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集이다] 집은 집(雧)이며 마당을 감싼다
집이란 무엇일까? ‘a0100z’ 성상우 소장이 건축으로서의 집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이웃, 사람과 환경이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야 할지 우리에게 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전을 통해 본질을 묻는다.
Sous rature(지움 아래)
사물에 대한 이름(정의)이 절대적일 수 없고 시대와 공간에 따라 변해야 한다. 지금부터의 이야기 또한 이 시대에 하나의 정의이지 불변의 진리일 수 없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당부 말씀드린다.
Q 우리가 사는 집, 아파트라고 할 수 있을까?

2024년은 우리에게 아파트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 해였다. 11월 아이돌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부른 노래 <아파트(APT)>는 아파트라는 단어를 새롭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로제의 <APT>는 술자리에서 주로 하는 ‘아파트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노래라 한다. 여럿이 원으로 둘러앉아 손바닥을 번갈아 쌓아 지정한 숫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탈락하는 게임이다. 게임이 인기 있는 것은 누구나 쉽고 간단히 배울 수 있고 참여자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동일한 평면이 수직으로 쌓여가는 우리의 아파트와 닮았다. 아니 세계 도시민이 아파트, Apartment, アパート 등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같은 구조에 살고 있어 이 게임 또는 이 게임에서 이름을 딴 노래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파트의 어원을 살펴보면, ‘분리된’, ‘별개의’라는 뜻의 라틴어 ‘Apartare’에 닿게 된다. 이 단어는 18세기 프랑스에서 귀족들이 큰 저택을 여러 개의 독립된 공간으로 나누어 주거 공간으로 활용한 것을 의미하는 ‘아파르트망(Appartement)’에서 비롯되었다.
2025년 현재 한국인 주거 공간의 반 이상이 아파트라는 통계에서 볼 수 있듯 현재 우리 삶을 지탱하는 집은 아파트가 되었다. 아파트가 집의 대명사가 된 지금, 근대화와 산업화에 따른 인구 증가와 유입을 위해 도입한 아파트가 ‘분리’라는 개념이 아닌 ‘함께’라는 개념의 어원을 가진 주거 양식으로 들어왔다면 이 사회는 어떤 모습이며 어떤 삶의 모습이 되었을지 의문이 든다. 로제의 <APT>에 열광하는 것은 노래 가사 중 ‘Turn this 아파트 into a club’처럼 분리의 APT가 아닌, 함께 즐거운 아파트를 그리워한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는 단독주택, 다세대, 다가구, 아파트, 주거라는 단어 모두를 아우르는 “집”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COVID-19 유행을 지나고,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고, 소유에서 점유로 바뀌어 가는 시대에 집이라는 정의를 다시금 생각하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첫 단추가 아닐까.
우리가 집을 통해 삶의 방식을 생각해 보는 것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이 말한 “한 시대의 병은 사람의 삶의 양식이 변화함으로써 치료된다.” “사유가 삶의 양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삶의 양식이 사유의 변화를 일으킨다”와 같지 않을지 생각해 본다.
Q 사전에서 살펴보는 집의 어원?
‘집’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사전에서 살펴보면 ‘짓다’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집의 옛말도 ‘짓’이었고, ‘짓’은 초가지붕에 올린 ‘짚’의 변형이라는 학설도 있다. ‘집을 짓는 행위’와 ‘재료’로 집을 표현하였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지붕이라는 어원도 가지고 있다.
먼저 ‘짓다’에 대한 말을 살펴보자. 밥을 짓고, 옷을 지으며, 집을 짓는다. 이 모든 것은 ‘짓다’라는 동사를 공유한다.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단어가 바로 ‘짓다’이다. 그러면 집에서 ‘짓다’라는 어떤 의미와 방식이 있을까? 이 이야기는 간략히 설명하겠지만, 짓는 것의 기본은 ‘자연과 어떻게 만나는가’다. 땅과의 관계(기초)에 이웃한 환경과 만남(기둥, 벽체) 그리고 하늘 환경과 만남이다. 이것을 쉽게 요약하면 ‘천지인(天地人)’과의 만남이라 할까. 짓는 방식은 크게 절석적(截石的, Stereotomic)과 결구적(結構的, Tectonic)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돌처럼 덩어리를 연속적으로 쌓아 올려 구축하는 방법을 절석적이라고 하고, 가느다란 부재를 사용하여 골조를 짜서 올리는 방법을 결구적이라고 한다. 지붕은 ‘집’과 ‘우’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옛말에서는 ‘지붕’이 ‘집 우(宇)’였다. ‘우’는 위라는 뜻이다. 곧 지붕은 집의 위이다. 우(宇)처럼 주(宙) 역시 본디 집을 상징했다가 나중에는 이 현상 세계를 감싸는 무엇을 상징하게 되었다. 우주(宇宙)란 삶의 현상 세계를 감싸 우리를 안온케 하는 ‘거대한 지붕’이었다. 둥근 지붕인 ‘돔(Dome)’은 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도마(Doma)’에서 나왔다. 지붕이 집을 의미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것 같다.

지붕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바닥에 앉은 사람을 하나로 묶어 그 자리에 함께 있음을 확인해 준다. 지붕은 가족을 덮어 준다. ‘짓다’와 ‘지붕’에 대한 사례들은 다른 회차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Q a0100z가 생각하는 ‘집’이라는 어원은.
몇 해 전부터 ‘집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몰두하고 있는 a0100z에게 집에 대한 큰 영감을 준 발견이 있었다. 하나는 장욱진 화가의 가로수(1978)이고, 또 하나는 집(集)이라는 한자의 어원이었다.

이 두 이미지가 겹치면서 서로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가로수 그림은 가로수 나무 아래 세 가족이 앞서 걸어가고 뒤를 따라 강아지와 황소가 뒤따라가는 예닐곱 채의 집들이 가로수 나무 위에 얹어져 있다. 한자 ‘집(集)’의 원형인 ‘집(雧)’자는 꼬리 짧은 새(隹) 세 마리(많다는 의미)가 나무 위에 모여 있는 모습이다. 많은 새가 나무(땅)에 의지해서 ‘따로 또 같이’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장욱진의 그림 <가로수>가 마치 집(雧)이라는 글자의 ‘꼬리 짧은 새’를 사람이 사는 집으로 치환해 둔 것처럼 보였다. 이 두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새들도 사람도 어디에 의지하여서 모여 산다는 것이다.
고대철학(동양철학, 그리스 철학)에서는 인간을 우주의 축소판이라 여겼고, 현대 과학에서도 두 요소의 구조적 유사성이 발견되었다. 이런 유사성이 사람의 몸을 감싸는 집과 마을 사회, 그리고 우주가 유사성을 가진다는 확신 아래 집을 집(集)이라고 정의 내려본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사람의 몸을 ‘살아 있는 의미들의 중심(핵)’ 또는 ‘살아진 의미들의 집합체’하고 말한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구전으로 전승되어 온 말에는 우리의 생각이 담겨 있다. 몸(마음), 마을, 사회의 어원을 살펴보면 몸(마음)의 모음이라 한다. 마을은 ‘모을’, 사회(社會)는 영어 ‘Society’를 한자어로 번역한 것인데, 사(社)는 ‘땅의 신’, ‘모임’의 의미이고 회(會)는 ‘모이다’는 의미이다. 붙여서 설명하면 땅을 바탕으로 모여 산다는 것이다.
마음, 몸(모음) → 집(모일) → 마을(모을) → 사회(땅을 바탕으로 모이다). 작은 소우주에서 큰 우주로의 과정은 앞서 말한 ‘모이다’를 그 어원으로 하고 있다. a0100z가 생각하는 집의 어원은 집(集, 모일 집)이라 생각한다. 함께 모여 살기 위해 비와 바람을 막아 주는 지붕(벽을 포함)을 짓기 위한 것, 그것이 집이 아닐까? 집은 ‘지붕 / 짓다 / 모이다’가 서로 관계를 맺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Q 모이는 모든 곳은 집이다.
우리가 잠을 자는 주거만이 집이 아니다. 몸집, 밥집, 술집, 절집 등 우리 일상에서 많은 집을 만난다.
루이스 칸은 “모든 건축은 주택(집)이다”라고 말하듯, 그것은 살기 위한 장소라는 것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집의 가장 큰 힘은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장소와 공간이 집이다.” 그래서 이 집은 집(集)이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주거의 집만을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Q 사람, 이웃, 자연환경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
집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떻게 모으고 모여야 할까? 인류 공통의 집단 무의식에 각인 되어 있는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어머니 뱃속이 아닐까. 한자 ‘포(包)’는 임신한 어머니의 배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 완전히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반쯤 열린 어머니의 배에서 아이가 밖으로 나와 있는 형상이다. 안과 밖에 동시적으로 걸쳐져 있는 상태다. 정자와 난자의 수정으로 시작되는 인간의 역사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명체 진화의 역사적 축소판이다. 10개월 동안 쉼 없이 성장과 탈바꿈의 변화를 겪는다. 포(包)의 형상은 이런 변화의 과정을 잘 표현한 형상이다. 좋은 집이란 이런 변화를 옥죄는 가둠이 아니라 안온함을 가지면서도 변화를 잘 받아주는 구조라 하겠다.
인류 최초의 주거가 어머니 뱃속 같은 형상을 닮은 동굴이나 움집 같은 것이 이런 연유에 기인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어머니의 모태를 닮은 것으로 편안함과 따스함과 안전함을 가졌다. 엄마가 아이를 품어주고 따뜻한 포대기로 감싸는 자체가 공간을 한정해 주는 행위이다. 사람을 ‘감싸는 공간’ 안에서 체험을 만드는 것이 건축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며 시대를 막론하고 변함없는 건축 공간의 근본이다.
우리의 생활과 관계 깊은 단어 중에는 이 ‘감싸다’를 어원으로 하는 것들이 많다. 먼저 환경은 영어로 Environment인데 ‘Environ’이란 감싸는 것을 말한다. 환경(집)은 ‘신체를 감싸는 주변’이고, Urban(도시)는 라틴어 ‘Urbs’ 어원으로 성벽으로 에워싸인 도시를 뜻한다. 그리고 한자 읍(邑)은 고을이나 마을이라는 뜻인데 읍(邑)은 口(에워쌀 위)와 巴(바랄 파, 무릎을 꿇는 모습)가 합쳐진 것으로, 성안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뜻이다.
Q 풍수(風水)의 원리도 감싸는 것이라고?
풍수(風水)란 ‘장풍득수(藏風得水)’ 즉,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다는 말을 줄인 표현이다. 물을 얻으면 생기가 머물고, 기가 흩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살아 있는 생명체라 생각해 왔다. 건축학자 코야마 히사오(香山壽夫)는 “이상적인 주택, 즉 자기의 생(生)과 대지의 기(氣)가 합일하는 명당을 앉힐 지형을 나타낸 명당도는 완만한 언덕 몇 겹으로 둘러싸이고 남으로 열리며 중심에서 조금 높은 언덕과 용솟음치는 샘을 가진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라며 “그것이 여러 차례 둘러싸여 닫히고, 남쪽의 태양을 향해 열려 입구가 되며, 마주하는 바깥의 산과 이어지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라고 했다. 결국, 풍수지리는 둘러싸여 있는 평안한 지형인 혈좌(穴座)를 찾는 것이다. 풍수에서는 산맥의 흐름을 땅의 기운이 흐르다 굳어진 것으로 보았다. 이 산맥의 흐름의 용의 움직임으로 간주하고 이를 간룡(看龍) 체계로 보았다. 주산(主山)은 부모이고 혈(穴)은 자식 즉, 태(胎 : 복중의 태아)인데 앞서 말한 포(包)의 형상처럼 감싸는 형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좋은 집과 터는 신체를 에워싸고 안전함을 보장하며, 또 다른 이면에는 사람과 바깥 세계를 이어준다. 집과 마을은 사물의 존재를 넘어 옷처럼 감싸고 감각을 전달하며 사물이 사람과 환경, 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Q 집은 무엇을 감싸는가?
감싸고 모아냄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이응노 화가의 <군중>이 아닐까. 둥글게 둥글게 팔을 뻗어 서로의 손을 잡아(Personal Distance) 원형으로 돌다, 또 옆의 다른 무리와 연결되어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쉼 없이 이어지는 율동이 삶의 순환과 변화를 감싸는 마당을 닮았다.

우리의 집짓기를 순서대로 살펴보면 앞서 풍수의 개념에서 보았듯이 가장 먼저 좋은 기의 흐름이 응축된 입지를 선정한다. 그다음 입지의 가장 적당한 곳에 마당을 선정하고 그에 따른 건물 배치(방과 마루)가 이루어진다. 이후에는 ‘소우주로서의 마당’과 직접 연계된 방이 자연경관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집짓기가 다른 문화권의 집짓기 과정과 다른 특이한 점은 비물질(마당)을 감싸기 위해 물질(채, 담 등)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우환의 <관계항>이라는 작품을 보면 우리의 마당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작품이 보여주는 외견상의 단순함은 결과가 아니라 바깥과 고도의 연대를 위한 배려와 엄격한 자기 한정으로부터 오는 성격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체를 지향하는 미니멀아트와 달리, 외부와 본질적으로 관계하기 위한 단순함이다. 이 단순함은 오히려 작품의 대상성을 애매하게 한다. 단순한 화면의 대상성은 그 자신을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살리는 골조-회화 공간을 여는 원소이다. 무한(無限)이란 추상적인 무한 개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와 외부가 교통하는 가변성의 세계를 두고 일컬음이다. 여기에서 무한의 개념이 크고 넓은 한정 없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내외부의 소통과 교류라는 점에서 마당은 이 무한의 개념과 닮아 있다.”

우리가 둘러앉은 곳에 마당이 있었다. 마당은 표면 장력을 가진 동그라미처럼 구심력을 가진 공간이고, 마당은 집이라는 사슬을 만드는 하나의 고리이다(<집은 디자인이 아니다> 발췌, 김기석·구승민, 도서출판디).
지붕이 없는, ‘마당’이라는 방을 다른 방들이 둘러싸는 형식은 모여 사는 공동체의 주거 방식을 대변한다. 건축은 사이(마당)에 있다. 우리의 ‘몸’은 ‘사이’라는 공간을 몇 겹씩 끼어 입고 있다.
그렇다면 마당의 어원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도 마당이란 말의 어원이 명확하지 않다. 다음 호에서는 a0100z가 다른 단어를 유추하여 마당의 어원을 살펴보는 데에서 시작해 본다.
건축가_ 성상우, 오혜정 : a0100z(아:백제) space design

글_ 성상우 | 사진·그림_ a0100z | 구성_ 신기영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5년 7월호 / Vol. 317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