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해도 28통 부재중 전화…대법 “스토킹 행위” 첫 판결

김희진 기자 2023. 5. 29. 21: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반복적 전화로 공포심 줘”

상대방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었다면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도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혐의를 무죄로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2021년 10월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거절한 피해자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차단하자 9차례 메시지를 보내고 29차례 전화한 혐의(스토킹처벌법·정보통신망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 통화가 된 경우는 한 차례였다. A씨는 피해자에게 ‘찾는 순간 너는 끝이다’ 등 메시지와 함께 피해자 어머니의 집 사진을 찍어 보내고,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기도 했다.

1·2심은 A씨에게 징역 4개월을 선고했으나 부재중 전화를 스토킹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판단이 엇갈렸다. 항소심은 1심과 달리 피해자가 받지 않은 28통의 전화는 스토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스토킹처벌법에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우편·전화·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말·부호·음향·그림·영상·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스토킹 행위로 규정해 놓고 있다.

대법원은 실제 통화가 이뤄졌는지와 상관없이 부재중 전화 기록이나 벨소리를 남겨 상대방에게 불안감과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은 스토킹처벌법이 정한 스토킹 행위에 해당한다고 이번 판결에서 최초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전화를 거는 경우 피해자에게 유발되는 불안감 또는 공포심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하고, 피해자가 전화를 수신하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며 “오히려 스토킹 행위가 반복되어 불안감 또는 공포심이 증폭된 피해자일수록 전화를 수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또 “A씨로서는 적어도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더라도 피해자 휴대전화에서 벨소리나 진동음이 울리거나 부재중 전화 문구 등이 표시된다는 점을 알 수 있었고, 그런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는 의사도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원심은 스토킹처벌법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