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등대’ 또 켜지나…두렵다, 갈아 넣는 노동
IT업계 ‘크런치 모드’ 부활 우려
꼼수 야근 여전…무노조도 많아
노동자들 “포괄임금부터 없애야”
게임회사 넷마블의 자회사에서 일하던 20대 직원 A씨가 2016년 11월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연사했다. 이듬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A씨의 노동시간은 살인적이었다. 발병 전에 주당 89시간을 일한 적도 있었다.이는 최첨단·미래 산업이라는 화려한 이미지의 게임업계 이면에 감춰진 관행인 일명 ‘크런치 모드’ 때문이었다. 크런치 모드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가 신작 출시를 앞두고 수면, 사회활동 등을 극도로 희생하며 업무를 몰아서 하는 ‘초장시간 근무’를 가리킨다.
12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최근 게임업체 직원들 사이에는 크런치 모드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1주일 단위로 돼 있는 연장근로시간의 칸막이를 터서 일이 몰릴 때는 1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한 뒤 나중에 많이 쉬게 할 수 있도록 제도 개편을 추진키로 했기 때문이다. 근무 유연화를 요구해온 게임회사들은 “개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일명 ‘판교·구로 등대’로 상징되는 고강도 초장시간 근무가 재현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 이는 게임업체가 몰린 이들 지역에서 밤새도록 건물의 불이 꺼지지 않는 모습을 빗댄 용어로, 동이 트도록 환하게 불을 밝히는 ‘오징어잡이 배’로도 비유된다.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52시간제가 정착되면서 게임업계의 노동환경은 개선되기 시작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게임사의 노동시간은 주당 평균 41.3시간으로 2년 새 5시간 줄었다. 크런치 모드 경험자 비율도 60.6%에서 15.4%로 감소했다. 이 때문에 주 52시간 근무제의 상한선이 높아지면 과로를 합법적으로 인정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게임업체의 60%가량이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는 30인 미만 사업장인 데다, 사측과 노동시간 등을 협상할 수 있는 노조가 없는 곳도 많다. 게임업체 직원 B씨는 “지금도 인터넷 접속을 꺼둔 채 일하는 등 꼼수 야근이 만연한데, 제도가 개편되면 대놓고 ‘열정페이’를 요구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다른 직원 C씨는 산업 특성상 장시간 노동을 막지 못한다면 포괄임금제라도 폐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노동을 비롯한 초과근무 수당을 월급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방식이다. 게임 노동자의 약 80%가 포괄임금제로 급여를 받고 있다. C씨는 “공짜 야근을 늘리는 포괄임금제만이라도 없애 추가 노동을 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신작 출시를 앞두고 1년 중 3개월가량 집중 근무를 하는 건 게임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며 다른 국가들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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