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시절에는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았던 돈독한 친구 관계도 나이가 들고 각자의 처지가 달라지면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 65세를 넘기면 오랜 우정이라는 허울 뒤에 가려진 미묘한 서운함과 질투가 고개를 들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곤 한다.
내 이익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인맥을 유지하려 애쓰기보다 차라리 혼자가 낫다고 느끼게 만드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알아본다.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대화의 시작과 끝이 오직 자식의 대기업 취업, 손주의 명문대 입학, 혹은 부동산 자산 자랑으로 점철되는 순간이다.
오랜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다가도 매번 반복되는 은근한 무시와 과시 앞에서는 깊은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내 형편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본인의 우월감을 채우기 위해 나를 청중으로 이용하는 친구의 모습은 관계의 부질함을 깨닫게 만든다.

과거에 내가 베풀었던 수많은 물질적 도움이나 정신적인 위로는 까맣게 잊은 채 차 한 잔, 밥 한 끼 먼저 계산하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는 행동이다.
돈의 유무를 떠나 상대방에게 그만큼 대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묘한 비참함이 밀려온다.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계산대 앞에서 주춤거리는 친구의 모습은 정을 떨어뜨리는 결정타가 된다.

가장 믿었던 친구이기에 마음을 터놓고 고백했던 자식 걱정이나 가정사 같은 약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유행가 가사처럼 퍼뜨리는 경우이다.
앞에서 보여준 따뜻한 위로의 눈빛이 뒤에서는 단순한 가십거리와 안줏거리로 소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불행을 은근히 즐기는 듯한 타인의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차라리 입을 닫고 혼자 지내는 것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평소에는 연락 한 통 없다가 급한 돈이 필요하거나 자신의 집안 경조사가 있을 때만 살갑게 전화를 걸어오는 기회주의적인 태도이다.
오랜 친구라는 명분을 앞세워 무리한 요구를 당연하게 강요하고 목적이 달성되면 다시 싸늘하게 돌아서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해왔다는 자괴감은 노년의 인간관계에 큰 회의감을 심어준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명심해야 할 점은 내면의 평화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억지로 인맥의 끈을 붙잡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영양가 없는 모임에 집착하며 상처받는 것보다 스스로 고독을 즐기며 단단한 자존감을 갖추는 것이 훨씬 지혜롭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가진 것을 겸손하게 숨기며 나만의 시간을 건전하게 채워나갈 때 비로소 노년의 삶이 품격 있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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