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죽기 전에 반드시 맛보고 싶다는 '흑백요리사' 돌풍의 비결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요리사 100인이 흑수저, 백수저로 계급을 나눠 대결을 펼친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12부작으로 10화까지 공개된 현재 8인이 살아남았고 한 명이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했다. 요리 서바이벌은 여느 서바이벌과는 다르다. 노래, 춤, 연주, 연기, 이와 같은 장르는 시청자가 보고 듣고 실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요리는, 특히 이번 <흑백요리사> 첫 번째 라운드처럼 오직 맛으로만 평가하는 경우, 심사위원이 맛있다면 맛있는 거고 맛없다면 맛없는 게 된다. 한 마디로 심사위원과 제작진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흑백요리사> 심사위원 백종원과 안성재의 진정성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미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다.
백종원이 2010년 즈음에 대중에게 알려졌는데 켜켜이 쌓인 세월 속에 방송을 통해 보여준 방대한 지식과 음식을 대하는 진심이 우리로 하여금 믿게 만든다. 재료의 조합이나 배합, 조리 방식, 음식에 관한한 이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또 시청자를 기만할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 또 다른 심사위원 안성재. 미슐랭 쓰리 스타라는 경력이 토를 달 수 없게 만든다. '한번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도전자는 흑수저 쪽의 '급식대가'인데 안성재 심사위원이 첫 번째 라운드에서 '급식대가'의 요리를 심사했다. '오늘 메뉴는 뭔가요?' 묻는 장면, 그리고 한 입 맛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식사를 하듯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바로 '심사위원 자격 있네', 인정했다.
100인에서 8인이 되기까지 불과 10화, 속전속결 질질 끄는 게 없는 빠른 전개다. 인기 비결은 바로 군더더기 없는 연출. 윤현준 PD 기획에 김학민, 김은지 PD 연출, 모은설 작가. 2010년경부터 이들의 작품을 쭉 지켜봐온 결과 쓸데없는 갈등 유발이나 화제성을 위한 장난질 같은 거 안 하리라는 믿음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참가자의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룬단다. 예약 불가인 곳이 태반이라고. 이 프로그램이 출연만으로도 엄청난 기회가 된 거다. 2012년 Olive 채널 <마스터셰프 코리아>가 불을 붙인 요리에 대한 관심, 그리고 2014년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많은 스타 셰프를 배출했는데 <흑백요리사>가 10년 만에 다시금 요리와 요리사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와 이번 <흑백 요리사>를 비교해보면 우리네 요리 수준이, 식문화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 있다. <마스터셰프 코리아>와 <냉장고를 부탁해>를 기점으로 요리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요리사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최혁석 셰프 같은 국내파의 약진, 성공이 더더욱 긍정적으로 작용했지 싶다. 방송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일이 아닐까?
첫 화에 80명은 흑수저로, 20명은 백수저로 소개되었을 때 계급을 나눈다는 점에서 '뭐지?' 했다. 다행인 건 한층 위에서 아래를, 흑수저 요리사들이 평가 받는 장면을 지켜보는 백수저 요리사들의 존중과 배려가 엿보이는 태도다. 백수저는 이미 명성을 얻은 이른 바 대가들이다. 대체로 수긍이 가는데 '선경 롱게스트' 만큼은 물음표가 생겼다. 외국 요리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데 요리를 대하는 자세를 볼 때 흑수저 자리도 아까운 수준이었으니까. 팀 대결 때 감자 삶는 걸 맡았는데 불에 얹어 놓은 채 까맣게 잊지를 않나, 감자 깎아서 삶아서 채에 내리는 거 하나 가지고 쉴 새 없이 툴툴거렸다. 반면에 흑수저 팀의 '급식대가'와 '이모카세 1호'는 테스팅 후에 다시 재료를 손질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군말 한 마디 없이 흔쾌히 바로 칼을 잡지 않았나.
또 한 사람, 정지선 셰프.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워낙 진상 사장으로 나오는 통에 갸웃 했는데 <흑백요리사>를 통해 실력을 입증했다. 레스토랑 미션에서 정지선 씨가 제안한 마라크림 딤섬이 시식단에게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나 또한 레스토랑 미션 요리 중에 딱 하나만 고르라면 마라크림 딤섬을 고를 거다.
마뜩지 않았던 점은 팀원 중 한 사람을 퇴출 시켜 또 다른 팀을 만드는 설정. 칼질이 예술이었던 안유성 셰프가 팀에서 제외되고 새로운 팀에 적응하지 못해 허둥지둥하는 모습,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러나 실제로 장사를 한다면, 경영자라면 이런 고민을 한번쯤은 하지 않을까. 싫긴 해도 현실적이긴 하다.
또 하나 아무리 넷플릭스라고 해도 욕이 툭툭 튀어나오는 부분, 아마 많이 편집을 했는데 그 정도일 거다. 그리고 나쁜 의도는 아니었으나 '이모카세 1호'님이나 '급식대가'님을 보고 '역시 이모님이네, 어머니가 계시니까'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같은 요리사 자격인데 왜 굳이 이모, 어머니라는 표현을 쓰는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언더독의 약진이다. 이번에 1등으로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한 '이탈리아 맛피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당분간은 예약이 어렵지 싶은데 '이탈리아 맛피아'의 리조또, 죽기 전에 맛보고 싶다. 쌀의 익힘 정도가, 안성재 심사위원 식으로 말하자면 '이븐'한지 아닌지 알고 싶어서.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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