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정우영이 진짜 원하는 것.

2년 차 골프 동호인 J씨가 있습니다.
비거리가 고민이었던 J씨는 겨울 동안 비거리 관련 레슨을 받았습니다.
몇 차례 레슨 이후 드디어 ‘감’이 왔습니다.
갑자기 드라이버와 아이언의 비거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드라이버는 250m가량 나가기 시작했고, 아이언도 7번 미들아이언 기준 캐리(구른 거리를 제외한 랜딩까지 날아간 거리)로 160m 정도가 찍혔습니다. J씨는 자신만만했습니다.
앞으로의 골프 인생에 장밋빛만 가득할 것이라고 부푼 희망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봄이 되고 그의 부푼 희망은 산산이 깨졌습니다.
레슨 때 지켜봐 주는 스윙 코치 없는 상황에서 J씨는 힘만 잔뜩 들어간 스윙으로 일관했습니다. 첫 두 홀 정도에서는 그래도 그럭저럭 선방을 했지만 이후 샷은 완전히 난사가 됐고 거리도 레슨 전으로 줄었습니다. 오히려 레슨 받기 전보다 더 줄었습니다.
이후 배웠던 이미지대로 아무리 해도 그 ‘감’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겨우내 함께 했던 스윙 코치마저도 다른 연습장으로 이직을 했고 J씨는 갈 길을 잃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스윙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습니다.
새로운 스윙 코치는 J씨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거리에 집착하지 마세요. 몸은 매일매일이 달라요. 예전에 거리가 잘 나왔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건 그때의 이야기고요. 기본을 만들고 오늘의 몸에 스윙을 적응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J씨의 이야기는 프로 수준의 선수의 이야기가 아닌 한낱 동호인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J씨의 새로운 스윙 코치는 프로고요. 그가 해준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이 다를 수 있는 사람 몸에서 그날의 몸에 맞는 밸런스를 찾아야 한다는 점 말이죠.

2019년 11월 KBO 시상식, 신인왕 수상 당시의 LG 트윈스 정우영 <사진 OSEN>

KBO리그에 시속 155km를 던졌던 사이드암 투수가 있습니다.
2019년 신인왕이자 2022년 홀드왕이었던 정우영 선수입니다.
데뷔 시즌이었던 2019년, 16홀드에 1세이브까지 기록하면서 신인왕을 수상했던 정우영은 데뷔 이후 5년 연속 두 자릿수 홀드를 기록했습니.
투구폼은 빠르지 않았지만 투심 패스트볼이라는 장기 하나로 상대방을 요리했고, 특히 주자가 쌓여있는 상황에서도 장기인 투심을 통한 땅볼 유도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우타자의 몸쪽으로 마치 변화구처럼 꺾여가는 시속 150km 이상의 하드 싱커에 가까운 투심은 때로는 헛스윙을 유도하고, 때로는 땅볼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우리 리그를 대표하는 구종이었습니다.

LG 트윈스 정우영의 홀드왕을 차지했던 2022년 릴리스 동작 <사진 OSEN>

이랬던 그가 2024시즌에는 단 3홀드에 그쳤습니다. 사실 성적 하락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23년부터였습니다.
데뷔 이후 홀드왕을 차지하기 전까지 2할대 초반을 유지하던 피안타율이 2023년 3할에 육박하더니((2022년 0.230, 2023년 0.297) 2024년은 3할을 넘겼습니다(2024년 피안타율 0.344). 피장타율도 2023년부터 급격히 증가(2022년 0.306, 2023년 0.363, 2024년 0.411)했습니다.
신데렐라 같은 데뷔 이후 꽃길만 열려있을 것 같던 투수 정우영 선수에게도 시련이 닥쳐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우영 선수는 이 시련을 돌파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이미 여러 채널을 통해서 알려진 것처럼 그는 지난겨울에 미국의 야구 훈련소인, 트레드 애슬래틱스(이하 트레드)를 찾아서 훈련을 했습니다.

2024시즌 잠실 마운드에 오른 정우영의 투구 동작 <사진 OSEN>

사실 정우영 선수의 미국 훈련에 대해서 기대도 있었지만 우려도 컸습니다.
제가 가졌던 우려는 '사이드암 혹은 언더핸드 계열의 투수가 미국으로 가서 배우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점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걱정을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3년 전 마이애미의 피칭 랩에서 원태인, 소형준 선수와 함께 훈련했던 고영표 선수와 나눴던 '야구에 산다' 인터뷰에서 고영표 선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이 동작을 해야하는가와 세세한 부분에 대한 이론은 잘 배웠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미국에 언더핸드로 던지는 투수가 드물다 보니 코치들이 태인이와 형준이는 자세하게 봐주다가 제가 던지는 것을 보면서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지손가락만 한 번 추켜올렸어요. 그리고 코치에게 배웠던 동작들도 해보면 팔을 올려서 던지는 투수들에게 해당하는 동작이었고요.”
결국 2023시즌 초반 고영표 선수는 살짝 팔 각도를 올렸다가 특유의 무브먼트를 잃었고, 이강철 감독의 권유에 따라 다시 이전의 팔 각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해당 시즌 대성공(174.2inn, 12승 7패, 2.78 ERA)을 거두면서 대형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죠.

저는 현재 미국 애리조나의 LG 트윈스 캠프로 이동해서 훈련을 하고 있는 정우영 선수와 메신저를 통해 겨울 훈련지였던 트레드에서 중점을 두고 훈련했던 것이 어떤 점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제가 중점을 둔 부분은 구속향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저는 안심했습니다. 정우영 선수는 거리를 잃어버린 동호인 골퍼 J씨처럼 잃어버린 구속을 회복하기 위해서 미국을 찾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요. 2022년의 시속 155km(최고 시속 157km)는 2022년 정우영 선수의 몸과 밸런스에서 가능했다는 것을 정우영 선수는 이미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구속 증가에 중점을 두고 겨울 훈련을 하다가 부상이 올 수도 있는 부분에 대해서 고려를 했고요. 이곳 트레드의 장점은 구속 증가보다 피칭 아스널(구종 다양화)에 좋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1년 동안 피드백을 해주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래서 트레드를 선택했습니다.”

이영미 기자와 인터뷰 중인 LG 정우영 <유튜브 이영미의 셀픽SHOW 화면 캡쳐>

고영표 선수가 미국에서 겪었던 혼동(?)에 대한 우려는 없었을지도 궁금했습니다. 트레드에서는 언더핸드, 사이드암 계열의 선수들을 어떻게 보고 지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트레드의 코칭스태프들은 오버핸드, 사이드암, 언더핸드 투수들의 투구 메커니즘이 대부분 동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그건 저도 그렇다고 느끼고 있었거든요. 구속이 빠르고 잘 던지는 투수들의 폼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메커니즘은 다 일치한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더라고요.”

이영미 기자의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확인해 보면 팔 높이도 살짝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팔 높이의 경우는 제가 변화를 주고 싶던 부분이었습니다. 트레드의 코칭스태프들이 이전 영상과 2024년 영상을 확인했는데 제 팔이 이전보다 지난 시즌에 많이 내려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팔을 올리는 데에 중점을 뒀습니다.”

트레드 애슬래틱스에서 투구 훈련을 앞둔 LG 정우영 <유튜브 이영미의 셀픽SHOW 화면 캡쳐>

2022년 홀드왕을 차지하던 당시 정우영 선수는 온몸에 근육의 갑옷을 둘렀습니다. 그 근력을 바탕으로 구속 증가에 성공했죠. 그런데 올 겨울의 정우영 선수는 그 당시와는 다르게 살짝 슬림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체형변화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훈련소 다녀오고 의도적으로 체중을 조금 뺐습니다. 살을 뺀 이유는 그동안 제가 너무 근육에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몸무게를 조금 덜어내고 조금이나마 가벼운 몸으로 다시 공을 던지고 싶었다고 할까요?”

2019년 11월 KBO 시상식, 홀드왕 수상 당시의 LG 트윈스 정우영. 2019년과의 확연한 차이가 보입니다. <사진 OSEN>

지난 겨울, 트레드에서 함께 훈련을 했던 다저스의 글래스노와 정우영 선수가 함께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됐습니다. 신장이 190cm가 넘는 정우영 선수가 글래스노 옆에서는 마법처럼 작아졌거든요. 이렇게 미국의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 느낌은 어땠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거기서 많은 메이저리거, 마이너리거 선수들을 봤습니다. 미국 야구가 절대로 힘으로만 하는 야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습니다. 동양인들에 비해서 피지컬이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선수들이 기술까지 세세하게 분석해서 투구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 야구에 대한 동경심을 더 크게 가지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LG 정우영 선수가 다저스 글래스노와 함께 찍고 SNS에 올렸던 사진.

잠실야구장을 함께 홈으로 쓰지만 다른 라커룸을 쓰고 있는 두산 베어스의 사이드암 선발 투수 최원준 선수와는 같은 에이전시(리코 스포츠) 소속의 인연으로 이번 원정을 함께 했습니다. 같은 숙소를 쓰면서 많은 대화도 많이 나눴다고 하는군요.
“사실 개인마다 장단점들이 다 다르잖아요. 원준이 형과는 이번에 둘이 같이 등록을 했어요. 그러면서 코치가 얘기해준 걸 우리가 서로 봐줬죠. 배우면서 그렇게 하고 또 집에 돌아와서도 투구에 대해서 서로 많이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아무리 구속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훈련을 한다는 것은 이전 칼럼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투수의 팔에 무리가 가기 마련입니다. 트레드에서의 훈련이 혹시나 무리가 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정우영 선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시즌 끝나고 훈련소도 다녀오고 그동안에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일찍 왔지만 또 강도를 제가 조절해서 훈련했기 때문에 몸 상태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투구 동작에 대해 함께 피드백을 받고 있는 두산 최원준과 LG 정우영 <유튜브 이영미의 셀픽SHOW 화면 캡쳐>

과거 SBS스포츠에서 안경현 해설위원이 했던 이야기 중에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명언은 ‘야오이마이(야구 오래 이길 필요 없어요. 마지막에 이기면 돼요.)’가 아닙니다.
‘투수의 위력은 공만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다. 투수의 모든 것이 구위다. 서 있는 자세부터 투구 동작 그리고 공 자체까지. 그가 가진 모든 것이 구위가 된다.’
저도 이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스피드, 회전수 등의 데이터로 같은 특징을 가진 공이라고 해도 맞는 공이 있고, 타자를 잠재우는 공이 있습니다. 투수가 공을 잡고 던지는 순간까지의 ‘투구 동작’은 같은 공이라고 하더라도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정우영 선수가 이번 스프링캠프 이전 미국에서 담금질 기간을 가졌던 이유는 단순하게 시속 155km를 다시 던지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공을 던지기 위한 동작을 가다듬고 구종을 다양화하기 위해, 즉, 2년 전 염경엽 감독이 LG 트윈스에 부임한 이후 정우영 선수에게 강조한 ‘구종의 다양화(피치 아스널)’와 ‘빠른 투구동작(근육을 덜어낸 가벼운 투구)’을 실현하기 위해 트레드에서 훈련을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진행했던 여러 인터뷰에서 정우영 선수는 향후 미국 진출의 꿈에 대해서도 밝힌 바가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7년차를 맞이하는 2025시즌은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트레드에서 훈련 중인 LG 정우영 <유튜브 이영미의 셀픽SHOW 화면 캡쳐>

그나저나 골프 동호인 J씨는 이후에 어떻게 됐냐고요?
거리 욕심을 버리고 드라이버는 200m 안팎, 7번 아이언은 140m 정도를 보는 행복한 주말 골퍼가 됐습니다.
‘거리 욕심을 버리니 행복해졌다.’
J씨는 여기저기 이야기를 하고 다닙니다.
그가 LG트윈스의 홀드왕 출신 유명 투수와 이름이 같은 스포츠캐스터라는 것을 눈치 빠른 분이라면 다들 아셨을 테죠.

<SBS스포츠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