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미국 반도체 공장 신설 회의론 나온다…왜?
‘100대78′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가 미국과 아시아(한국·대만)에 첨단 시스템 반도체 공장을 짓고 10년간 운영했을 때 드는 총 비용(TCO·Total cost of ownership)을 비교한 수치다. 미국에서 드는 비용을 100원이라고 봤을 때, 한국·대만은 78원이 든다는 것이다. 같은 기준으로 중국은 63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미 반도체 업계를 대변하는 미국반도체산업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지난 2021년 ‘불확실한 시대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강화’라는 제목으로, 자체 경쟁력을 분석한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첨단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짓고 10년간 운영하는 것이 한국보다 약 29% 비싸다는 것이다.
미 반도체산업협회는 그 이유로 부족한 정부 보조금과 건설비, 인건비, 전기·수도요금 등 상대적으로 비싼 각종 비용을 꼽았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법을 만들어 반도체 제조 시설 보조금 390억달러를 비롯해 총 520억달러(약 68조원)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보조금 신청 조건으로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예상 초과 이익 공유 등 까다로운 조항을 내걸고 있는 데다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반도체 공장 인건비, 건설비가 더 치솟고 있어 “미국에 지으면 지을수록 오히려 손해가 더 커지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한국은 지난 15일 정부가 과감하게 수도권 규제를 풀어 경기도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겠다고 발표했고, 이튿날엔 여야가 대기업의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를 15%까지 상향하는 데 합의하는 등 기존 약점들을 빠르게 보완해나가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선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미국의 투자 매력도가 현실적으로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과연 미국에 갈 필요가 있느냐” “미국 생산 기지 구축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 정부의 까다로운 반도체 보조금 조건과 인플레이션 탓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공장 건설 비용, 반도체 보조금 상향 등 국내 투자 여건 개선….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미 투자 회의론’이 빠르게 부상하는 것은 위 세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30%가량 높은 건설·운영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공장을 지었던 가장 큰 이유는 ‘건설 속도’와 ‘고객 요구’였다. 반도체 업계는 단 6개월만 투자가 늦어도 수조원의 손해를 볼 만큼 ‘적기(適期) 투자와 건설’이 생명이다. 하지만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 데 한국은 8년, 미국은 3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에선 각종 규제와 인허가에 발목 잡힌 경우가 많았다. 미국 큰손 고객들도 ‘현지 생산, 현지 조달’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최근 한국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여야의 대기업 반도체 세액공제 15% 상향 등이 속도감 있게 이어지면서 투자 대상으로서 한국의 약점을 빠르게 보완하고 있다. 일본 닛케이는 “삼성이 국내 장기 투자계획을 밝히면서 반도체 장비, 소재 업체들의 한국 진출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 美반도체협회, 경쟁력 분석… 비용 보니 美 100 vs 韓 78
미국의 반도체 공장 건설비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올해 말 완공이 목표인 삼성의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은 건설비가 애초 계산(170억달러·약 22조2000억원)보다 50% 가까이 증가한 250억달러(약 32조7000억원)로 예상된다. 현지 인건비뿐 아니라 철강재 등 건축 원자재 비용이 가파르게 오른 탓이다. 이에 따라 공사비의 최대 15%인 미 정부 보조금도 애초 3조3000억원에서 4조9000억원으로 커지지만 공사비 증가 폭(10조5000억원)을 감당하긴 역부족이다.
미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고 있는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 TSMC 역시 건설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부지 조성과 장비 도입에 차질을 빚으면서 공장 가동 시기가 1년가량 늦춰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심지어 TSMC의 애리조나 공장 투자 계획은 사업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사모펀드 커틀랜드 캐피털의 커트 양 회장은 “비즈니스 관점에서 TSMC의 미국 투자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애리조나 공장은 TSMC나 대만에 어떤 이익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 정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미 국무부 라민 툴루이 경제기업담당 차관보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반도체 보조금 규정에 초과이익 환수, 기업 기밀 공개 등 독소 조항이 너무 많다는 외신 기자들의 지적에 대해 “외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기업에도 동일한 보조금 조건이 적용된다”고 일축했다. 또 “반도체가 됐든 청정에너지가 됐든 최근 발표된 (기업들의) 다양한 투자 계획은 투자처로서 미국의 매력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 미국 보조금은 까다롭고, 비용은 올라가고… ”미국 투자 계획 재검토 필요”
이와는 반대로 정부가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방침을 밝힌 데다 여야가 반도체 세액공제 법안에 전격적으로 합의하면서 국내 투자 여건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향후 20년간 300조원의 투자 계획을 밝힌 삼성으로서는 굳이 비싼 건설비·인건비, 인력 공급 문제 등을 감수하면서 미국 투자에 나설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인허가를 좌지우지하는 일반 산업단지와 달리 용인의 국가 산단은 국토교통부 장관 주도로 부처 협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반도체 단지 구축이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외 대안 찾기’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대만 TSMC는 독일 정부와 드레스덴 반도체 공장 건설을 놓고 보조금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로이터가 16일 보도했다. 삼성전자 역시 미 투자 전략을 재검토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20년간 텍사스주에 25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11개를 짓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지난해 주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 삼성 사정을 잘 아는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투자 여건이 개선되고 있어 기존에 세워뒀던 미국 투자 계획을 재검토해볼 여지가 충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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