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으로 태어나 자랐더라도 남성호르몬 많으면 여성이 아니라고? [스프]

안혜민 기자 2024. 8. 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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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뉴스] 데이터로 보는 올림픽과 성2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1편에서는 파리올림픽에서 '성별 논란'으로 이슈가 되었던 복싱 경기에 대해 정리해 봤습니다.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남성호르몬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여성 스포츠에서 배제된 선수들의 이야기도 살펴봤는데요, 2편에서는 호르몬 규제에 대한 입장 차이를 데이터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 입장 1. 남성이 갖는 이점, 여성은 갖고 있지 않다

지금부터는 호르몬 규제를 두고 대립하는 각각의 입장을 뒷받침할 데이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주요 스포츠 협회들의 입장입니다. 이들은 여성들 사이의 스포츠 경쟁에서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높은 선수들은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남성이 여성보다 더 우월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 신체 조건이 발현되도록 하는 테스토스테론 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 기준에 맞춘다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라든가 남성과 여성 두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간성(인터섹스) 선수는 여성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됩니다.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문을 하나 가져와 봤습니다. 2020년에 발표된 논문인데 제목은 <스포츠 여성 부문의 트랜스젠더 여성: 테스토스테론 억제와 경기력 향상에 대한 관점>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엘리트 수준의 스포츠 선수들을 비교해서 남성 선수의 기록이 여성 선수보다 얼마나 더 높은지 분석해 봤어요. 아래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조정, 수영, 달리기의 경우 10~13% 정도의 성적 격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요 종목 가운데 이 세 종목이 가장 편차가 적은 종목들이었어요. 반면 필드하키에서 사용되는 드래그플릭 같은 기술이나, 야구에서 공을 던지는 경우는 남녀 격차가 50% 이상 나는 것으로 분석됐죠. 20% 이상의 격차를 보인 종목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상체를 특히 많이 사용하는 분야나 기술들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 여성이 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하면 남성의 운동 우위 능력이 사라질까요? 이 논문에서는 남성 사춘기를 겪으면서 얻은 근육과 힘의 우위는 호르몬 요법을 시행해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 논문을 바탕으로 세계럭비협회 격인 월드럭비(WR)에서는 여자부 국제 대회에 성전환 선수 출전을 전면 금지시켰죠.

지난 3월에는 위 논문을 작성한 학자가 또 하나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번 연구에서도 남성 사춘기 시절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으로 인해 발현된 신체 특성에 집중했습니다. 연구진들은 논문을 발표하면서 최근 IOC의 성전환 선수의 여성부 출전 정책이 공정성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죠.

다만 이 논문은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XY염색체를 갖고 있거나,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나오는 등의 성 발달 차이를 갖고 있는 간성 선수에 대해서는 논의하고 있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근육량과 힘의 우위가 실제 스포츠 경기 내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아요. 단지 근육량이 늘고, 힘이 좋으니 경기력도 좋게 이어질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3월에 발표한 논문은 월드럭비 등 일부 스포츠 협회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논문이기도 합니다.
 
Q. 여성 종목에 대한 주요 협회들의 규제 상황은 어떤가요?

위의 논문들을 기준으로 주요 스포츠 연맹들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선수들과 간성 선수들을 여성부 경기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일단 2015년에 IOC에서 기준으로 내세웠던 테스토스테론 농도 10nmol/L는 일부 연맹에선 4분의 1 수준(2.5nmol/L)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국제수영연맹과 국제사이클연맹이 대표적이죠. 국제수영연맹은 또한 2022년부터 12세 이후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경우엔 여성부 출전을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국제크리켓평의회도 사춘기 이후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경우에 금지하고 있고요.
 

🔴 입장 2. 여자로 태어나 자랐는데... 남성호르몬 많으면 여자 아니라고?

이번엔 호르몬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이들은 일단 정말로 테스토스테론이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게 맞는지부터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번엔 2015년에 의학물리학자 조애나 하퍼가 발표한 논문을 가져와 봤는데요. 조애나 하퍼는 본인 스스로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이기도 합니다. 또한 달리기 선수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성전환 이후 경기를 뛰어보니 성적이 생각보다 더 많이 하락해서 그 호기심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하퍼는 트랜스젠더 피실험자 8명을 대상으로 성전환 전후 달리기 속도를 비교해 봤습니다. 분석해 보니 성전환 여자 선수들의 기록은 다른 여자 선수들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습니다. 일단 레이스 기록을 단순 시간으로 비교해 보면 남성일 때보다 여성일 때 레이스 기록이 훨씬 느리게 나왔고요. 아래 그래프(좌)를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의 시간이 늘어납니다. 즉 남성성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다는 거죠. 연구에 참여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30세 이상이고 성전환 이후엔 나이를 더 먹은 만큼 나이를 보정해 등급(우)을 만들어 수치를 비교했는데도, 차이는 미미했습니다.


다만 이 연구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표본이 너무 적어요. 연구에 참여할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를 골라내기에 너무 수가 적을 뿐 아니라, 그중에서도 달리기 선수인 트랜스젠더를 골라내야 하니... 하퍼가 피실험자 8명을 모으는 데 걸린 시간이 무려 7년입니다. 게다가 분석 대상이 장거리 육상 경기에 한정되었다는 것 역시 이 연구의 한계점이죠.

전통적인 여성과 다른 여성을 골라내기 위해 여태껏 여성 스포츠계에서는 다양한 검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과거엔 눈으로, 또 어느 때엔 염색체로, 최근엔 호르몬 검사까지 이어지고 있죠. 하지만 생리학자들은 인간의 성별은 단순히 생식기, 염색체, 호르몬만으로 딱 떨어지게 구분지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물학적 성은 사실은 다양한 변수들의 집합체거든요. 성염색체, 호르몬, 외부 생식기뿐 아니라 내부 생식 구조, 생식선들이 다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성을 규정합니다. 단순히 성 염색체가 XX면 여성, XY면 남성이 아니라는 거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각각의 성 표준에서 벗어난 변수들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남녀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간성도 사실 적지 않습니다. UN에서는 인구의 최대 1.7%가 양성 영역에 속해 있는 간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추정하고 있을 정도거든요.

전문가들은 테스토스테론이 실제 스포츠 경기 내에서 이득을 가져다주는지 정확하게 검증도 되지 않았고, 우월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경쟁에서 원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 자랐는데 평균치 이상의 테스토스테론이 나온다고 여자 경기에 출전 금지한다는 조치는 너무나 큰 차별이라는 거죠. 비정상적으로 긴 팔을 갖고 태어났고, 발목과 팔목에 이중 관절을 갖고 태어난 펠프스를 공정한 경기를 위해서 제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랑 마찬가지라는 거죠.
 

스포츠에서 공정함은 무엇인가?

데이터를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스포츠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또 연구진들 사이에서도 꽤나 입장이 갈리는 모습입니다. 태생적으로 양성의 특징을 갖고 있는 간성 선수의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려운 문제인데... 여기에 후천적으로 성별을 선택한 트랜스젠더 선수까지 포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셈법은 더 복잡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 판단 기준을 정하는 데 있어서 과연 스포츠에서 공정함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모든 참가 선수의 이름으로 우리는 진정한 스포츠맨십과 팀의 명예를 위하여 경기 규칙을 준수하고 약물과 부정행위 없이 오로지 경기에만 전념할 것을 서약합니다.

패럴림픽 선수 대표가 하는 선서의 내용입니다. 패럴림픽에서는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선수들이 오로지 경기에만 전념해 선의의 경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양쪽 팔이 없는 선수도 장애 등급이 같다면 경추 장애를 갖고 있는 선수와 함께 탁구 경기를 치루기도 하죠. 패럴림픽에서는 장애의 영역은 다르더라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서로 같은 등급이라면 함께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 나오지 않으려면 공정한 등급 분류 기준이 필요할 겁니다. 과거보다 미래엔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은 트랜스젠더 선수들과 간성 선수들이 스포츠 경기에 참여할 수 있는 만큼 공정한 규칙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복싱 논란이 커지면서 논란을 얻어 탄 정치인들의 목소리와 일부 인터넷 여론 속에는 혐오와 배제의 감정이 가득했습니다. 함부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규정지으려 했던 사람들이 많았죠. 여기엔 부끄럽게도 저도 일부분은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혜민 기자 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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