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설공주’ 변영주 감독 “변요한 연기대상 받을 듯”
MBC 금토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블랙아웃(Black Out)’(이하 ‘백설공주’)로 드라마 연출에 첫 발을 내딛은 변영주 감독과 최근 서울시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인기 소설을 뼈대로 한 ‘백설공주’는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살인 전과자가 된 청년이 10년 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그린 스릴러물이다. 촬영을 마친지 2년뒤 편성에 기대보다 우려가 앞섰으나 정작 방송이 시작되자 우려를 다시 기대로 보기좋게 바꿔놓았다.
변영주 감독은 “매주 금요일 영화가 개봉하는 기분”이라면서 “토요일 아침 8시가 되면 같은 내용의 톡들이 온다. 방송국 지인은 업계 관계자들이 보는 시청률 표를 보내주기도 한다. 아침부터 긴장이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봐주신 분들께 너무 고맙고, 배우들에게도 고맙다. 무거운 내용의 이야기임에도 시청자분들이 배우들 때문에 버텨주면서 봐주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뻔하게 나쁘지 않은, 생활감 있는 악인 연기를 해주는 어른 배우들(마을 사람들) 덕에 시청자들이 버텨준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시청자들의 평가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변 감독은 “그 어떤 평가도 평론도 찾아 보지는 않는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내가 깨닫는게 더 중요하다. 객관화를 잘하는 편이다. 나이들며 좋아진 건 ‘별론데?’ 싶을 때 남 탓을 안하려는 버릇이 생긴 것”이라면서 “모든 책임은 감독이 갖는다. 배우의 연기, 편집의 결과까지 모두. 영화나 드라마나 연출자로서 책임을 져야한다”며 “제가 시나리오를 썼는가, 남이 썼는가에 따라 책임 소재가 바뀌는건 치사하지 않나. 어차피 다 똑같이 제 책임인거다. 책임도 제가, 비판도 제가 다 받고, 칭찬이 있다면 그것 역시 제가 다 받는 것”이라고 연출자로서 강한 책임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영화할 때는 몰랐는데 동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아보는게 처음이다. 윗집 주민도 마트 주인도 내게 ‘드라마 잘 봤다’고 하더라. 길거리에서도 원치 않던 피드백을 받는다. 그럼 당황하면서도 진짜 고맙더라”라고 덧붙였다.
변 감독은 지난 2012년 개봉한 영화 ‘화차’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개봉 8일 만에 손익분기점이었던 100만 관객을 동원한데 이어 총 243만명의 관객들과 만나면서 당시 영화계에서 주류가 아니었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매력을 각인시켰다.
변 감독이 ‘화차’ 이후 대중과 만나는 작품이 바로 ‘백설공주’인 만큼 공개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다만 대진운은 좋지 않았다. ‘백설공주’는 이미 시청률 10%를 넘기며 자리를 잡고 있던 SBS ‘굿파트너’와 맞붙으며 첫방송 시청률 2.8%로 아쉽게 출발했다. 그러나 매회 꾸준히 시청률이 상승하면서 지난 21일 방송된 11회는 8.7%를 기록했다.
꾸준한 시청률 상승세의 비결은 뭘까.
변 감독은 “모르겠다”면서 “이 장르가 몇년간 드라마, 영화에서 외면을 받아온 장르다. 불호 장르가 됐더라”며 “미스터리 스릴러는 고구마를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다. 사건을 한번에 해결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서 직접 주인공들이 해결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보지 않으면 통쾌함을 가질 수 없다. 채널이나 투자사들이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라 걱정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잘해볼 수 있는 장르라 고민도 더 깊어지더라. 시청률이 오를수록 좋은 마음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 생각들이 든다”고 말했다.
변 감독의 고민은 시청자들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 수반되는 필연적인 ‘고구마’를 어떻게 참고 버티게 해줄 지 였단다.
“미스터리 스릴러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예요. 영화 ‘화차’를 만들면서 느꼈던 것도 내가 좋아하는, 즐기는 장르를 문학으로든 영상으로든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사실 저에게 코미디 장르 연출 제안이 들어오진 않잖아요. 제가 방송 나가서 웃기지만 웃기는걸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다 알잖아요. 무거운 걸 좋아하고 즐기기에 버티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이 원하는 장르를 해야 하나?’를 고민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대중이 이 장르를 더 견딜 수 있게 해줄까’, ‘어떤 장치가 있으면 더 견뎌줄까’를 고민해요.”
그런 고민이 통해서일까, 시청자평을 살펴보면 ‘꿀고구마’라는 평이 있다. 바로바로 사건이 해결되며 통쾌함을 주는 ‘사이다’가 아니라 실마리만 조금씩 보이며 풀려가는 답답함 속에도 계속 보게 하는 힘이 있는 재미있는 고구마라는 뜻이다.
변 감독은 “원래 장르와 상관 없이도, 인간적으로도 사이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고구마 같은 전개가 남았음을 에둘러 말했다. 그러면서 “사이다라는게 들을 때, 맛볼 때 통쾌할지 몰라도 이 세상에 한 번도 사이다로 해결된 적 없지 않나. 고구마들이 버티고 버텨서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건오(이가섭 분)가 끝내 자백하지 않을 때는 답답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죄인들이 처벌을 받을 수 있나. 누군가 자백으로 해결되는게 정말 재미있게 느껴질까. 건오가 해결할 사건이 아니다. 정우(변요한 분)와 상철(고준 분)이 해결할 사건이고 하설(김보라 분)이 조력자가 되어 풀어가는 사건이다.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는데 그게 계속 보게 하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백설공주’는 변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 동안 모든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영화 감독들이 시리즈를 처음 제작할 때면 어려워하는 점 중 하나가 매회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변 감독은 “정말 힘들다”면서 “이번 작품에서 가장 못한게 매회 엔딩을 쫄깃하게 만들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능적인 공부가 필요하더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시청률이 오르는게 고맙지만 동시에 반성하게 된다. 다른 방식의 이야기가 필요한 매체구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어려운 점은 바로 회차별 ‘교집합’의 연결이란다. 변 감독은 “드라마는 교집합 같더라. 1,2회 3,4회 등 다른 회차들과 교집합이 있더라. 그걸 잘 연결해야하는데 계산이 어렵더라”면서 “‘손 더 게스트’를 정말 좋아한다. 인생 드라마다. 정말 훌륭하더라. 어떻게 제작비도 제한된 상황에서 잘 찍었나 싶었다. 그보다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게 목표였다. 회차별 교집합을 잘 잡았더라”고 새삼 감탄했다.
영화와 다른 방식의 작품 진행도 어려운 점 중 하나였다. 변 감독은 “이 작품에 합류할 때 대본이 10부까지 있었다. 엔딩을 모르고 작품을 하는 것도 쉬운 경험은 아니었다”며 “비슷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대사를 바꾸는 것은 괜찮지만, 이게 뒤에 큰 영향을 주면 어쩌나 고민이 되어서 밤 12시가 넘어서도 작가에 전화해 변경할 때 뒤에 영향이 없는지 묻기도 했다. 배우의 감정을 최대로 끌어 올렸는데 만약 뒤에 더 큰 감정이 나올 거라면 (이전 장면에서) 수위 조절, 감정 조절도 계산을 해야하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첫 드라마 연출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이들은 바로 배우들이란다. 변 감독은 “배종옥, 권해효 등 배우들이 저보다 경력이 많다. 서울에서 촬영하면 촬영 후 바로 헤어지는데 당진에서 촬영하다보니 끝나고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배우들이 동네에 돌아다니고 있더라. 붙잡아 앉혀놓고 장면에 따른 감정 전환이나 배우들은 회차별 계약이니 몇회엔 나오면 안된다는 내용이나 영화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디테일한 이야기를 물어봤다”고 털어놨다.
특히 권해효를 언급하며 “20대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다. 그동안은 같이 한번도 연출 대 배우로 작품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제가 ‘말도 안되는 걸 요구해도 잘 해석해달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언제나 항상 기대를 하게 만드는 배우라 함께 작업하는게 좋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오열신이 있었는데 컷을 부르기 싫을 정도였다. 감독들은 배우의 그 얼굴을 끊기 싫어서 컷을 못 외칠 때가 있는데 그 장면을 촬영할 때가 그랬다”고 칭찬했다.
이어 변요한의 고등학생 연기를 언급하며 “제작비가 더 있었으면 조금 더 어려보이게 디에이징 할 수 있었을텐데”라고 아쉬워하며 “50대를 20대로 디에이징 하는 것 보다 늙지 않은 배우를 어려보이게 하는게 더 어렵다. 그래도 20대로는 보이지 않던가. 과거와 끊임없이 연동되는 역할인데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재미있지 않았을 것 같다. (촬영 당시) 고등학생 보조출연자들과 함께 앉아있는데 구분을 못하겠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변 감독은 “변요한이 올해 연기대상을 당연히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매회 맞고 끝나는 주인공은 없지 않았나”라고 너스레를 떨며 “거의 원톱으로 고정우라는 캐릭터 동선에 따라 모든게 이뤄지는 작품이다. 많은 칭찬을 받으면 좋겠다”고 연기대상을 수상을 기대했다.
또 친구인 권일용 교수의 도움도 많이 받았단다. 변 감독은 “범죄는 리얼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법률상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살인사건에서 10년형을 받는건 어렵다. 그렇다고 5년형이라고 하면 무게감이 확 사라지지 않나. 징역 10년이라는 무리한 설정을 가지고 가면 나머지가 리얼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권일용 교수에게 새벽 2시에도, 아침 7시에도 전화해서 도움을 받았다. 단 한 번도 싫어하지 않더라. 더 뻔뻔하게 부탁하려고 지금 준비 중인 작품에는 아예 자문역을 맡겼다”고 장난스레 말했다.
“배종옥 배우의 첫 장면을 촬영한 날 분한 감정이 들었어요.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고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피드백을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걸 바로바로 반영하는 걸 보면서 ‘나는 저 사람의 긴 리즈 시절 동안 뭐하다가 이제야 겨우 만났나’ 싶었어요. 왜냐며 내가 게을러서더라고요.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저는 게으른 사람이고 노는걸 좋아하고 계획을 세우면서 산 적이 없어요. 인간이 계획을 세우면서 살면 영화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날 처음 반성하고 다르게 살아야겠더라고요. 그 이후엔 제안 오는 걸 일단 다 보여달라고 하고 받았어요. 3년에 두 작품은 해야겠다 생각하고 준비 중입니다. 영화는 순서대로 고민한 작품을 쓰고 있고요, 드라마 등 제안이 들어오는 걸 검토하고 있어요. 다음 작품도 정해져 있습니다. 타 방송사 드라마인데 10월에 촬영 들어갑니다.”
미스터리 스릴러는 대중적인 주류 장르가 아니다 보니 ‘백설공주’도 방송 초반에 만듦새와 별개로 시청률이 크게 오르지 않는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이에 대해 변 감독은 “방송사가 원하는 시청률이라는게 있을텐데 거기까지 못가는 걸 ‘대중들은 이런 이야기를 싫어한다’고 생각 안하면 좋겠다. 그건 연출자의 문제다. 만든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어두운 정서, 장르 등 핑계를 대는건 나쁜 것이다. ‘이 장르는 안된다’는 생각을 할까봐 걱정이다. 시청률이 원하는 만큼 안 나온다면 그건 제가 못한 것이지 장르 잘못이 아니다. 대중은 다양한 장르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 몇년 특정 장르에서 잘 만들어진 작품이 나온 것일 뿐”이라며 “만약 시청자분들이 ‘백설공주’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건 변영주라는 연출자의 한계라고 생각한다”고 다시 한번 연출자의 책임을 강조했다.
‘백설공주’는 어떤 작품으로 남길 바랄까. 변 감독은 “재방송도 보게 되는 드라마면 좋겠다”면서 “채널을 돌리다가 봤을때 다시 보게 되는 드라마. 몇몇 배우들의 출세작으로 대표되는 작품이면 좋겠다. ‘아 변요한이 그때 그랬지’로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길 바란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변 감독은 “다른 장르, 사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제가 해보고픈 사극은 거대한 전투신이 있는 장르는 아니다. 그런건 기본적으로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나. 사극은 궁궐 안 이야기만도 가능하지 않나. 가벼울 수도 있고. 세상의 모든 가벼움에도 무거운 부분은 있으니까.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도 가능하다. 소재 측면에서 다양한 거 해보고 싶다”고 새로운 도전 의지를 불태웠다.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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