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3개월, ERA 10.13…들쭉날쭉 투수가 1차전 잡았다

자신의 등판이 맞는지 확인하는 김윤수. KBS 중계화면, Tving 캡처

갑자기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순탄하다. 적어도 홈 팀에게는 그랬다. 스코어 7-1이다. 이제 7~9회만 막으면 된다. (13일 대구 라온즈 파크. 삼성 라이온즈-LG 트윈스, 플레이오프 1차전)

그런데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한바탕 격랑에 휩쓸린다. 7회 초 수비였다. 2사 만루에서 실책이 나온다. 1루수 르윈 디아즈가 홍창기의 땅볼을 떨어트렸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실수다. 동네 야구에서도 그런 공은 안 놓친다. 빠르지도, 어렵지도 않은 바운드다. 그냥 잡아서 베이스만 밟으면 된다. 그럼 7회가 지워진다. 그런데 그걸 흘렸다.

상대가 누군가. 전년도 챔피언이다. 작은 틈이라도 놓칠 리 없다. 게다가 달리기 실력이 출중한 팀이다. 3루 주자(문보경)는 당연하다. 어느 틈에 2루 주자(박해민)까지 홈을 밟는다.

그게 끝이 아니다. 원정팀의 기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다음 타자도 눈빛을 불태운다. 신민재다. 2구째. 바깥쪽 공에 날카롭게 반응한다. 강렬한 타구가 3루수 옆으로 빠진다. 적시타다. 2루 주자(문성주)가 홈을 밟는다. 어느 틈에 7-4로 좁혀진다.

1루 쪽 응원석이 끓어오른다. 내내 눌렸던 가슴이 터지려 한다. 계속된 2사 1, 2루다. 그리고 가장 기대가 큰 타자의 차례가 된다. 타점왕(132개) 오스틴 딘이다. 라이온즈 파크의 긴장감이 최대치로 치솟는다.

“잠깐만~.”

홈 팀이 ‘타임’을 부른다. 분위기가 너무 달아오른다. 식혀야 한다. 한숨 좀 돌리자. 내친김에 투수도 바꾸고 싶다. 누가 봐도 교체 타이밍이다.

사진 제공 = OSEN

“저요? 진짜로, 저 맞아요?”

1차전의 최대 고비다. 이 대목을 누구에게 맡길까? 잠시 고민에 빠진다. 분명히 필승조의 시간이다.

일단 현재 투수는 내려갔다. 내야가 마운드로 모인다. 수비도, 심판도, 관중들도. 모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뜬다. 누구지? 누가 나오지?

담당 부서(?)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분명히 불펜에도 인터폰이 있다. 그걸로 통보가 갔을 것이다. 그런데도 알쏭달쏭하다. 이름을 듣고도 미심쩍은 것 같다.
급기야 당사자의 모습이 보인다. 등번호 28번. 김윤수(24)다.

열린 문틈으로 얼굴을 삐쭉 내민다. 그리고 오른손을 반쯤 든다. “저요? 진짜로, 저 맞아요?” 하는 표정이다. 주변 사람들도 눈이 커진다. 와중에 멱살잡이도 등장한다. 옆에 있던 누군가 붙잡는 장면이다. 혹시라도 아닐까 봐 걱정하는 눈치다.

“그래, 너 맞다니까.” 최종적인 OK 사인이 떨어진다. 그러고도 긴가민가한다. 불펜에서 마운드까지. 달려오는 내내 파울라인을 넘지 않는다. 애써 선 밖으로만 뛴다. 만일에 대비하는 꼼꼼함이다.

혹시 몰라서 파울 라인 밖으로만 뛰는 김윤수. KBS 중계화면, Tving 캡처

“아, 내 공이 진짜 좋구나”

초구 = 시속 150㎞짜리 패스트볼이다. 존 한가운데로 꽂았다. 아니, (어쩌다 보니) 꽂혔다. 사실은 실투다. 보통이라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코스다. 오스틴도 반응한다. 그런데 배트가 헛돈다. 그만큼 투수의 힘이 스윙을 압도했다는 뜻이다.

2구 = 완급 조절이다. 슬쩍 돌아간다. 125㎞ 커브다. 제대로 휘어진 건 아니다. 그래도 맨 위쪽에 걸린다. ABS의 합격 사인을 받는다.

3구 = 강-약-강이다. 다시 빠르게 간다. 이번에는 152㎞짜리다. 전광판에는 155㎞가 찍혔다. 화들짝. 놀란 타자의 배트가 맥없이 헛돈다. 마운드에서 포효가 들린다.

경기 후 멘트다.

“갑자기 나가게 됐다. 정신없이 (마운드로) 올라갔다. 오스틴 타석인데,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카운트 0-2를 잡아 놓고, 3구째는 빠른 볼을 생각했다. 그런데 (강)민호 형이 딱 그 사인을 내줬다. 합이 맞았다.”

생애 첫 PS 홀드를 기록한 순간이다.

“삼진을 잡고 나니 비로소 그 생각이 들더라. ‘아, 내 공이 진짜 좋구나.’ 이젠 남은 시리즈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던질 수 있게 됐다. 계속 승리를 지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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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판왕의 유품 ‘돌직구’

아마 조마조마한 사람이 꽤 많았으리라. 인사권자인들 마음이 편했겠나.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다. “플레이오프를 준비하면서 불펜 걱정이 가장 컸다”는 박진만 감독의 솔직한 말이다.

믿었던 2명을 잃고 시작했다. 우완 최지광은 팔꿈치 이상으로 전력 외로 분류됐다. 백정현의 이탈도 아프다. 자체 청백전 도중 타구에 맞았다. 미세 골절로 합류가 불가능했다. 트윈스의 주력이 좌타자들 아닌가. 그걸 막아줄 믿을맨이 사라진 셈이다.

가장 큰 고심은 따로 있었다. 오승환이다. 막판까지 고심했다. 팀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다. 여러 가지를 고려했고, 결국 제외라는 결정을 내렸다. 분명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러다 보니 불펜의 하중이 만만치 않다. 일단 김태훈-임창민-김재윤을 필승조를 꾸렸다. 하지만, 1% 아쉬움이 남는다. 뭔가 하나 더 필요하다. 끝판왕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짧은 대목을, 확실히 압도해 줄 박력이다. 즉, 벨로시티(velocityㆍ속도, 속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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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3일) 7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그 부분은 경기 전에 투수 파트와 의논했다. 지금 우리 불펜에서 김윤수의 구위가 가장 뛰어나다. 문제는 정확성이다. 혹시라도 볼넷을 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1루가 비었거나, 삼진이 꼭 필요하면 원포인트로 쓰기로 했다.”

그런 감독의 구상은 그대로 실현됐다. 공 3개면 충분했다. 그걸로 가장 강한 상대를 KO 시켰다.

올 7월 16일. (상무) 전역과 동시에 복귀했다. 1~2군을 오가는 애매한 처지였다. 들쭉날쭉한 제구 탓이다. 1군 4경기에서 이닝수(5.1)보다 많은 볼넷(7개)을 내줬다. 평균자책점(ERA)은 무려 10.13이다. 탈삼진은 겨우 2개, 승패는 물론 홀드 기록조차 없다. 사실은 PO 엔트리에 포함된 게 의외다.

파이널 보스, 끝판왕, 돌부처…. 라이온즈 팬들이 잊지 못할 향수다. 비록 당장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유서 깊은 전통은, 확고한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김윤수가 오스틴을 쓰러트린 155㎞짜리(전광판 기준). 그게 바로 유품과도 같은 ‘돌직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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