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랑제도는
6세기 신라의 최전성기를 개창시킨
24대왕 진흥왕이
재위 후반기였던 576년 실시한
정책이었습니다.

진흥왕이 처음 화랑도를 실시했을 때는
우리가 아는 형태와는 많이 달랐는데
그 첫 명칭은 화랑이 아닌
‘원화’였습니다.

진흥왕은 젊은 인재 양성에
유독 관심이 많았고
귀족들의 의견을 모아
‘원화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진흥왕은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명의 여인을 뽑아 ‘원화’라고 불렀고,
이 원화에 임명된 두 사람이
남모와 준정이었습니다.
미모가 빼어나면
전국의 남성들이 많이 몰려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냥 얼굴만 이쁜 것이 아니라
왕족 혹은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도 높았고
정말 수많은 남성들이
남모와 준정에게 몰려들었습니다.

남모와 준정은
각자 하나의 세력을 만들어
젊은 남성들로 군대를 만들어
군사훈련도 하고,
같이 공부도 하고, 불교나 도교 등의
종교활동도 하면서
초창기에는 바람직한 교육제도로
작동했습니다.

그런데 점차 남모와 준정 사이에
경쟁심이 발동했는데
경쟁심이 갈등으로 번졌고
준정은 남모를 집으로 불러
술을 먹인 이후
강가에 던져 살해했습니다.

얼마 후 준정의 살인이 밝혀지자
분노한 진흥왕은 준정을 처형시켰고
원화제도를 철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