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시승] 카니발 vs 오딧세이, 최고의 미니밴은 누구?

CARNIVAL vs ODYSSEY

HOME SWEET VAN

모두가 카니발의 완승을 예상했다. 하지만 오딧세이는 한방이 있었다. 아주 강력하고 치명적인…

글 이현성 사진 이영석

자율주행 시대가 찾아온다면 도로 위 풍경은 어떻게 변할까? 우리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탐욕의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결국 네모난 모양의 MPV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운전으로부터 자유를 찾은 인간은 자동차의 최고 가치를 거주성에서 찾을 테니까. 그런데 자율주행 시대가 오기도 전에 MPV를 찾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일컬어 부모라고 부른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도 자식 앞에선 힘없이 바스라질 뿐이다.

섹시한 스포츠카와 멋들어진 세단, 위풍당당한 SUV조차 부모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오직 자녀에게 편안한 공간을 내어주는 미니밴만이 부모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들은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인공지능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그저 룸미러 속으로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만족할 뿐이다. 미니밴을 평가할 땐 더 높은 잣대를 들어야 하는 이유다. 그들의 희생정신을 배신하지 않는 상품성을 갖췄는지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출산율은 매년 바닥을 치지만 미니밴 시장 규모(정확히는 기아 카니발 판매량)는 줄어들 줄을 모른다. 2022년 카니발은 5만9058대 판매를 기록하며 국산차 시장에서 4위에 올랐다. 포터 2와 봉고 3을 제외하면 사실 2위나 다름없었다. 2023년 역시 5만8695대 판매로 4위를 차지했다. 올해는 기세가 더욱 대단하다. 1월부터 7월까지 5만1918대가 팔려 나가며 1위인 쏘렌토(5만7184대) 뒤를 바짝 쫓고 있다. 2024년이 5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 지난해 판매량의 85%를 훌쩍 넘어섰다.

하이브리드 모델이 등장하며 판매를 견인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기존 카니발의 파워트레인 선택지는 3.5 가솔린과 2.2 디젤 2가지였다. 판매량은 2.2 디젤이 월등히 높았다. 3.5 가솔린은 정숙성이 돋보였지만 한참 뒤처지는 연료 효율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다고 디젤은 사고 싶지 않아 카니발 구매를 아예 포기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았다. 기아가 카니발 판매 라인업에 하이브리드 추가를 마음먹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아의 전략은 적중했다. 지난 2023년 12월에 출시한 카니발 하이브리드는 2.2 디젤과 3.5 가솔린 사이에서 고민하다 구매를 져버린 이들의 발길을 돌려세웠다. 올해 1~6월 판매 자료에 따르면 카니발을 구매하는 소비자 중 하이브리드를 선택하는 비율은 52.9%에 달한다. 지금 당장 계약해도 빨라야 1년 뒤에나 받을 수 있다고. 과연 하이브리드 모델은 오랜 기다림 끝에 카니발 키를 손에 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카니발 하이브리드를 평가 무대 위에 올리고 장단점을 속속들이 살펴봤다.

보다 정확한 평가를 위해 비교 상대로 혼다 오딧세이를 함께 준비했다. 사실 판매량만 놓고 보면 오딧세이는 카니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미니밴의 상품성을 판가름할 때 오딧세이는 기준점으로 손색이 없다. 미니밴의 교과서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은 모델인 까닭이다. 올해로 출시 30주년을 맞이한 오딧세이는 1세대부터 남다른 상품성을 뽐냈다. 당시 프로젝트명은 전용기를 뜻하는 영어 ‘퍼스널 제트’의 첫 글자를 따 와 PJ로 지었다. 개발명에서 알 수 있듯 혼다는 도로 위를 달리는 전용기를 목표로 점찍었다. 구름 위를 거닐 듯 편안하면서 넉넉한 공간을 자랑하는 자동차를 꿈꿨다.

혼다는 우선 부드러운 승차감을 위해 앞바퀴굴림 중형 세단 어코드의 플랫폼을 가져와 바탕 삼았다. 사다리꼴 프레임 뼈대로 빚은 여느 MPV와는 떡잎부터 달랐다. 넉넉한 실내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 또한 주목할 만하다. 혼다는 기획 단계부터 오딧세이의 실내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를 120cm 이상으로 계획했다. 승차감과 주행 안정성을 위해 지붕을 마냥 높일 수는 없었다. 그보단 바닥을 파내 넉넉한 공간을 마련했다. 3열 시트를 차체 바닥 아래 숨은 공간으로 접어 넣는 아이디어는 혼다가 1세대 오딧세이와 함께 처음 선보였다.

이처럼 오딧세이는 고객의 사용 환경을 철저히 고려해 만든 미니밴으로 유명하다. 4세대 오딧세이부터 트렁크에 자리 잡은 진공청소기도 소비자를 깊이 배려한 대표적인 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이 먹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로 골머리를 앓는 아빠들이 진공청소기 하나만 보고 오딧세이를 구매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진공청소기는 2017년 5세대로 거듭난 오딧세이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아쉽게도 2021년 상품성 개선을 거친 부분변경 모델에선 진공청소기를 만날 수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19 여파로 공급 업체가 문을 닫았는데, 끝내 새로운 업체를 찾지 못하고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전용기의 가치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V6 3.5L 엔진은 시종일관 부드럽게 회전하고, 여기에 짝지은 10단 자동변속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기어를 오르내린다. 승차감은 어떤 미니밴과 비교해도 안락한 세단에 가장 가깝다. 노면 상태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포근한 실내공간을 약속한다. 여유로운 공간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더불어 좌우로 슬라이딩이 가능한 2열 시트는 공간 활용도를 높인다. 가령 2열 시트 2개를 한쪽으로 밀면 3열에 쉽고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 어린아이를 돌볼 때 가까이 붙어 앉을 수 있어 자세가 한결 자연스럽다.

편의장비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부족한 점을 쉽게 꼬집어 말하기 어렵다. 첨단 운전자보조 시스템 역시 빠짐없이 챙겼다. 충돌 시 안전은 ‘별 다섯 개’도 모자라다.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가 진행한 충돌 테스트에서 오딧세이는 가장 안전한 미니밴에 이름을 올렸다. 모든 충돌 테스트에서 최고점을 기록하며 ‘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 도장을 따냈다. 오딧세이의 특징을 살피다 보니 과연 미니밴의 기준, 교과서, 정석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와 닿았다. 지난 2018년 미국 소비자연맹이 발간하는 월간지 <컨슈머리포트>가 가장 만족스러운 10가지 자동차로 오딧세이를 꼽은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어쩐지 카니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괜히 오딧세이를 비교 상대로 데려와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미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하지만 카니발은 얼표정부터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거대한 라디에이터 그릴에선 호랑이의 기상이, 별자리에서 영감 받아 그린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에선 영험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덩어리 감을 강조한 차체 디자인은 대형 SUV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확실히 디자인은 출시 7년 차에 접어든 오딧세이보다 한 수 위다. 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마치 자동차 디자인 발전사가 머리를 스치는 듯했다.

실내 디자인 또한 마찬가지다. 수많은 버튼이 어지럽게 자리하고 있는 오딧세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깔끔하기 그지없다. 운전석에 오르면 완벽주의자가 말끔하게 정리정돈한 책상에 앉아 있는 듯하다. 덕분에 운전할 때면 집중력까지 오르는 기분이었다. 시동 버튼을 눌러도 공부방 분위기는 변함없었다. 새까만 파노라믹 커브드 디스플레이만이 화려한 색으로 물들며 출발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을 알린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정숙성도 좋지만 진짜 장기는 높은 연료 효율에 있다. 카니발 하이브리드를 기대한 이유도 연비 때문이었다. 오딧세이의 V6 3.5L 가솔린 엔진은 회전 질감은 물론 성능, 정숙성 모두 만족스럽지만 기름을 무섭게 들이마신다. 연료 게이지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카니발은 전기모터를 적극 활용해 연비를 높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엔진 숨을 수시로 죽이고 달려도 출력 갈증은 없었다. 최고출력 73마력, 최대토크 31.0kg·m 힘을 내는 전기모터는 육중한 덩치를 가볍게 견인했다. 기아에 따르면 카니발만을 위해 여느 하이브리드 모델보다 강력한 전기모터를 준비했다고.

엔진과 전기모터 힘을 합한 시스템출력은 245마력. 쭉 뻗은 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는 실력만큼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주행 경험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국도에서 과속방지턱을 만날 때면 다소 짜증이 밀려오기도 했다. 회생제동 시스템 때문이다. 브레이크 페달을 지긋이 밟아도 제동력을 선형적으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회생제동으로 속도를 줄이다 갑자기 캘리퍼가 디스크를 꽉 무는 현상이 반복됐다. 과속방지턱을 지나 다시 속도를 높일 때 엔진이 힘을 더하는 과정도 자연스러움이 덜하다. 요철을 지나면 예외 없이 뒤따르는 소음도 산통을 깬다. 뒤쪽 서스펜션이 충격을 미처 흡수하지 못하고 ‘쿵’하고 떨어졌다.

연비는 기대 이상이었다. 기름을 가득 채우고 200km 가까이 달린 뒤에도 연료 게이지 바늘은 여전히 F를 가리켰다. 계기판 속 연비는 17km/L였다. 같은 조건에서 오딧세이는 1L로 10.2km를 달리는 중이라고 알렸다. 도심 주행이 길어지면 연료 효율은 2배 가까이 벌어졌다. 총 400km를 달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오딧세이는 주유소를 들러야 했다. 카니발은 여전히 연료 절반 이상이 남아 있었다.

카니발 하이브리드의 장단점은 명확했다. 웅장하며 세련된 디자인과 풍족한 편의 및 안전장비, 집안 살림을 배려하는 살뜰한 연료 효율은 미니밴 시장의 ‘사기 캐릭터’라는 별명에 부끄럼이 없다. 하지만 무르익지 않은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고요한 실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승차감은 별점을 깎아내렸다. 국밥집에 빗대어 표현하면 카니발 하이브리드는 누구에게나 보통 이상의 맛을 보장하는 프랜차이즈다. 알찬 밑반찬 구성으로 가성비 역시 돋보인다.

오딧세이는 3대째 손맛을 잇고 있는 원조 맛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접근성이 떨어져 자주 가진 못해도 다시 한번 맛보면 ‘그래, 이 맛이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진한 국물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여자 친구를 데려가기엔 허름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가격까지 비싸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데엔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