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켓 1장에 80만원?”…임영웅 콘서트 가기 힘든 이유 있었네
“‘5분 안에 전석 매진’…기획사, 매크로 묵인했을지도”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임영웅 콘서트의 티켓 구하기는 '총성 없는 전쟁'과 다름없다. 단 1분 안에 티켓 사이트에 접속해 좌석을 선택하고 구매까지 한꺼번에 다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지체되면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뜨기 때문에 '광클릭'(컴퓨터 마우스를 빠르게 누른다는 뜻)은 필수다. 5월25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임영웅 콘서트의 수용 가능 인원은 5만여 명이었는데, 무려 370만 트래픽을 기록했다. 부모님을 위해 티케팅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자녀들 사이에서는 "임영웅이 졸지에 불효자로 만든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런 '티켓 전쟁'에는 이유가 있었다. 암표상들의 '불법 싹쓸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10월1일 서울경찰청 범죄예방질서과는 공연법 위반 혐의로 20∼30대 남녀 암표 판매사범 7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유명 가수 콘서트와 뮤지컬 티켓 등을 매크로(한 번의 입력으로 특정 작업을 반복 수행하도록 제작된 프로그램)를 통해 대량 구매한 뒤, 중고 시장에 되파는 수법으로 폭리를 취했다.
"14만원 나훈아 공연티켓, 50만원에 되팔아"
암표상들이 노린 건 임영웅 콘서트만이 아니었다. 가수 나훈아, 버추얼(가상) 걸그룹 이세계아이돌 '릴파' 등의 콘서트와 뮤지컬 《드라큘라》 《그레이트 코맷》, 배우 변우석 팬미팅 등 분야도 다양했다. 소위 돈이 되는 공연이나 행사라면 가리지 않고 표를 대량으로 사들였던 것이다.
암표상들은 대거 사들인 표를 중고 시장에 되팔아 억대 수익을 챙겼다. 이들은 정가 18만7000원인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구매한 뒤 중고 시장에서 80만원에 판매했다. 정가보다 4배 이상 올린 것이다. 정가 14만3000원이던 나훈아 콘서트 역시 50만원에 되팔았다. 배우 변우석 팬미팅의 경우 정가는 7만7000원 상당이었으나 30배 넘는 가격인 235만원에 팔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된 피의자 중 20대 무직 여성 A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1억원을 챙겼다. 20대 남성 B씨는 매크로로 확보한 임영웅 콘서트 티켓 등 15장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 팔아 1338만원의 수익을 냈다. 20대 군인 남성도 같은 방식으로 543만원을 벌었다.
암표상들은 여러 개 명령을 한 번에 수행할 수 있는 '매크로'를 통해 대량의 티켓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매크로는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어 시간과 노력을 절감할 수 있는 편리한 기술이지만, 티케팅 등에서 편법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이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좌석을 선택해야 하고, 신용카드 번호와 유효기간 등 개인정보를 일일이 입력하는 등 시간과 품이 든다. 그러나 매크로를 이용하면 사람보다 수천 배 이상 빠른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모든 것을 입력해 주기 때문에 클릭 한 번으로 수백 장의 티켓을 한꺼번에 사들일 수 있다.
박기웅 세종대 정보보호학과 교수가 말했다. "사람은 눈으로 본 뒤 손가락 근육을 통해 클릭을 하는데, 컴퓨터는 1초에도 수십억 개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몇 시 몇 분이 되면 예매 버튼을 눌러줘' '예매 버튼이 활성화되면 클릭해줘' '결제 화면으로 바뀌면 특정 키보드를 눌러줘'와 같은 작업을 코드로 짜서 컴퓨터가 수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컴퓨터 한 대만 있어도 여러 대의 클라우드 서버를 임대할 수 있기 때문에 손쉽게 티켓 수백 장을 구매할 수 있다."
"노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 문화생활 배제"
매크로 프로그램은 SRT 승차권 구매, 골프장 예약, 게임 조작 등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직장인 김아무개씨(27)는 블로그를 통해 매크로 프로그램 설치 방법 등을 알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기자에게 직접 프로그램을 보여주며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 한 번만 설치하면 쉽게 승차권을 구할 수 있다"면서 "새벽 시간대에 일어나 빈 좌석을 찾고 1초에 한 번씩 새로고침을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용을 따로 지불하지 않고 20초짜리 광고 서너 개만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매크로를 단순 이용했다고 해서 불법은 아니다. 다만 매크로를 통해 티켓을 구매한 뒤 웃돈을 붙여 되팔면 공연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지난 3월 개정된 공연법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돼있다.
매크로를 통한 불법 티켓을 근절하기 위해선 예매처와 연예기획사 등의 협조가 절실하다. 경찰의 단속·수사만으로는 암표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어서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바른AI연구센터장)는 "매크로가 동원되면 티켓이 매진되는 속도가 빨라질 테니 기획사 입장에서는 '5분 안에 전석 매진'이라는 식으로 홍보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예매처 입장에서도 매크로를 썼든 안 썼든 티켓이 전부 팔리기만 하면 되기에 암묵적으로 허용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티켓 구입을 막는 방안도 있다. 구매자가 사람임을 인증하는 장치를 예매 절차에 끼워넣는 것이다. 구글 등에서는 '횡단보도가 있는 사진을 모두 체크하라' '신호등이 표시된 그림을 골라라'는 등의 문제를 통해 사람과 AI를 식별하고 있다. 박기웅 교수는 "인간만이 풀 수 있는 문제를 넣어줌으로써 매크로를 막을 수 있다"며 "물론 구매자들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겠지만 불편함과 보안은 상충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매크로를 통한 암표의 횡행은 '디지털 디바이드' 문제로도 직결된다. 디지털 디바이드는 경제적·사회적 여건 차에 의해 발생하는 정보 격차를 의미한다. 컴퓨터에 능숙한 2030세대가 매크로를 통해 표를 대거 사들이고, 구매력 있는 소수만이 이를 가져간다면 결국 경제적으로 어려운 노인들은 문화생활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매크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기성세대들은 디지털 사회에서 점차 소외되고 있다. 티케팅에 성공한 젊은 사람들은 전부 버스나 기차를 앉아서 타고 노인들은 입석으로 밀리는 것이 사회 정의가 아니다"며 "디지털을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들의 격차를 해결하는 게 국가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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