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韓영화 거장의 만남...영화사에 길이남을 명작을 만들다

영화 '가능한 사랑' 리뷰: 거장이 던진 반성문이자 질문, 이 시대에 ‘사랑’은 과연 가능한가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품에 안으며 전 세계 영화계를 숨죽이게 한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수상한 지 24년 만의 베니스 본상 쾌거이자, 전작 ‘버닝’(2018) 이후 장장 8년 만에 내놓은 일곱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가 전폭적인 투자와 제작 지원을 맡고, 국내 극장 선개봉(9월 23일) 후 전 세계 스트리밍(11월 6일)을 앞둔 이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단순한 수작을 넘어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쓰게 만드는 기념비적인 걸작의 탄생을 알렸다.

영화는 대기업 집단 해고 사태로 생계의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 부부 호석(설경구 분)과 미옥(전도연 분), 그리고 이들의 투쟁과 일상을 기록하겠다는 명분으로 다가온 부유층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 예지(조여정 분)와 상우(조인성 분)를 축으로 전개된다.

언뜻 노동과 자본, 투쟁과 관찰이라는 선명한 대립 구도를 취하는 듯 보이지만, 이창동 감독은 이 익숙한 사회파 드라마의 문법을 순식간에 비틀어 인간 내면의 심연과 은밀한 욕망이 뒤엉키는 파격적인 심리극으로 전환한다.

164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단 한 순간도 놓아주지 않는 이 압도적인 긴장감은, 보이지 않는 계급의 격차 속에서 서로를 욕망하고 관음하며 종내에는 파열해 가는 네 인간의 초상을 섬뜩하리만치 예리하게 포착해 낸다.

카메라라는 폭력, ‘다큐멘터리’의 완성도 뒤에 숨은 예술의 위선

‘가능한 사랑’의 가장 탁월하고도 서늘한 지점은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이라는 메타적 설정을 통해 예술가와 카메라의 윤리를 정면으로 해체한다는 데 있다.

다큐 감독 예지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고 연대하겠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내세운다. “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려는 거야”라는 그녀의 독백은, 그러나 카메라가 돌아가는 렌즈 뒤편에서 기만적인 이중성으로 변질된다.

영화의 완성도와 극적인 리얼리티를 확보한다는 핑계로, 카메라는 호석과 미옥 부부의 비루한 사생활과 가장 감추고 싶은 치부까지 가차 없이 침범해 들어간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미학화하는 예술인의 위선, 그리고 대상화된 피사체가 느끼는 미묘한 굴욕감은 화면 안팎의 공기를 팽팽하게 옥죈다.

이는 영화의 모티프가 된 실제 사회적 해고 사건과 투쟁 현장의 리얼리티와 겹쳐지며 묵직한 윤리적 질문을 파생시킨다.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통해 카메라 밖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적나라한 권력 관계와 사리사욕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과연 예술이라는 숭고한 명분은 타인의 삶을 전시하고 재단할 권리를 부여하는가. 영화 속 카메라는 실화 사건 속 상처 입은 인물들에 대한 예술인으로서의 진지한 고찰인 동시에, 평생 타인의 삶을 빌려 영화를 만들어온 이창동 감독 본인이 자신을 향해 헌사하는 처절한 반성문처럼 다가온다.

이러한 메타 영화적 장치는 단순히 지적인 유희에 머물지 않는다. 관찰자와 피사체라는 위치, 혹은 지식인 부르주아와 소외된 프롤레타리아라는 사회적 위치는, 어느 순간 서로를 향한 은밀하고 불온한 시선으로 확장된다.

흔히 말하는 ‘불륜’이나 치정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들의 교차된 욕망은 단순한 육체적 유혹이 아니다.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타자의 결핍과 온기, 혹은 우월감과 죄의식이 뒤섞인 위험한 갈증이다. 서로 다른 계급적 좌표에서 발현된 이 기묘한 관계성은 관객에게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버닝’을 넘어선 진화, 자본주의 정글에서 폭발하는 계급의 서스펜스

이창동의 전작 ‘버닝’이 실체 없는 분노와 모호함, 보이지 않는 자본의 유령을 미스터리 형식으로 쫓았다면, ‘가능한 사랑’은 그 모호함을 명확하고도 뼈아픈 현실의 살점으로 구체화한 ‘진화된 결정판’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쓸모를 다하면 부품처럼 버려지는 시대, 소외된 인간들이 서 있는 벼랑 끝 풍경을 비유와 상징을 통해 더없이 직관적이고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상징과 메타포는 지적으로 난해하게 꼬여있지 않고, 관객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로 곧장 꽂힌다.

영화의 호흡은 지루할 틈 없이 유려하다. 극도의 진지함과 서늘한 갈등 속에서도 폐부를 찌르는 풍자와 찰나의 블랙코미디가 절묘하게 배치되어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평화로워 보이는 식탁 대화, 카메라 앵글을 조율하는 일상적인 순간마다 계급적 위계와 미묘한 자존심의 충돌이 차곡차곡 축적된다. 억눌리고 팽창하던 감정의 마그마가 후반부 예상치 못한 사건을 기점으로 일순간에 폭발하는 시퀀스는, 영화적 서스펜스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파국은 극장을 나선 뒤에도 오랫동안 관객의 발걸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네 거인의 충돌과 화합… 한국 영화사를 뒤흔든 위대한 앙상블

연출과 각본의 탁월함만큼이나 ‘가능한 사랑’을 영화사적 사건으로 격상시키는 결정적 요인은 네 주연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력이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이 펼쳐내는 앙상블은 연기의 경지를 넘어선 숭고한 예술적 헌신을 목도하게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를 연기한 조여정은 이번 작품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지평에 도달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등에서 순진무구하고 우아한 상류층의 전형을 완벽히 소화했던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안정되고 부유한 환경 속에서도 타인의 고통에 접속하려 애쓰는 지식인의 복합적인 내면을 경이롭게 빚어냈다.

지적이고 세련된 가면 아래 꿈틀거리는 관음적 욕망과 예술적 야심, 그리고 스스로의 위선과 맞닥뜨렸을 때 흔들리는 눈빛은 조여정이라는 배우가 지닌 스펙트럼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정형화된 부유층 캐릭터를 전복하며 일궈낸 그녀 연기의 진화는 단연 압도적이다.

미옥을 연기한 전도연은 ‘밀양’으로 칸의 여왕이 되었던 전도연은 이창동과의 재회를 통해 또 한 번 스스로의 한계를 부수어 버린다. 가난과 절망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자신의 존엄과 가정을 지키려는 미옥의 생명력은 전도연의 육체와 목소리를 통해 스크린 위에 생생히 부활한다.

전반부에서 켜켜이 억눌러 담아둔 감정의 응집력은 후반부 서사가 요동칠 때 거대한 해일처럼 폭발한다. 감정의 진폭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스크린을 장악하는 그녀의 연기는 그저 감탄을 넘어선 전율을 자아낸다.

예지의 남편 상우를 연기한 조인성은 유려함과 공허함 사이를 유영하는 상우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전도연과 마주하며 감정이 한계점까지 치닫는 대목에서 보여준 그의 호흡은 놀라움 그 자체다. 상대 배우의 파동을 고스란히 흡수하며 뿜어내는 에너지는 배우로서의 숭고한 자부심과 캐릭터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희생의 결기를 고스란히 전달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경외감마저 품게 만든다.

호석을 연기한 설경구의 존재감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박하사탕’과 ‘오아시스’로 이창동 감독의 페르소나로 활약했던 그는, 자본의 냉혹한 칼날 앞에 무너져 내린 중년 남성의 피로와 울분을 묵직하게 구현한다. 폭발하기 전까지 시종일관 삭이고, 삼키고, 인내하며 감정을 벼려나가는 그의 절제된 연기는 후반부의 파열을 더욱 비극적이고 묵직하게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 역할을 해낸다.

우리는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거장이 도달한 성찰의 극점

‘가능한 사랑’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은 영화가 끝난 뒤 관객의 가슴속에 끝없는 파문을 일으킨다. 자본의 유무로 인간의 가치가 매겨지고, 보이지 않는 계급의 벽이 날로 견고해지는 오늘날, 서로 다른 위치와 조건을 가진 타자들이 과연 온전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가.

영화는 그 불가능성에 가까운 간극을 직시하면서도, 그 틈바구니 속에서 피어나는 처절한 연민과 소통의 가능성을 끝내 놓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부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상흔과 고통받는 인간의 구원, 그리고 삶의 진실을 집요하게 탐구해 왔다.

‘가능한 사랑’은 그가 반평생 축적해 온 영화적 테마와 윤리적 고뇌가 가장 완숙한 형태로 집대성된 결정체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한층 깊어지고 서늘해진 시선으로 세상에 진중한 화두를 던지는 노장의 도약과 성찰을 목격하는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영화팬들에게 더없는 축복이자 벅찬 환희다.

완벽한 각본, 대가다운 연출, 그리고 네 배우의 눈부신 열연이 직조해 낸 이 걸작은 한국 영화를 넘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넷플릭스의 거대한 야심, 그리고 한국 영화의 새로운 질문: 또 다른 자본인가, 위대한 공존인가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는 바로 이 기념비적인 예술 영화의 든든한 뒷배가 글로벌 스트리밍 공룡 ‘넷플릭스’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대중적 상업 장르물과 시리즈물에 집중하던 넷플릭스는 알폰소 쿠아론(‘로마’), 마틴 스코세이지(‘아이리시맨’) 등에 이어 한국의 독보적 거장 이창동의 손을 잡았다.

이는 단순한 로컬 콘텐츠 확보를 넘어 칸, 베니스, 아카데미 등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 무대에서 문화적 패권과 예술적 영향력을 공고히 하려는 넷플릭스의 전략적 야심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베니스 은사자상 수상이라는 결과는 이러한 플랫폼의 야심과 한국 시네마의 예술적 위상이 결합했을 때 전 세계에 얼마나 폭발적인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영화계에 묵직한 물음을 남긴다. 극장 중심의 전통적인 제작 및 배급 환경이 전례 없는 침체와 위기를 겪고 있는 작금의 한국 영화 생태계에서, 막강한 글로벌 스트리밍 자본의 유입은 과연 어떤 미래를 예고하는가. 일각에서는 이것이 기존의 투자·배급 시스템을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거대 자본 종속’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영화 속에서 비판하던 거대 자본의 논리가 역설적으로 영화의 탄생을 지탱했다는 아이러니 역시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흥행 압박과 티켓 파워의 굴레에 갇혀 과감한 작가주의 영화나 대규모 예술 영화 제작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오늘날의 현실을 감안할 때, 창작자의 온전한 자유를 보장하며 거장의 웅대한 비전을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단번에 연결해 주는 플랫폼의 지원은 분명 한국 영화계에 절실했던 새로운 돌파구이자 생명줄이 될 수 있다.

결국 관건은 이것이 일회성 트로피 사냥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 시네마와 글로벌 플랫폼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며 상생하는 건강한 공존의 모델로 안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거대한 글로벌 자본의 품 안에서 가장 날카롭고 처절하게 자본주의와 예술의 위선을 해부해 낸 이창동의 ‘가능한 사랑’. 이 아이러니하고도 찬란한 결실은 한국 영화가 당면한 산업적 위기 속에서 예술 영화가 나아갈 새로운 생존 방식과 공존의 가능성을 가장 첨예한 방식으로 질문하고 있다.

평점: ★★★★★ (5.0 / 5.0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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