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지우는 간절함, 그라운드의 삶

14일 챔피언스필드에서 수비훈련을 지켜보는 이범호 감독(오른쪽부터)과 이해창 배터리 코치, 주효상, 한준수. /김여울 기자

프로야구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두려움과 싸운다.

150㎞가 넘는 강속구 그리고 이보다 더 빠르게 날아오는 타구를 마주한다.

베이스를 향해 달려오는 주자도 두려운 존재일 때가 있다.

무엇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속에 공을 던지고, 치고, 받는다.

잠시 숨을 골랐던 선수들이 16일 후반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또 두려움과 마주하게 된다.

아마 공에 가장 많이 맞는 포지션은 포수일 것이다.

타자로 공격할 때도 맞고, 마스크를 쓰고 수비를 할 때도 맞는다. 타자들의 파울 타구에 맞기도 하고 빗나간 투수의 공에 맞기도 한다.

지난 8일 주효상이 공에 맞았다.

이리저리 몸으로 공을 막고, 맞는 포지션이지만 투수의 공을 목에 바로 맞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 흔치 않은 장면의 주인공이 된 주효상.

사람들을 얼어붙게 그 순간 주효상은 그라운드 위를 기었다.

엎드린 채로 그는 공을 향해 팔을 뻗어 움직였다.

공을 손에 쥔 뒤에야 주효상이 멈췄다.

찰나였지만 슬로우모션처럼 길게 느껴졌던 장면. 주효상에게는 기억나지 않은 장면이다.

주효상은 “공에 맞고 난 뒤 살짝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팔을 뻗고 있었다”면서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주효상은 다시 마스크를 썼다.

김태군의 부상으로 기회를 얻은 주효상은 선발로 나선 그 경기를 그냥 포기할 수 없었다.

또 타격감 좋은 한준수가 이날 지명타자로 출전했던 만큼 주효상은 “괜찮다”며 자리를 지켰다.

아직 5번의 공격 기회가 남은 상황에서 자신의 부상으로 지명타자 카드를 소멸시킬 수 없었던 주효상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애를 태웠던 경기, 주효상은 5회 타석에서 아픔을 잊었다.

유격수 깊은 쪽으로 공이 갔고 주효상은 “살살 뛰어라”는 코치들의 이야기를 잊고 전력 질주를 했다.

전민재의 호수비에 안타가 땅볼이 되고 말았지만 주효상은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큰 충격을 받은 지 아직 1주일도 지나지 않은 만큼 아직 공이 무섭다.

하지만 주효상은 그라운드의 소중한, 간절함으로 두려움을 지우고 다시 공을 마주하고 있다.

주효상의 부상 장면에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마운드 위의 제임스 네일도 공의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KBO리그 첫해였던 2024년, 그의 첫 시즌은 8월 24일 일찍 막을 내렸다.

네일은 NC와의 원정경기에서 맷 데이비슨의 타구에 얼굴을 맞았고, 턱관절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그렇게 네일과 KIA의 시즌이 끝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네일은 그해 가을 빛나는 우승 주역이 됐다.

큰 부상이었고, 트라우마를 걱정해야 했던 만큼 네일이 2024시즌 마운드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대로 시즌을 마무리한다고 해도 그 누구도 네일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네일은 구단과 동료 그리고 팬들의 따뜻한 마음에 용기를 냈다.

열심히 재활을 한 그는 두려움을 이기고 다시 마운드에 섰다.

한국시리즈에 맞춰 KIA는 상무와 연습경기를 진행했고, 네일이 선발로 나섰다.

부상 후 첫 실전을 치르는 네일을 보호하기 위해 KIA는 상무에 양해를 구하고 마운드 앞에 그물망을 설치했다.

그물망이라는 보호 장치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지 않았을 실전.

네일은 1회가 끝난 뒤 다시 또 용기를 냈다. KIA는 네일의 요청으로 그물망을 치우고 연습경기를 이어갔다.

“익숙해져야 한다. 하던 대로 하면서 두려움을 이겨내려고 했다”던 네일은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로 다시 팬들 앞에 섰다.

그리고 네일은 5이닝 1실점 호투로 ‘V12’로 가는 문을 열었다.

물리적인 두려움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심리적인 두려움이다.

야구는 실패의 연속이기도 하다. 3할 타자라고 해도 7번은 타석에서 실패한다.

투수 입장에서는 아웃카운트를 잡는 공을 던지기 이전에 3개의 빗나간 볼을 던질 수도 있다.

10구가 넘는 승부 끝에 겨우 아웃카운트를 완성하기도 한다.

수치상의 실패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명확한 실패도 있다.

주루 실패는 가장 극명하고 치명적인 실패다.

박재현은 지난 3일 SSG전에서 자신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이었을, 앞으로도 없을 주루 실수를 했었다.

1사에서 좌익수 플라이에 리터치 없이 뛰는 3루주자. 그게 바로 박재현이었다.

그것도 1점 차로 지고 있던 9회말에 나온 주루였다. 결국 이날 KIA는 졌다.

사령탑의 불호령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것 같은, 다음 날 박재현이 1군 덕아웃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실수였다.

하지만 이범호 감독은 주장 나성범에게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신경 써주라는 주문을 했다.

14일 훈련이 끝난 뒤 이범호 감독과 대화르 나누고 있는 박재현. /김여울 기자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날 이범호 감독은 전날 8번타자였던 박재현을 1번 자리로 끌어올렸다.

경기 직전 비가 내리면서 박재현의 속죄 경기는 진행되지 못했다.

대신 박재현은 우천 세리모니를 하면서 팬들에게 사죄의 큰절을 하고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었다.

후반기 시작에 앞서 14일 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된 훈련.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이범호 감독은 “어린 선수들 데리고 어떻게 경기를 해나갈까 걱정했는데 선수들이 많이 성장했다”며 “후반기에 박재현이 더 잘 안 해도 된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 지금처럼만 해도된다”고 실패하면서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이제 막 프로에 뛰어든 어린 선수에게는 실패의 충격은 더 크다.

이범호 감독은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하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진 선수들을 봤다.

안타까운 퇴장을 숱하게 지켜봤기 때문에 실패가 그냥 실패가 아니라 성장의 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스스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판을 깔아주는 게 결국 선배와 지도자의 역할이다.

훈련이 끝난 뒤 덕아웃에서 박재현의 주루 실수가 대화 주제가 됐다.

“어느 정도 배포인가 보려고 1번 자리에 넣었는데 비가 살렸다”며 웃음을 터트린 이범호 감독은 “사실 경기를 했어도 잘했을 것이다”라고 박재현에게 믿음을 보여줬다.

두려움과의 싸움, 나를 이겨야 상대를 이길 수 있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