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고, 반찬 참 많네. 한일관 불고기나 한번 배터지게 묵고 죽으면 내사 마 소원이 없겄다.”
박보금이 쓴 입맛을 다시면서도 숟가락을 들었다. 다른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상으로 다가앉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 조정래, 《한강》 중에서
한일관 음식은 서울에 살면서 누구나 먹고 싶어 했지만 아무나 먹을 수는 없었다. 불고기는 1980년대 이후에 흔해졌지만, 한일관 것이라야 진짜로 취급하던 시절이 있었다.
업력(業歷)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대다. 수많은 식당들이 간판에 ‘SINCE 19XX’를 써 붙이고, 전국의 노포 식당만 찾아다니는 식객들도 늘었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백년식당》 등을 펴내며 ‘글 쓰는 셰프’로 알려진 박찬일이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평균 업력 54년에 육박하는 26곳의 노포의 창업주와 대를 이은 이들을 직접 만나고 펴낸 《노포의 장사법》 중 일부를 소개한다.
그들은 단순히 오래 ‘생존’함에 그치지 않고, 대를 이어 내려오며 세월을 이기고 살아 있는 ‘전설’이 된, 한국형 밥장사의 성공 모델들이다. 이번 호에서는 ‘서울미래유산’, ‘백년가게’로 지정된 서울식 불고기의 표준 ‘한일관’을 소개한다.
한식의 대명사, 한일관 Since 1939
일제강점기이던 1939년 신우경 여사가 ‘화선옥(花仙屋)’이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종로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이후 1945년 ‘한국 최고의 식당’이라는 뜻에서 ‘한일관(韓一館)’으로 개명했다.
1979년 신우경 여사가 사망하면서 장녀인 길순정 여사가 이를 이어받았고, 1997년 길순정 여사가 사망하면서 그의 두 딸 김은숙, 김이숙이 공동으로 물려받았다. 2003년에 주식회사로 법인화되었으며 브랜드 ‘한일관’은 상표등록돼 있다.
故 이승만 대통령, 故 박정희 대통령, 故 노무현 대통령과 그리고 前 이명박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찾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종로에서 영업을 시작하여 8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6.25 전쟁 당시 피난하여 부산에서 임시영업했다가 전쟁 직후 다시 종로에서 영업했다. 1960~70년대에 가장 호황기를 누렸는데, 당시까지는 한일관만큼 규모가 큰 식당이 별로 없어서 서울 최고의 연회장소로 손꼽혔다. 특히 왕회장(故 정주영 현대 회장)은 단골이었는데 손자 장가갈 때 피로연 장소로 한일관을 찍었다.
이와 관련, 1979년에 입사한 곽명훈 요리고문의 얘기다. “그날 냉면과 불고기를 2천 몇백 개를 했던 것 같아요. 그게 아마 한일관 판매 기록일 거예요.”
1939년 : 서울 종로3가에서 일본식 상호를 단 국밥집 ‘화선옥(花仙屋)’ 창업. 쇠고기뼈, 내장을 우려낸 국물에 밥을 말아주는 국밥, 내장구이, 추어탕 등 판매
1945년 : 해방과 함께 ‘한일관(韓一館)’으로 상호를 바꾸고, 종로1가로 이전. 활발해진 쇠고기 유통에 힘입어 쇠고기 살코기를 이용한 불고기(‘궁 불고기’) 판매
1950년 :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하여, 1951년 1·4후퇴와 1953년 7월 휴전 이전까지 부산 중앙동에서 영업
1953년 : 서울에서 다시 개업
2008년 : 종로1가 한일관이 강남 압구정으로 이전
현재 : 압구정(본점)으로 이전 이후 영등포, 을지로, 광화문, 하남, 서대문, 동탄 등 7개 지점 운영. 2017년부터 4년 연속 미슐랭 가이드 선정
불고기 84년… 수라상에서 국민요리로
한일관은 불고기와 냉면으로 유명하다. 특히 불고기는 궁중음식 너비아니처럼 양념한 생고기를 석쇠에 직화로 굽던 방식에서 전골을 화로와 결합한 서울식 불고기의 원조로 평가받는다. 가운데가 솟아오른 불판으로 이루어진 그릇 주변에 육수를 붓고 불판 위에 양념한 고기와 야채를 구워 먹은 뒤 불고기에서 흘러나온 육즙을 머금은 육수에 냉면사리를 넣어 끓이거나 양념이 눌어붙은 불판에 구워먹는 방식이다.
불고기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고 은근한 단맛이 난다. 설탕을 적게 넣고 사과와 배, 키위를 많이 사용한 덕분이다. 과일에 간장, 대파, 양파, 마늘, 생강 등을 넣고 팔팔 끓여 간장 특유 냄새를 없애 깔끔하다. 소고기 양지와 사태, 홍두깨살을 2시간 정도 우려낸 고기 육수는 잡내가 없고 구수하다.
현재도 본점에서 ‘불고기 1939’란 이름으로 당시 메뉴를 판매하고 있고 또한 놋쇠 그릇에 조리된 불고기를 담아오는 식으로 21세기 혼밥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서울불고기의 특색을 보여준다.
냉면의 특징은 편육과 함께 다진 고기를 꾸미로 올린다. 비빔냉면은 너무 맵고 시지 않고 삼삼한 간에 달콤하여 단골이라면 식사를 한 뒤 냉면 한 그릇을 가족과 나눠 먹으며 후식처럼 먹는 사람도 많다. 물냉면은 육수에 새콤한 맛이 약간 가미된 것으로, 새콤한 서울식 물냉면의 원조로 취급받는다. 단, 다른 서울지역 물냉면에 비해 간이 좀 밍밍한 편이다. 이것은 서울식 물냉면이 갈수록 새콤한 맛이 강해지는 것으로 발전했지만 이곳은 옛날 맛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오래된 한식집이라 하여 한일관을 접하지 못한 젊은 사람들은 요정처럼 고급 한정식을 판매하는 요릿집을 연상할 수 있으나, 메뉴에서 보듯 요즘 말로 밥집에 가까운 형태에서 출발한 곳이라 갈비탕, 육개장, 비빔밥, 냉면 등 단품 형태로 기본 한식이 골고루 갖춰 있다.
본격적인 ‘상차림’ 메뉴도 불고기나 갈비와 같은 고기구이에 전, 황태구이 정도의 요리를 더하고 여기에 탕이나 냉면 등의 식사가 포함되는, 형식만 따져 보면 일반적인 고깃집과 큰 차이가 없다. 물론 모든 메뉴의 맛은 백년을 바라보는 역사만큼 수준급이다.
백년가게… 우리의 식문화史 ‘고스란히’
가격도 음식 맛과 질을 따지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일반 식당보다 사오천원, 기껏해야 만원 더 내는 식이다. 전통 있는 식당이라 다들 빼입고 올 것 같지만, 오랫동안 한일관 음식을 먹어 온 단골들은 그냥 등산 갔다 오다가 그대로, 아니면 갑자기 생각나서 온 식으로 간편하게 와서 탕이나 냉면이나 육개장 한 그릇 먹고 가는 식이다. 즉, 입문 난이도(?)가 높은 식당은 아니다. 다만 이건 소고깃값이 물가 대비로 많이 내려가서 그런 것이고, 1980년대 초중반까지는 일반인들이 아무 때나 가서 마음 편히 먹다 오는 음식점은 아니었고, 경조사나 회식 같은 일이 있을 때 먹고 오는 정도였다. 즉,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서 서민화 된 것.
동절기 한정으로 반찬으로 굴젓이 나오는데 그 맛이 으뜸이고 매일 변경되는 정성들인 반찬 또한 맛있다. 또한 기본 반찬 중 마요네즈에 사과 등을 버무린 샐러드가 나오는데, 70년대의 흔적이자 한일관의 특징이 되어버려서 드물게 이 반찬이 없을 때는 아쉬워하는 단골들도 있다는 후문. 안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다른 사이드디시 종류가 바뀔지언정 ‘사라다’는 항상 나온다.
오래 살아남은 집은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 터줏대감, 원조, 본가…. 수많은 수식어를 얻게 된 전설의 밥집들은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유물이 된 전설적 노포들이다. 노포(老鋪)란 대를 이어 수십 년간 특유의 맛과 인심으로 고객에게 사랑받아 온 가게를 말한다.
‘하루 단 500그릇만 파는’ 서울의 하동관, 시대의 표준이 된 ‘한일관’, 공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원조 중의 원조’ 감자탕집 태조감자국, ‘60년 전설의 면장’이 지키는 인천의 신일반점, ‘의정부 평양냉면 계열’의 을지면옥, 강릉의 토박이할머니순두부, 부산 바다집 등등 평생의 업으로 일을 벌여 반석에 선 노포들의 태도를 포착한다면 이미 성공의 길에 반쯤 다가선 셈이 아닐까.
정리 이규열(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참고도서] 노포의 장사법 | 박찬일/노중훈 | 인플루엔셜
[사진] 한일관 홈페이지, 한일관 네이버 업체 사진
※ 머니플러스 2023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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