과의 친밀한 대화를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해 인기가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술토크 콘텐츠 인기에 대한 해석을 단순히 ‘러시아인이 술을 좋아한다’는 선입견이 아니라 솔직하고 가식없는 대화에 대한 선호라는 측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콘텐츠에 대한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킬링타임 콘텐츠를 마케팅에서 똑똑하게 활용하려면
코로나19 이후 ‘킬링타임’ 콘텐츠가 인기를 누리면서 이를 마케팅 채널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먼저 나라마다 이런 콘텐츠에 대한 반응이나 선호하는 포인트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처럼 먹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먹고 마시는 것을 매개체로 한 콘텐츠 내 스토리가 인기의 요소인 경우도 있다.
킬링타임 콘텐츠를 마케팅에 활용하고자 하는 경우, 첫째 그 나라의 유튜브 등 인기있는 소셜 콘텐츠 분석은 필수적이다. 각 국가별 소비자가 반응하는 본능자극 영상 콘텐츠 요소 분석이 필요하다. 이는 데스크 리서치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같은 장르의 콘텐츠라도 나라마다 반응하는 포인트와 인기의 정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둘째는 국가별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먹방의 경우 식문화 습관이나 기피하는 식재료 등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각 국가의 미디어 환경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베트남의 경우는 인터넷 환경이 불안정해 가정에서도 대부분의 콘텐츠 소비를 모바일로 하고 있다.
또 세계적으로 Z세대들의 킬링타임 콘텐츠 소비가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역시 대부분 모바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공유하고 있다. 미디어 소비환경은 콘텐츠 제작 시, 콘텐츠의 길이(시간)와 화면 구도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계적으로 Z세대들의 숏폼(short form) 콘텐츠 소비가 급증하는 현상을 고려할 때 짧은 콘텐츠를 연재 형식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가벼운 킬링타임 콘텐츠들도 지속적으로 시청하게 되면 기업의 이미지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최근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자극적인 콘텐츠로 일시적 흥미를 끄는 것도 전략일 수 있으나, 미디어 환경의 변화, 디바이스의 발전, 국가별 성향 차이 등을 고려해 세심히 기획한다면 킬링 타임 콘텐츠들도 브랜드 가치를 높여 갈 수 있는 중,장기적 전략 툴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조지윤 ㅣ 디자인 조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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