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즌 기다린 이화연의 눈물, 차세대 트로이카는 전멸… LPBA 개막전 8강 대진표 완성

당구 역사에는 종종 '때를 기다린 자의 반란'이 등장한다. 우리금융캐피탈 LPBA 챔피언십 16강이 막을 내린 20일,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은 그런 장면 하나를 오롯이 목격했다. 프로당구 출범 원년부터 코트를 지켜온 이화연이 무려 8시즌 만에 생애 첫 투어대회 8강 진출을 이뤄냈다. 기쁨과 안도, 그리고 긴 세월의 무게가 뒤섞인 그 순간은 화려한 스코어나 하이런 수치보다 훨씬 강렬하게 팬들의 가슴에 남았다. 반면 새 시즌의 주역으로 기대를 모았던 차세대 트로이카 정수빈·한지은·박정현은 단 한 명도 8강 문턱을 밟지 못한 채 대회장을 떠났다. 기대와 좌절이 교차한 개막전 첫날, 21일 펼쳐질 8강의 그림이 완성됐다.

프로당구 LPBA가 처음 출범한 것은 2019-20시즌이다. 이화연은 그 원년 멤버 중 한 명으로, 리그가 태동하던 시절부터 코트를 함께한 산증인이다. 그러나 리그의 역사가 쌓이는 동안 이화연의 개인 성적표에는 늘 '32강 이하'라는 한계선이 그어졌다. 8시즌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매 시즌 개막전 때마다 반복된 좌절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코트로 돌아온 의지의 총합이다.

16강전에서 이화연은 김보경을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했다. 수치만 봐도 압도적이었다. 애버리지 1.435, 하이런 10점. 커리어 하이 수준의 샷감을 발휘하며 어떠한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경기를 펼쳤다. 8년을 기다린 선수의 집중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은 퍼포먼스였다.

이화연의 8강 진출은 개인의 감동 서사로 끝나지 않는다. 이번 대회 8강 대진표는 지난 시즌 우리금융캐피탈 챔피언십 8강 멤버들과 비교할 때 김가영을 제외한 7자리가 모두 바뀌었다. 차유람, 최지민, 이신영, 권발해, 최혜미, 임경진, 황민지가 일제히 본선을 통과하지 못하며 새 얼굴들로 채워진 대진표는 LPBA 판도 자체가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화연의 8강은 그 재편의 상징이자 방점이다.

새 시즌 개막 전부터 LPBA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이름들이 있었다. 정수빈(NH농협카드), 한지은(에스와이), 박정현(하림). 이 세 선수는 기량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차세대 주역으로 평가받으며 '트로이카'라는 수식어를 달고 시즌을 맞이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정수빈과 한지은은 대회 초반에 이미 짐을 쌌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박정현도 16강에서 일본의 베테랑 히가시우치 나쓰미(크라운해태)에게 세트스코어 2:3으로 역전패하며 탈락했다. 박정현과 히가시우치의 경기는 풀세트까지 가는 대접전이었다. 5세트 1이닝에서 히가시우치가 하이런 8점을 꽂으며 퍼펙트 큐에 도전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압권이었다. 마지막 1점을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이후 침착하게 득점을 마무리하며 8강 진출을 확정했다.

박정현의 탈락으로 세 선수 모두 개막전 8강을 밟지 못하게 됐다. 팬들 사이에서는 "성장통", "이르다"는 평가와 함께 "왜 하필 개막전부터"라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그러나 에디터의 시각에서 이 결과는 단순히 실망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세 선수 모두 아직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개막전 탈락 자체보다 탈락 후 무엇을 남기느냐가 시즌 전체를 좌우할 변수다. 히가시우치처럼 베테랑 선수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풀세트 접전에서 살아남는 장면을 직접 체감한 것은 분명 값진 자산이 될 것이다.

LPBA는 최근 몇 시즌 동안 '여제' 김가영의 절대 강세와 소수 탑랭커 중심의 질서가 유지돼 왔다. 그러나 이번 개막전 8강 대진표는 그 구조가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관건은 이 흔들림이 일시적 이변에 그칠지, 아니면 새로운 질서의 서막이 될지다. 트로이카가 개막전 탈락이라는 쓴 경험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 시즌 후반 그림이 달라질 수 있다. 팬들은 이미 다음 대회를 기다리고 있다.

16강에서 가장 안정적인 경기를 펼친 선수를 꼽으라면 역시 김가영(하나카드)이다. 김다희를 3:0으로 제압한 내용을 보면, 1·2세트 모두 7:7, 8:8의 박빙 상황에서 뱅크샷으로 마무리하며 집중력의 차이를 증명했다. 3세트에서는 2이닝째 하이런 6점을 폭발시키며 순식간에 10:3까지 달아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애버리지 1.375로 지난 시즌 개막전 우승 당시의 컨디션이 새 시즌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김가영의 8강 상대는 이유주다. 이유주는 이지연1을 3:0으로 완파하며 2023-24시즌 개막전 이후 3시즌 만에 8강에 복귀했다. 당시 이유주는 그 개막전 8강에서 김가영에게 0:3으로 패한 뒤, 이후 세 시즌 내내 32강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하는 긴 침체기를 보냈다. 이번 8강 복귀는 그 침체를 스스로 끊어낸 결과다. 과거의 패배를 딛고 같은 상대를 다시 만나는 이 구도는 개막전 8강 중 가장 드라마틱한 맞대결로 손꼽히기에 충분하다. 통산 전적 4승 1패로 김가영이 우세하지만, 절치부심한 이유주가 그 1패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가 최대 변수다.

용현지(웰컴저축은행)도 주목할 선수다. 한슬기를 3:0으로 완파하며 2년여 만에 8강에 안착했다. 1세트 11:6, 2세트 11:4, 3세트 11:3으로 내용과 결과 모두 깔끔했다. 김보미와 이화연의 제4매치, 서한솔과 히가시우치의 제3매치는 모두 공식 전적 0승 0패의 첫 맞대결이다. 특히 8시즌 만의 8강 진출이라는 감격의 기세를 몰아 이화연이 김보미(NH농협카드)의 벽까지 허물 수 있을지, 당구 팬들의 시선이 고양 킨텍스로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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