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는 2030년에 무엇을 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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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행사다.

무엇이 가장 놀라웠나 묻는다면 많다. 디아블로5도, 스타크래프트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포에버도 놀랍다. 짐작은 했으나 확신하지 못했고, 추측은 했으나 정확하진 않았다.

과거의 블리즈컨에서도 새로운 타이틀은 공개됐다. 각 타이틀의 프로듀서와 디렉터가 무대에 올라 순차적으로 프로젝트를 공개했고, 현장에서는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과거의 블리자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공개할지언정, 그것이 언제 출시될 것인지까지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준비가 되었을 때 출시한다(When It's Ready)'는 블리자드의 오랜 기조였고, 한편으로는 높은 완성도를 보장하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번 블리즈컨에서는 가장 뜨거운 두 작품, '디아블로5'와 '스타크래프트'가 출시 연도를 공개했다. 그것이 2029년이고, 2030년이라는 것 보다 블리자드가 그 숫자를 입 밖으로 꺼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다.

발표 이후 수많은 게이머는 함께 공개된 숫자, '2029'와 '2030'에 주목했다. 게임업계에서는 개발사가 스스로 정한 일정조차 맞추지 못하고 출시를 연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직 3년, 4년이나 남은 게임의 출시 시기를 벌써 선언했다는 사실에 우려가 뒤따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과거를 반추해 보면, 사실 3~4년이라는 시간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2019년에 공개된 디아블로4는 당시 출시일을 밝히지 않았고, 약 4년 뒤인 2023년에 출시됐다. 2008년 처음 공개된 디아블로3 역시 약 4년이 지난 2012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공개부터 출시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린 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출시 연도를 약속하지 않았고, 이번에는 약속했다는 것뿐이다.

이 차이를 생각하고 나니, 조해나 패리스 대표가 그리고 있는 블리자드의 윤곽도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흔히 황금기로 회자되는 2010년대의 블리즈컨은 블리자드가 그간 쌓아온 금자탑 위에서 열리는 잔치였다. 블리자드는 수많은 게이머의 사랑을 쌓아 드높은 무대를 만들었고, 그 위로 팬들을 초청했다. 당시의 블리자드는 분명 '특별한' 게임사였고, 다른 게임사들과 구분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블리자드는 과거의 블리즈컨을 받쳐주던 것과 같은 확고한 현재를 갖고 있지 않다. 마이크 모하임의 사퇴 이후 수년간의 혼란기를 거치며 블리자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점차 모호해졌다. 리더십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프로젝트가 흔들렸으며, 회사의 소유 구조까지 달라졌다. 여전히 블리자드를 사랑하는 게이머는 많지만, 10년 전과 지금의 블리자드는 분명 다르다.

조해나 패리스 대표는 그 부족한 현재 대신 프레임을 미래로 옮겼다. 블리즈컨을 앞두고 진행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We want to convey confidence in some of our biggest bets coming forward.”

“We’re a Blizzard that’s going to ship, and ship big, and ship on time, and all hands on deck to set those projects up for success.”

“앞으로 내놓을 우리의 가장 큰 승부수들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의 블리자드는 게임을 출시하고, 크게 출시하고, 제때 출시하는 블리자드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으고 있다.”
- 조해나 패리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대표
어쩌면 이것이 블리즈컨 2026의 본질이다.

기존의 블리즈컨이 블리자드가 이룬 성과를 나누고 축하하는 자리였다면, 올해의 블리즈컨은 한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낸 블리자드가 자신에게 남은 신뢰의 상당 부분을 미래에 베팅한 거대한 선물 거래에 가깝다. 스스로 수년 뒤의 미래에 가격표가 아닌 날짜를 붙였고, 팬들에게 그 약속을 믿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모든 선물 거래가 그렇듯, 성공한다면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지만 위험도 크다. 약속한 시기에 게임을 내지 못하거나, 제때 내놓았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지금 블리자드가 걸어둔 신뢰는 다시 깎인다. 수많은 게이머가 개막식의 약속을 바라보며 기대와 함께 불안함을 내비친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과거의 블리자드라면 '블리자드니까'라는 말만으로 어느 정도의 기다림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블리자드는 이미 적지 않은 신뢰를 소진했고, 팬들 역시 여러 차례 실망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이번에 내건 약속은 결코 가볍지 않다.

블리즈컨 2026은 조해나 패리스 대표의 거대한 출사표다.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고 누구도 확신하기 어려운 게임의 출시 시기를 선언했고, 그 숫자에 자신감을 실었다. 그 자신감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스스로 "출시하고, 크게 출시하고, 제때 출시하겠다"고 말한 이상 이제 블리자드는 그 말을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해나 패리스 대표가 말하는 ‘미래’는 단순히 몇 년 뒤 출시될 게임의 목록만을 뜻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번 블리즈컨에서 스타크래프트는 익숙한 RTS의 틀을 벗어났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포에버’라는 새로운 방향을 꺼내 들었다. 여기에 게임 밖으로 IP를 확장하려는 미디어믹스까지 더해졌다.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지금의 팬들만을 바라보기보다 블리자드의 이름이 닿는 범위를 넓히려는 시도로 읽힌다.

결국 블리자드가 약속한 미래는 단순히 게임 몇 편의 출시가 아니다. 약속한 게임을 약속한 때에 내놓는 것, 그리고 그 게임을 통해 지금보다 더 넓은 팬층을 만들어내는 것까지가 함께 묶여 있다.

너무나 많은 것이 걸려 있다. 팬들의 기대, 조해나 패리스 대표의 리더십, 그리고 블리자드의 미래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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