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자·수율 논란 속에서 성사된 ‘22조 원 반전 계약’
TSMC만 고집하던 테슬라가 삼성전자와 장기 파운드리 계약을 맺은 결정은 업계에서는 사실상 ‘판 뒤집기’에 가까운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삼성 파운드리는 분기마다 약 2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며, 수율과 수주 부진으로 구조적 회복이 어렵다는 평가까지 듣던 상황이었다. 퀄컴·엔비디아 등 대형 고객이 TSMC로 이동하면서 “삼성은 2등 체제로 고착된다”는 시선이 지배적이었지만, 테슬라가 선택을 바꾸면서 이 구도에 첫 금이 가기 시작했다.

머스크가 본 것은 ‘가격’이 아니라 공정 로드맵이었다
삼성이 테슬라를 설득하는 데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단순 할인이나 캐파 약속이 아니라, 세계 최초 적용을 강조한 차세대 공정 기술이었다. 자율주행과 AI 연산 칩은 전력 효율과 집적도, 열 설계 여유가 곧 성능과 직결되기 때문에 최신 노드에서 얼마나 빨리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머스크 입장에서는 TSMC 의존도를 유지할 경우 공급망 리스크와 가격 협상력에 한계가 있는 반면, 공정을 앞세운 삼성과 손잡으면 향후 칩 설계 자유도가 커지고, 제조사와 함께 최적화를 밀어붙일 여지도 생긴다.

AI5·AI6와 옵티머스까지 묶인 22조 7천억 원의 의미
이번 계약은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내용이 깊다. 총 22조 7천억 원 규모로, 2033년까지 약 8년 동안 테슬라의 차세대 AI 반도체인 AI5부터 이후 AI6까지 전량을 삼성 파운드리에서 생산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칩들은 자율주행 차량용 제어·연산 칩을 넘어, 테슬라가 추진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두뇌 역할까지 맡게 될 예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즉 단일 제품 세대가 아니라 테슬라의 중장기 성장 축 전체를 삼성 공정 위에 올려놓는 구조다.

TSMC 독점 구도에 처음 생긴 구조적 균열
테슬라 같은 상징적 고객이 공급처를 나눈 것은 단순 매출 분산을 넘어, 파운드리 시장의 심리와 힘의 균형을 바꾸는 신호로 작용한다. TSMC가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던 구도에서, 대형 고객들이 줄줄이 몰리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가격·조건 협상이 일방적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테슬라가 삼성과 장기 계약을 맺은 순간, 다른 팹리스 기업들도 “최첨단 공정을 삼성과 함께 개발하는 옵션”을 실질적인 대안으로 검토할 명분을 얻게 됐다. 이는 삼성에게는 수율과 안정성만 증명하면 추가 고객 유치 가능성이 열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머스크와 이재용의 ‘직접 거래’가 보여준 파트너십의 깊이
계약 체결 이후 이재용 회장이 12월 15일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일론 머스크를 만나 후속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는 점은, 이번 계약이 일회성 수주가 아니라 장기 전략 파트너십의 출발점이라는 인상을 강화했다. 머스크는 생산 라인과 공정을 끝까지 파고드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고, 이런 성향은 제조 파트너에게는 부담이지만 동시에 공정 개선의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경영진이 직접 만나 중장기 로드맵까지 조율하는 관계는, 단순 ‘고객–공급자’ 수준을 넘어 공동 개발에 가까운 협력 모델로 확장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추격자가 아니라 ‘판을 설계하는 공정 기술’로 승부하자
결국 일론 머스크가 TSMC만 고집하던 관성을 깨고 삼성의 기술을 선택한 이유는, 공정 로드맵과 확장성, 그리고 장기적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십 구조에서 삼성에 승부수를 본 것으로 요약된다. 적자와 수율 논란에 시달리던 삼성이 테슬라라는 상징적 고객을 확보하면서, TSMC 중심 파운드리 구도에도 처음으로 구조적 균열이 생겼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번 계약은 삼성 파운드리가 더 이상 ‘따라가는 2위’가 아니라, 공정 기술과 장기 계약을 무기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흐름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플레이어임을 보여준 장면이다. 이제 추격자가 아니라 판을 설계하는 공정 기술로 승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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