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늘 분홍 물결로 뒤덮이던 길에 올해는 조금 늦은 봄 소식이 찾아왔다. 입춘 무렵 예기치 않게 불어 닥친 추위 탓에 꽃봉오리는 망설이는 듯하지만, 기다림조차 설레는 게 봄의 묘미다.
연인과 함께 걸으면 백년해로한다는 전설까지 더해져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 일대. 조금 늦게 피어난 꽃이 오히려 더 특별한 봄 추억을 선물할지 모른다.
하동 십리벚꽃길
하동의 대표 봄 명소로 손꼽히는 십리벚꽃길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약 6km 구간에 벚나무 1200여 그루가 길게 이어진다. 꽃길 위를 걸을 때 떨어지는 벚꽃잎이 마치 분홍빛 눈처럼 쏟아져 내려, 매년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올해는 계속된 추위로 인해 개화가 늦어졌지만, 꽃이 피는 순간부터 절정에 이를 때까지 거리는 한층 부드러운 봄기운으로 물든다. 봄의 전령을 만끽하기 위해 조금 더 늦게 찾아도 좋다는 게 이 길의 매력이다.
화개장터
벚꽃길의 시작점인 화개장터는 오랜 역사와 정취가 묻어나는 하동군의 대표 관광지다. 시골 장터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지역 특산물을 둘러보고, 간단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곳을 출발해 벚꽃 터널을 걷거나 드라이브하다 보면, 문득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축제 시기에는 웨딩 촬영 이벤트나 버스킹 공연, 걷기 행사 등이 열려 활기가 넘치지만, 꼭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다채로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흩날리는 벚꽃 아래에서 사진을 찍거나 장터에서 판매하는 지역 특산차를 맛보는 등 봄날만의 여유를 느껴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다.
쌍계사
화개장터에서 시작된 벚꽃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쌍계사는 천년 고찰로 유명하다. 고즈넉한 경내와 빼어난 주변 경관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역사를 동시에 체험하려 이곳을 찾는다.
특히 만개한 벚꽃길과 어우러진 쌍계사의 풍경은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경내 곳곳에서 바라보는 산자락과 꽃길은 눈에 보이는 모든 장면을 영화처럼 만들어 준다. 사찰 분위기를 조용히 즐기며, 잠시 멈춰서 봄바람이 전하는 향기를 음미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다.
주변 즐길 거리와 팁
하동 십리벚꽃길을 찾는다면, 인근에 자리한 녹차밭이나 섬진강 주변 카페에도 들러보길 권한다. 짙은 녹차 향이 퍼지는 차밭 풍경은 벚꽃과는 또 다른 여유를 선사한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방문할 경우, KTX나 시외버스 이용이 편리하다. 하동터미널에서 화개장터 방면 버스를 타면 벚꽃길 입구까지 쉽게 이동 가능하니 운전이 부담스러운 여행객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는 꽃이 아직 만개하지 않았더라도, 막 터지기 직전의 봉오리나 봉오리가 지기 시작하는 시기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낸다. 어느 순간에 방문하든 봄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하동의 벚꽃길은 작은 날씨 변화도 놓치지 않는 사람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여행지다.
한 해 중 단 한 번, 분홍빛 향연으로 빛나는 하동 십리벚꽃길은 해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입춘 한파나 날씨 변덕에 따라 조금씩 다른 타이밍에 피어나지만, 그 기다림마저도 봄의 설렘을 느끼게 하는 이유다.
조금 늦은 만큼 더 풍성하고 짙은 색감으로 피어나는 벚꽃 아래에서, 나만의 봄날 추억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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