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보험대리점(GA) 업계의 강한 반발에도 보험 시장의 불건전 영업 행태를 근절한다는 목표로 판매수수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취지의 개편안을 구상 중이다. 당국은 이르면 다음달 중 제도화를 추진하겠다며 구체적인 시기까지 공표했다.
3일 당국에 따르면 이달 중 보험 판매수수료 개편안과 관련해 보험사, GA업계 임직원, 보험설계사 등을 대상으로 추가 설명회를 열고 수렴한 의견을 바탕으로 최종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당국의 고강도 기조가 세워진 배경은 △특정 보험사의 상품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점 △영업 현장에서 다양한 회사의 상품을 의무적으로 비교해야 하는 비교추천제도가 유명무실해진 점 △중장기 유지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점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국내 보험모집시장에서 대표적 성과지표로 활용되는 보험계약유지율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는 추세다. 손해보험사의 경우 13회차 유지율(계약 후 13개월 지난 시점에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계약 비율)이 87.0%에 이르렀으나, 25회차에 70%대, 61회차에는 절반도 안되는 42.7%까지 내려왔다.
생명보험사는 이보다 더 낮아 13회차에 80.7%로 간신히 80%를 넘겼으며 이후 25회차부터는 70%대에도 미치지 못하다 37회차부터 50%대에 머무르며 중장기 유지율이 상당히 빈약한 편이다. 이 때문에 중장기 유지율을 높이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판매자에 대한 신뢰 저하는 모집 수수료에 대한 반감, 계약관리 소홀 등 사유에 기인한다"며 "신회계제도(IFRS17) 도입 후 과도한 판매수수료 선지급이 격화되며 부당승환(기존에 가지고 있는 보험을 정당한 이유없이 해지하고, 새로운 상품에 가입시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 잦은 설계사 이직 등 불건전한 영업 행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도한 수수료 경쟁은 보험료 인상과 보험사 건전성 저해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행 판매수수료 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판매채널의 계약 유지와 관리를 강화할 목적으로 유지·관리 수수료를 매월 분할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에는 1~2년 내 수수료를 거의 다 지급하는 '선지급' 형태로 지급됐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계약을 유지·관리할 유인이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판매수수료 선지급은 보험계약 유지율 저하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며 "모집한 계약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경우 3~7년에 걸쳐 유지·관리 수수료를 분할 지급해 보험계약의 장기적인 유지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가 상품 판매 수수료를 정확히 알고 계약하고, 고(高) 수수료 상품 판매 위주의 영업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판매수수료 관련 정보 공개를 확대하려고 한다"며 "국제적 기준인 IAIS(국제보험감독자협의회)에서 이해상풍 가능성으로 인해 보수 구조의 공개가 필요하다고 명시한 점과 주요 선진국이 해당 원칙에 상응하는 감독체계를 갖췄기 때문에 이에 준하는 개편안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최종방안이 확정될 때까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여 앞으로 예정된 의견 수렴 절차가 상당히 중요해졌다. 개편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설계사나 GA업계에서 줄곧 반대 입장을 펼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서다.
GA소속 지점장은 "짧은 기간에 받던 수수료를 장기간에 걸쳐 나눠받으면 설계사 수익이 일시적으로 급감하게 된다"며 "총액만 보면 지금보다 더 받을 수 있겠지만, 설계사는 수수료를 활용해 영업활동도 해야하고, 계약이 안 되는 달도 대비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 업계를 이탈하는 설계사가 생각보다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GA 업계는 이번 개편안대로 시행할 경우 설계사 소득이 지금보다 20~30% 감소할 것으로 자체적인 추산결과를 냈다. 특히 금전적인 기반이 약한 상황에서 설계사 일을 시작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소득 감소는 곧 업계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게 봤다.
GA 업계 관계자는 "대형 GA의 불완전판매율, 계약유지율 등 영업 건전성 지표는 최근까지 지속 개선해오며 원수보험사에 준하거나 그보다 더 나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여전히 불완전판매가 GA에서만 일어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며 "보험산업의 신뢰제고를 위해 추진하는 이번 정책이 오히려 설계사와 고객 간 신뢰를 무너뜨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GA 업계는 보험상품은 상당히 복잡한 구조에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 이를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설계사가 고객에게 알기 쉽게 안내하는 과정에서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설계사는 여기에 들어간 노력의 대가로 수수료 수익을 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지율 관리를 단순히 수수료 지급 경쟁에 의한 것이라고만 보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금융위 관계자는 "업권의 우려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차후 태스크포스(TF) 등에서도 이를 참고해 개편안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박준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