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 보증을 서 달라고 하면 거절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피를 나눈 사이에 도장 하나 못 찍어 주느냐는 말이 가슴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증이라는 도장은 정이 아니라 빚을 나누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서류가 날아오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충북 청주에 사는 한정희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서른 해 가까이 육거리 시장 근처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했습니다. 파마 한 번에 몇만 원 하던 동네 미용실이었지만, 정희 씨의 손끝은 소문이 나서 멀리서도 단골들이 찾아왔습니다.
미용실은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기도 했습니다. 파마를 말고 앉아 있는 두세 시간 동안 며느리 흉, 손주 자랑, 아픈 무릎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희 씨는 가위를 놀리며 그 이야기들을 묵묵히 들어 주었고, 그래서 단골들은 정희 씨를 '원장님'이라 부르며 친언니처럼 따랐습니다.
남편 이상훈 씨는 공기업에 다니다 퇴직한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부는 미용실 수입과 남편 월급을 알뜰히 모아 청주 시내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고, 두 딸을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큰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사는 것이 부부의 행복이었습니다.

남편에게는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 상철이 있었습니다. 상철은 어려서부터 형을 잘 따랐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 저 일 손을 대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형에게 손을 벌리곤 했습니다.
상철이 처음 손을 벌린 것은 결혼 직후였습니다. 전셋집 보증금이 모자란다며 천만 원을 빌려 갔고, 그 뒤로는 식당을 차린다며, 화물차를 산다며 몇백만 원씩 가져갔습니다. 남편은 그때마다 "동생이 잘되면 갚겠지" 하며 아내를 달랬고, 정희 씨는 속이 상해도 남편 얼굴을 봐서 참았습니다.
7년 전 어느 날, 상철이 동서 미란과 함께 부부를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업을 해 보겠다며 물류 창고를 차린다고 했습니다. 은행에서 5천만 원을 대출받으려는데 보증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형님, 형수님.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이번엔 정말 자신 있습니다. 대출금은 제가 매달 꼬박꼬박 갚을 테니, 도장만 찍어 주시면 됩니다."
남편은 망설였습니다. 그동안 동생에게 빌려준 돈만 해도 수천만 원이었고, 돌려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이미 다른 대출 때문에 보증을 설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상철의 눈길이 정희 씨에게로 향했습니다.

"형수님이 대신 서 주시면 안 될까요. 미용실 하시니까 소득 증빙도 되잖아요."
정희 씨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옆에서 "여보, 이번 한 번만 도와주자. 동생이 저렇게까지 하는데" 하며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남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정희 씨는 결국 은행에 가서 연대보증 서류에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미용실 단골이던 은행원 출신 할머니가 언젠가 해 준 말이 떠올랐습니다. "원장님, 보증은 절대 서지 마. 보증 서는 사람은 돈 빌려주는 게 아니라 빚을 사는 거야."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간절한 눈빛의 남편 앞에서 정희 씨는 끝내 고개를 젓지 못했습니다.
은행을 나서며 상철은 정희 씨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형수님, 오늘은 제 인생의 운수 좋은 날입니다. 이 은혜 절대 안 잊겠습니다." 그날 저녁 상철 부부는 고깃집에서 한우를 사며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별 탈이 없었습니다. 상철은 명절마다 과일 상자를 들고 찾아왔고, 사업이 잘된다며 새 차를 뽑았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정희 씨는 보증 선 일을 점점 잊어 갔습니다.

그러다 4년 전, 남편 상훈 씨가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상철은 형의 영정 앞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형님, 제가 형님 몫까지 형수님 잘 모시겠습니다."
그러나 장례가 끝나고 몇 달이 지나자 상철의 발길은 뚝 끊겼습니다. 명절에 오던 과일 상자도, 안부 전화도 사라졌습니다. 정희 씨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겨 그런 변화를 크게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혼자서 미용실 문을 닫고, 딸들의 도움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남편 49재 날에도 상철은 오지 않았습니다. "사업 때문에 지방 출장 중이라서요"라는 문자 한 통이 전부였습니다. 정희 씨는 혼자 절에 앉아 남편의 위패를 바라보며, 문득 그 보증 서류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 애써 고개를 저었습니다.
보증을 선 지 7년째 되던 올해 봄, 정희 씨의 집 우편함에 법원 도장이 찍힌 누런 봉투가 꽂혀 있었습니다. 봉투를 뜯는 순간 정희 씨는 현관 앞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채무자 이상철의 대출금 연체에 따라 연대보증인 한정희에게 원금과 연체이자 합계 6천2백만 원의 지급을 청구합니다. 아울러 보증인 소유 부동산에 대한 가압류를 신청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정희 씨는 떨리는 손으로 상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전화는 꺼져 있었습니다. 동서 미란에게도 걸어 보았지만 신호만 가다 끊겼습니다. 몇 번을 다시 걸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날 밤 정희 씨는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평생 일궈 온 집이었습니다. 미용실 의자에 서서 하루 열 시간씩 가위를 잡으며 모은 돈으로 산 집이었습니다. 그 집이 시동생의 빚 때문에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연락을 받고 달려온 큰딸 수진이가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상철의 사업은 2년 전부터 기울기 시작했고, 1년 넘게 대출금을 한 푼도 갚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은행은 그동안 여러 차례 독촉장을 보냈지만, 주소가 바뀐 탓에 정희 씨에게는 한 통도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수진이가 혹시나 해서 작은엄마 미란의 SNS를 찾아보았는데, 불과 한 달 전 동남아 리조트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수영장 앞에서 칵테일을 들고 활짝 웃는 상철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엄마, 작은아빠는 지금 놀러 다니고 있어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갚을 생각이 없는 거예요." 딸의 말에 정희 씨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 영정 앞에서 형수님을 모시겠다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다음 날, 정희 씨는 딸과 함께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았습니다. 상담을 맡은 변호사는 서류를 살펴보더니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보증 채무는 일단 갚으셔야 합니다. 다만 보증인이 대신 갚은 돈은 주채무자에게 구상권, 즉 돌려 달라고 청구할 권리가 생깁니다. 그리고 채무자가 빚을 피하려고 재산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돌려놓았다면, 그것을 되돌리는 소송도 할 수 있습니다."
수진이는 그날부터 작은아빠의 재산을 하나하나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상철이 사업이 기울기 시작할 무렵, 자기 명의로 된 상가 한 칸을 아내 미란 이름으로 넘겨 놓았던 것입니다. 대출금 연체가 시작되기 불과 석 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정희 씨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우선 딸들의 도움을 받아 은행에 보증 채무를 갚아 집에 걸린 가압류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상철 부부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와 함께, 상가 명의를 되돌려 놓으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두 딸이 각자 모아 둔 적금을 깨서 엄마에게 보탰습니다. 작은딸 수아는 "엄마, 이건 빌려드리는 게 아니에요. 아빠가 지켜 주라고 한 집이잖아요"라며 엄마 손을 잡았습니다. 정희 씨는 딸들 앞에서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소장이 송달되자 그동안 연락을 받지 않던 상철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형수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가족끼리 소송이라니요. 형님이 하늘에서 보시면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정희 씨는 수화기를 꼭 쥐고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서방님, 형님 이야기는 꺼내지 마세요. 형님 장례식에서 저를 모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4년 동안 저를 모신 건 서방님이 아니라 은행 독촉장이었어요. 동남아 리조트 사진 잘 봤습니다. 이제 서방님 빚은 서방님이 갚으세요. 그게 형님 앞에 떳떳해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재판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상가 명의 이전이 빚을 피하려는 행위였다고 보고 원래대로 되돌리라고 판결했습니다. 결국 상철은 그 상가를 팔아 정희 씨가 대신 갚은 돈을 모두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마지막 돈이 통장에 들어온 날, 상철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습니다. [형수님, 죄송했습니다.] 정희 씨는 그 문자를 한참 바라보다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과는 받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남입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그날 저녁, 정희 씨는 미용실을 하던 시절 단골손님들과 함께 시장 골목의 오래된 칼국수집에 갔습니다. 소식을 들은 단골들이 축하해 주겠다며 모인 것이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지락 칼국수를 앞에 두고 한 단골이 말했습니다. "원장님,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두 다리 뻗고 주무세요."

현진건의 소설 제목 『운수 좋은 날』은 가장 운이 좋아 보이던 날이 사실은 가장 비극적인 날이었다는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상철이 '운수 좋은 날'이라 부르며 웃던 보증 서류 위의 그날은, 정희 씨에게는 7년 뒤 비극의 씨앗이 된 날이었습니다.
가족 사이의 보증은 정으로 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보증 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 그 빚은 내 빚이 됩니다.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지 말고, 법이 정한 권리를 당당하게 찾아야 합니다.
올가을 정희 씨는 큰딸과 함께 무심천 둑길을 걸었습니다. 가로수 잎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흩날렸고, 개천 물소리가 잔잔하게 흘렀습니다. 정희 씨는 남편과 함께 걷던 그 길에 서서, 오랜만에 깊고 편안한 숨을 내쉬었습니다.
출처 :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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