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상승 '경쟁 DNA' 새긴, 제2 신분집단과 후예들[책과 삶]
황경문 지음·백광열 옮김 | 너머북스 | 584쪽 | 3만2000원

출생을 뛰어넘는 ‘가문의 영광;’은 어떻게 이뤄졌나
양반과 상민 사이, 중인·향리·서얼·무반···
20세기 관료제 기틀 무너지면서 출세가도
조선 중종 대의 인물 최영호는 왕으로부터 공신(功臣) 칭호를 하사받았다. 덕분에 그의 후손인 철원 최씨들은 하급 군관직을 맡을 수 있는 중인의 지위를 얻었다. 1661년 최태경의 아들 최수강이 의과에 합격하면서 이 집안은 전문기술 관료 영역에 진입했다. 최태경의 조카는 과거 시험에서 역과에 합격했고, 사촌인 최사운은 의과와 무과에 합격한 손자들을 배출했다.
가계의 명성은 개화기 고위 지관(地官·묘지나 택지를 선정할 때 지질과 길흉을 판단하는 종교인) 최헌규가 왕실 묏자리에 대한 소견을 왕에게 몸소 전했을 때 최고조에 달한 줄만 알았다. 최헌규의 차남 최남선이 개화운동가이자 출판가, 교육가, 역사학자, 한국 현대문학의 창시자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된다는 것을 당시엔 알 길이 없었다. 가문의 영광은 이제 시작이다. 최남선의 장남과 차남은 서울대 의대 교수가 됐고, 동생 최두선은 제8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고위 관직은 감히 넘볼 수도 없던 중인 신분의 철원 최씨 가문이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를 배출하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출생을 넘어서>는 중인을 비롯해 향리, 서얼, 무반, 서북인 등 조선시대 양반과 상민 사이 존재하던 ‘제2 신분집단’이 한국이라는 근대 국가·사회의 출현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 책이다. 대를 이어 역관·의관 등 ‘잡업’에 종사한 중인, 지방 관청의 하급 관리직을 세습한 향리, 첩의 자식으로 과거를 볼 수 없는 서얼, 문반에 밀려 말단직으로 내몰린 무반, 유구한 지역 차별로 중앙 관직에 진출할 수 없는 서북인 등 상민보단 높은 지위를 세습할 수 있으나 양반의 자리에는 올라설 수 없었던 이들 제2 신분집단의 출현과 부상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근대성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심성’ 혹은 ‘문화’를 남겼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박제가, 허준, 김홍도, 신윤복부터 구영서, 현진건, 나혜석, 주시경까지 역사상 주요하게 언급되는 많은 인물들이 이 제2 신분집단에 속했다.
책의 핵심어 중 하나는 ‘지위의식’이다. 사회적 지위를 인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평가하는 태도는 근대 한국 구석구석에 스며 있다. 개인의 특성보다는 학벌, 직장, 집안, 거주지, 인맥 등 그를 둘러싼 배경이 서열화된 지위를 구성하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쉽게 공정한 것으로 치부되는 ‘시험’은 지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된다. 그래서 우리는 명문대 졸업장을 갖기 위해, 대기업 사원증을 손에 넣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내각과 대법원을 비롯한 주요 기관의 인사들이 명문대 출신으로 도배되는 것은 이미 익숙하다. 지위의식을 삶과 사회의 중요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이 ‘심성’의 출발점이 바로 조선시대 제2 신분집단이라는 흥미로운 설명이다.

책의 저자인 재미교포 역사학자 황경문 호주국립대 교수는 “사회 위계를 시간 경과에 따라 검토하는 것은 근본적인 변화를 조망할 수 있는 강력한 렌즈”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19세기 초반과 20세기 전반을 지나며 철원 최씨의 집안이 중인이라는 ‘출생을 넘어서’ 엘리트 계급으로 올라선 배경과 효과가 무엇인지 살피는 과정이 그에게는 중요했다. 이 작업은 한국의 근대성을 재인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위의식이 중요한 측면을 이루는 한국의 근대성은 서구 혹은 일본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 전근대 시기부터 이미 존재하던 전통을 계승하고 강력하게 수정함으로써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의 근대화 과정으로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제2 신분집단의 위상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권력과 구조를 만들어냈던 유럽의 부르주아들과 달리, 한반도의 제2 신분집단은 지위 자체를 제거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대신 “스스로를 귀족이라고 인식”하며 기존의 세습 신분 제도의 메커니즘을 이용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저자는 “전근대의 ‘양반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관직을 가진 자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우월성이 현대에는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지위의식을 통해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우리는 여전히 ‘양반’이 되고 싶고 ‘관직’에 오르고 싶다는 전근대의 꿈을 품은 채로 불철주야 경쟁하며 살고 있다는 뼈아픈 이야기다.
저자는 한국의 근대성이 전근대의 산물일 뿐이라고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양반이 되고 싶다는 생각 자체는 낡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꿈꾸는 것은 근대의 태도다. 철저하게 출생에 의존하는 신분 사회에서는 이 같은 꿈조차 허락받을 수 없다. ‘관직접근권’이 양반에게만 주어지므로 그 외 신분에게는 아무리 용을 써도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기 때문이다.
비역적 신분상승 경로에서 세습 매커니즘 이용
노력에 의한 성취 가능성 보여줬지만
사회에 스민 ‘지위의식’의 출발점이기도
그런데 제2 신분집단, 즉 중인과 서얼, 향리, 무반, 서북인들은 이 불가능한 꿈을 어떻게 이뤄낸 것일까. 20세기 초가 강력한 근대 전환기였음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과 서구로부터 들어온 사상과 모델에 개방됨으로써 이들의 운명은 현격히 반전됐다. 1880년 조선은 4년 전 강화도 조약(1876년)에 따라 개항 이후 생겨난 정부의 많은 책임 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통리기무아문이라는 기관을 창설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양반에게만 독점적으로 고위 관직의 기회를 제공하던, 관료제의 전통적 기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관료제는 세습적인 사회신분제와 견고한 귀족층의 이익을 강화하는 수단이었다. 동시에 중인, 향리, 무반과 같은 중하위 계급의 역할과 직무까지도 국가가 일일이 통제할 만큼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부터 일제 식민시기 중반(1930년대), 관료제는 통제의 도구에서 혁신의 촉매로 변모한다. 제국주의의 압력이라는 압도적인 변화의 요구 앞에서 성리학 경전만 외는 기존 특권층은 관료로서 제대로 역할을 해낼 수 없었고, 그 자리는 신교육을 통해 배운 전문적 기술과 사적으로 축적한 부까지 갖춘 제2 신분집단이 손쉽게 차지할 수 있었다.
1880년 통리기무아문에서 분리된 외무아문의 경우 중인과 무반, 서얼 등 제2 신분집단을 관료로 선발하고 승진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외무아문의 새 지위 ‘주사’에 오른 이들 중 10% 이상이 중인일 정도였다. 1894년 국가의 전면적 쇄신을 위해 고안된 조선의 임시 기구 군국기무처 역시 제2 신분집단을 적극적으로 관료로 채용하고, 신분제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지방행정 전문가로서 역할을 하던 향리는 특히 일제강점기 비약적인 신분 상승의 경로를 밟았다. 경상도의 토착 향리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 변영화는 1902년 초계군의 서기로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통감부 시절 동안 진주경찰서에서 10여년간 일한다. 그는 1922년 부산 경남도청의 최고위 경찰직 중 하나인 경시로 승진해, 1925년부터 1934년 퇴직할 때까지 4개 군의 군수로 재직했다.

서얼, 무반, 서북인 역시 고위 관직을 하나둘 꿰찼다. 해평 윤씨 가문의 서얼 출신인 윤치호는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 중 하나가 돼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시절 교육자, 정치가, 번역가, 개신교 운동가, 계몽운동가,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조선 건국 이래 오랜 지역 차별을 받았던 서북의 엘리트 계급은 서구 개신교와 신교육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그들이 열등하다는 지배적 인식을 극복하려 했다. 그 결과 서북 출신 인사들은 이후 조선의 정치·문화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안창호, 조만식, 이동휘, 이승만, 박은식, 이승훈, 이광수, 김소월, 김동인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이들이다.
제2 신분집단의 출세 가도는 이후 비슷한 양상을 띤다. 이들은 조선 후기 과거에서의 성공, 지역적 위신, 경제적 부 등을 재투자해 20세기 초 새로운 조건하에서 지위를 쟁취했다. 피지배계급인 민중과 연대하는 대신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데 힘썼다. 예컨대 대표적인 서북의 엘리트 가문인 정주의 백경한·백경해 형제는 홍경래의 난을 진압한 뒤 공을 인정받아 가문의 이름을 높이고 부를 축적했다. 이들은 이후 한국 사회의 특권층으로 자리 잡는다. 백경해의 직계 후손인 백인제는 1930년대 초 지금도 유명한 백병원을 세웠다. 앞서 언급한 향리 출신의 변영화의 아들 변선규는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유명한 내과의사가 됐다.
현대 특권층의 계보를 완성하는 한국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 다소 씁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제2 신분집단과 그들의 후예들은 자신들이 성취한 것을 통해 성공 스토리 이상으로 훨씬 중요한 무언가를 근대 한국에 남겼다”고 말한다. 바로 “가능성에 관한 의식”이다. “지위를 향한 강력하고도 외관상 이미 결정된 경로가 있다 해도 그 역시 습득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높은 지위는 더 이상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 전환이 한국 근대인의 ‘심성’을 이룬 DNA가 됐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역동성의 근간을 제2 신분집단이라는 계급으로부터 찾아낸 저자의 시선이 예리하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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