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전쟁의 최전선에서 세계 최강 기업들의 '깐부 동맹'이 출범했다. 30일 저녁 서울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서 펼쳐진 극적인 만남은 단순한 미식(美食)의 시간이 아니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와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 현대차의 정의선 회장이 나눈 이 자리는 미국과 한국의 AI 반도체 생태계를 재편할 신호탄이었다.
황 CEO는 1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대만 출장 때마다 현지 야시장을 돌아다니던 그가 이번엔 한국의 '치맥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싶다며 이 자리를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테이블 위 맥주잔 뒤에는 수십조 원대의 비즈니스 협상이 오갔다. 이 회동 다음날인 31일, 엔비디아는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네이버 등 국내 주요 기업과 AI 반도체 공급 계약을 새로 체결하고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 삼성의 승리, HBM4 독점 노림
삼성전자에게 이번 협력은 반도체 산업에서의 입지 재구축을 의미한다. 지난 수십 년간 메모리 반도체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삼성이 최근 SK하이닉스에 추월당하면서 위기감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올해 2분기 기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62%의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반면, 삼성은 17%에 그쳤다.
하지만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3E' 제품의 대량 생산을 시작했으며, 엔비디아로의 납품을 진행 중이다. 더 중요한 것은 6세대 HBM4 시장이다. 삼성은 HBM4 샘플 출하를 완료했으며, 연말 양산을 목표로 생산 준비를 진행 중이다. 업계 분석가들은 2026년부터 삼성의 시장점유율이 30%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부품인 HBM 메모리 공급 능력은 곧 글로벌 AI 생태계에서의 영향력을 의미한다. 엔비디아의 GPU가 컴퓨팅 파워라면, 삼성의 HBM은 그 파워를 최대한 활용하게 해주는 '신경계'와도 같다.
>> 현대차, 로봇·자율주행의 미래를 준비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이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도 분명하다. 현대차는 지난 1월 엔비디아와 로봇, 자율주행, 스마트공장 등 AI 기반 기술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이번 협력은 그 제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에서 현대차의 고민은 크다. 회사는 2027년까지 'Level 2+'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며, 내년 하반기에는 고성능 자동차 컴퓨터 기반의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 파일럿 차량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이 필수다.
현대자동차는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엔비디아의 고성능 반도체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대차가 추진 중인 로봇 사업과 자동차 사업의 융합에 최적화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와 미국 기업 Aptiv가 설립한 합작 회사인 'Motional'을 통한 로봇택시 서비스 확대 계획도 이 협력을 통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국가 전략 차원의 '반도체 동맹'
이번 치맥 회동은 단순한 기업 간 거래를 넘어 국가 전략 차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 속에서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 진출에 제약을 받고 있다. 반면 한국은 최첨단 반도체 기술, 안정적인 공급망, 기술 개발 역량 등에서 미국의 신뢰를 받고 있는 국가다.
엔비디아가 삼성, SK, 현대, 네이버 등 한국의 주요 기업들과 맺는 이번 협력은 '반도체 공급망의 다변화' 전략으로 해석된다. 황 CEO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까지 언급하며 "한국 국민을 기쁘게 할 발표"라고 예고한 것도 이 같은 국가 간 협력의 중요성을 반영한 것이다.
>> 한국, AI 반도체의 세계 무대에 서다
이번 협력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차에 공급될 반도체만 해도 수조 원대에 달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여기에 삼성의 HBM4 공급, SK의 AI 칩 협력 등이 더해지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한국 산업 생태계에 미칠 파급 효과다.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이 강화되면, 한국의 글로벌 반도체 산업 지위는 더욱 견고해진다. 현대차가 엔비디아와의 협력으로 자율주행과 로봇 기술을 앞당기면, 한국은 미래 이동성 시장에서 선도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SK와 네이버의 AI 칩 공급 협력은 한국의 AI 인프라 구축을 가속화할 것이다.
31일 경주 APEC CEO 서밋에서 황 CEO가 무엇을 발표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서울 삼성동의 치킨집에서 시작된 이 작은 모임이 한국 산업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표는 한국의 미래 경제를 좌우할 중요한 신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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