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국내 주식시장을 비하하며 해외 증시로 떠나던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냉소적인 표현이 무색하게,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거대한 반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랠리로 인해 코스피 지수가 급등하자 규정상 어쩔 수 없이 보유 주식을 헐값에 던져야 했던 기계적 매도 시스템에 전격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렸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한도를 최대 24.9%까지 파격적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조율하면서 장기적으로 시장을 짓누르던 150조 원 규모의 잠재적 매물 폭탄 우려가 단숨에 해소되는 분위기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자금을 책임지는 기관인 만큼 특정 자산에 돈이 몰리지 않도록 엄격한 자산배분 한도를 정해두고 포트폴리오를 관리한다.
기존 지침상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14.9% 안팎이며, 아무리 시장 상황이 좋아도 최대 19.9%의 허용 상한선을 넘길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했었다.
문제는 최근 AI 메모리 반도체 특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보유 중인 핵심 대형주들의 가치가 폭등하면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전체 자산 중 국내 주식 비중이 24.5%까지 강제로 비대해지는 얄궂은 상황이 연출된 점이다.

전체 운용 자산 규모만 1,610조 원에 달하는 거대 공룡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현재 국내 주식 평가액만 약 395조 원에 육박해 기존 규정을 명백히 초과한 상태이다.
만약 기존의 낡은 자산배분 자물쇠를 그대로 채워둘 경우, 국민연금은 기업의 실적이나 성장성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단지 비중을 맞추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주식을 팔아치워야만 한다.
시장 전문가들이 경고해 온 150조 원 규모의 매도 압력은 바로 이처럼 규정 준수를 위해 장기간에 걸쳐 억지로 쏟아내야 하는 잠재적 비중 조절 물량을 의미한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상한선을 24.9%로 전격 확대하려는 근본적인 배경은 연기금의 강제 매도가 불러올 증시 전반의 수급 붕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코스피 시장은 시가총액 상위 대형주들이 지수 전체를 견인하는 특성이 강한데, 국민연금이 이들 종목의 핵심 지분을 대량으로 쥐고 있어 매도가 시작되면 시장이 받는 충격은 배가 된다.
이번 한도 상향은 수익률이 가장 잘 나오는 효자 자산을 규정 때문에 억지로 처분해야 했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동시에 증시의 든든한 버팀목을 세워두겠다는 다목적 포석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자산배분 한도 완화 소식과 맞물려 한동안 국장을 외면하던 개인 투자자들의 스마트 머니 역시 다시 한국 증시로 빠르게 유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입증한 AI 반도체 투톱을 시작으로 전력 인프라, 원전, AI 데이터센터 등 확실한 전방 산업 모멘텀을 갖춘 섹터로 강력한 매수 수급이 확산되는 추세이다.
서학개미 열풍에 밀려 극심한 소외감을 겪던 국내 증시에 개인의 적극적인 유입과 대형 기관의 매도 중단 조치가 동시에 겹치며 이례적인 수급 시너지가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국민연금의 자산 한도 상향 논의가 증시를 무조건 폭등시키는 만능 치트키는 아닐지라도, 시장을 만성적으로 짓누르던 거대한 상방 제약 요인 하나를 완전히 제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평가한다.
환율 변동성과 글로벌 경기 둔화 등 대외적 리스크는 여전히 상존하지만, 최소한 국내 최대 주포가 아군을 향해 기계적인 총을 쏘는 비극은 막아냈기 때문이다.
감정에 휘둘려 국장을 무작정 떠나기보다 대전환의 변곡점을 맞이한 한국 증시의 수급 변화를 냉정하게 읽어내고 우량 자산을 선별하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