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고시센터 첫공개] 하늘엔 낚싯줄·창문엔 자물쇠..철통보안에 음쓰도 못나간다
수능은 한해 모평까지 세 번..공시는 17종
담당 업무 과장, 지난해 5.5달을 센터 생활
하늘엔 드론 방지용 낚싯줄을 50cm 간격으로 촘촘히 쳤다. 외부로 난 창문엔 자물쇠를 잠그고 불투명 스티커를 붙였다. 주방 환풍구에는 외부 통로 차단을 위해 이중망을 달았다. 음식물 쓰레기도 일정기간 외부로 내보낼 수 없다. 인사혁신처 국가고시센터 얘기다. 관악산 기슭 아래 자리잡은 이곳 국가고시센터에서는 매년 공무원 시험 출제가 이뤄진다. 한해에만 2400여명이 드나들며 4000문제 이상을 만든다.
"대한민국 공무원 역사가 시작되는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사처가 2005년 건립한 국가고시센터를 27일 출입기자단에 최초로 공개했다. 국가고시센터는 국가정보원이 다급 국가보안시설로 지정해 관리할 정도로 그간 철통보안이 유지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지도에 표시되지도 않았다. 이번 공개에는 인재채용국장을 지낸 김승호 신임 인사처장 의중이 많이 반영됐다고 한다. 인사처 관계자는 "그간 보안 때문에 센터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기자단을 통해 센터를 국민에게 알리면 국가고시에 대한 신뢰도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국가고시센터는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부터 차로 50여분 떨어진 경기 과천시에 위치하고 있다. 외부인 출입부터 녹록지 않았는데, 팻말이나 표지판 하나 없는 건물의 두 개 문을 지나 몸에 지닌 모든 소지품을 꺼내 놓고 금속탐지기로 온몸 구석구석을 수색 받았다. 수색요원은 명함지갑에 든 명함까지 모두 꺼내게 하고 내부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점을 확인한 뒤 출입을 허가했다.
그렇게 발을 내딛은 국가고시센터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이었다. 보안을 위해 ‘ㅁ’자 모양으로 지었단다. 건물 벽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에는 ‘하늘정원’이 있어 출제위원들이 합숙 기간 휴식하고 담소를 나누게 했다. 정원에는 사과나무와 무궁화, 가지, 피마자 등이 자라고 있었다. 인사처 관계자는 "미관용으로 심어놓은 것"이라며 "출제위원들이 종종 따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 이곳 센터에는 한 번 입소하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보름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2016년 별도로 세워진 별관도 마찬가지다.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만큼 외부와의 소통도 불가능하다. 고교 교사와 대학교수 등으로 구성된 출제위원들은 센터에 들어서는 동시에 휴대전화나 스마트워치 등 전자기기를 모두 반납해야 한다. 설사 반입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다. 센터 내부에서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자동으로 차단하는 ‘무선랜 차단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전자기기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사람은 물론 물건의 반출입도 힘들다. 흡연자는 합숙 기간 피울 담배를 미리 사서 들어와야 할 정도다. 음주는 아예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출제위원들에게 맥주 한 캔씩 배부하고는 했다지만, 지금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주방에서 요리용으로 쓰는 정종까지 자물쇠가 달린 나무박스에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출제기간 철통 보안 원칙은 문제를 직접 내는 출제위원들뿐 아니라 건물 관리인, 청소 노동자 등에게도 모두 예외없이 적용된다. 직접 문제를 내는 위원들부터 의무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보안요원, 주방 요리사까지 모두 같이 합숙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인사처에서 출제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1년에 3개월 이상 합숙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센터 업무를 모두 총괄하는 시험출제과장은 1년 중 절반인 180여 일은 센터에서 지낸다. 지난해 기준 총 5개월 15일을 센터 안에서 지냈다고 한다. 반년 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할 뿐더러 가족, 친구와 연락도 할 수 없다. 올해 1월 부임한 오순종 시험출제과장도 벌써 네 달가량을 센터에서 지냈다고 한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중요한 경조사를 챙기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 과장은 “원칙적으로 직계존비속 이외의 상은 예외없이 챙기지 못한다”면서 "상가집을 가야 할 상황인데 가지 못하다 보니 예기치 않은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합숙자들의 외출이 가능한 때는 직계존비속의 상을 당하거나 긴급히 병원에 가야 할 때다. 이때도 보안을 위해 2명 이상의 직원이 동행한다. 상을 당했을 때도 당사자가 직접 알 수는 없다. 가족이나 지인이 인사처에 알리면, 인사처가 센터 출제관리실 내에 딱 한 대 있는 보안전화, 이른바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한다. 핫라인을 통해 이뤄진 전화 통화는 자동으로 녹음되며 매일 저녁 6시에 담당 직원이 녹취를 풀며 통화 내용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한다.
오 과장은 올해 가장 규모가 큰 시험인 국가직 7급 2차 시험 문제 준비를 위해 이달 29일 다시 합숙에 들어간다. 이번 합숙 기간은 시험일인 10월 15일까지 총 17일이다. 올해 합숙기간 중 가장 길다. 합숙 인원도 280명으로 가장 많다. 센터 최대 수용인원은 275명에 불과해 2인실 방에 침대를 하나 더 넣을 예정이다. 겨우 4평남짓한 방에서 최소 두 세명의 출제위원이 함께 모여 숙식해야 하는 셈이다. 센터에는 2인실 외에도 8평짜리 3인실, 12평짜리 5인실이 전부며 1인실은 없다. 방 창문은 모두 자물쇠로 잠겨 있었고 불투명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외부에 시험 문제 유출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런 사정 탓에 웃지 못할 사연도 많다. 생면부지의 40~50대 교사, 교수 등이 합숙 생활을 하다 보니 충돌할 때도 있고 코골이, 잠꼬대 등 잠버릇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번은 참다 못한 한 위원이 텐트를 가지고 와 하늘정원에서 생활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늘정원 내 호수 물도 없앴다. 출제 압박 속에 맹꽁이 울음소리까지 겹쳐 스트레스를 호소한 위원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퇴소 사례는 없었다.
센터 1층에 위치한 의무실에는 합숙기간 하루 평균 60~70명의 출제위원이 다녀간다. 적게는 160명, 많게는 280명 정도 인원이 합숙하는 점을 감안할 때 하루에 세네 명 중 한 명 꼴로 의무실을 찾는다는 얘기다. 센터 관계자는 “주로 소화제와 피로회복제를 많이 찾는다”며 “합숙 기간 운동량이 줄어들어 소화불량에 자주 시달리고 합숙 이전에 외부에서 모든 업무를 미리 마치고 들어와야 해 과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센터는 근로기준법이 빗겨가는 곳이기도 하다. 위원들의 업무는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진다. 문제에서 이상을 발견하거나 시험이 임박했을 때는 새벽 3~4시까지 밤을 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주말도 따로 없다. 이후 시험지가 배부되는 순간 위원들은 해방된다.
시험 출제 업무는 인사처 직원이라면 한 번쯤 거쳐야 하는 업무지만 저연차일수록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독한 합숙 업무 때문이다. 담당 과장은 1년 중 절반을, 이외 직원도 1년에 3~4개월은 국가고시센터에 '감금'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잦은 연락 두절에 애인과 이별을 숱하게 겪는 직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낭만이 없지는 않다. 2005년 센터 건립 이후 7쌍의 연인이 탄생했다. 2주가량의 합숙 기간 출제위원 간에 사랑이 싹트기도 하고 공무원 간에, 공무원과 위원 간에도 그렇다. 돌싱 간 만남도 한 커플 있다. 인사처 관계자는 “청첩장을 받은 것만 7쌍이고 더 있을 수도 있다. 2주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며 말했다.
국가고시센터의 재산가치도 작지 않다. 센터는 현재 9만 5000여 개의 문제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출제위원 1만 5000명의 수당(하루에 32만원)으로 단순 환산하면 무려 58억 원의 가치를 지닌다. 출제위원 수당은 14년 전 책정된 기준이어서 최저임금 인상, 경제규모 성장 등을 감안하면 더욱 가치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센터에서는 과거 14종의 시험을 출제하다 현재는 17종을 출제하는 등 중요성을 점차 키우고 있다. 최근엔 자체적으로 인재를 채용하는 환경부에서도 출제 수탁을 요구하고 있으며, 국방부가 주관하는 군무원 시험 응시자들이 출제 수탁을 요구하는 집단민원을 내고 있다. 그러나 센터는 층간 소음을 줄이고자 복도에 깔아 놓은 카펫 하나 바꾸지 못할 정도로 예산이 부족한 상황이다. 인사처 관계자는 “더 많은 시험 출제를 수탁하기 위해서는 숙소 수용인원을 늘려야 하는데 증축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경은 기자 euny@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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