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고 스펙에도 ‘그냥 쉰다’는 청년 70만 명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 위한 ‘일자리 개혁’ 불가피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지난 8월 경제활동인구(15~64세)의 고용률은 69.8%를 기록했다. 31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 수준이다. 실업률은 2.1%로, 1년 전보다 0.5%포인트 낮아졌다. 8월 기준 역대 최저치다.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얘기할 만도 하다.
유독 청년층(15~29세) 고용률만은 46.7%에 그친다. 사실 전체 고용률이 높아진 것도 고령층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다. 더구나 일도 하지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면서 아예 실업 통계에서 제외되는 청년층이 급증하고 있다. 공부하고 있거나 직업훈련을 받지도 않으면서 일하고 있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이른바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다.
지난 7월에는 1년 전보다 4만 명 늘어난 44만 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30대까지 합치면 그냥 쉬는 사람은 73만 명으로 늘어난다. 청년층 인구에서 그냥 쉬는 청년의 비중은 5.4%로 20명 가운데 1명이 그냥 쉬고 있는 셈이다.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일이나 삶에 대한 자세나 생각부터 과거 세대와 달라진 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일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관은 변했는데 기업의 조직문화는 변화가 더디다. 적응도 어렵고 그렇다고 일에서 보람을 찾기도 쉽지 않다. 치열한 경쟁과 사회적 압박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없어 자산을 마련하기 위한 경제활동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는 이유도 있을 수 있겠다.
고용시장 양극화에 수급 불균형 '심각'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용시장의 이중 구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취업 자체가 어렵다고는 할 수 없다. 지방 중소기업까지 찾아보면 일자리는 꽤 있다. 비어있는 일자리가 제법 있음에도 실업률이 높은 현상의 주원인은 일반적으로 노동에 대한 수급 불일치 문제다. 우리나라는 늘어난 고학력자 숫자와 비교해 경제가 그에 합당한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청년들은 흔히 말하듯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진 세대'다. 201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대학 진학률 평균은 44.9% 정도에 불과한 반면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69.8%로 압도적 1위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진 세대는 당연히 '단군 이래 가장 높은 눈'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높아진 눈을 채워주지 못한다. 대기업 일자리 증가율은 올 6월 전년 대비 0.2%에 그친 데 이어 7월에도 0.7%에 불과했다. 결국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일하기를 원한다는 청년들에게 구직 활동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면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근로 조건에 맞는 일자리가 없어서(42.9%) 또는 일거리가 없거나(18.7%), 교육·기술 경험이 부족해서(13.4%) 쉬게 됐다는 응답이 많다.
현실을 생각하면 청년들의 선택을 탓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OECD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근로자의 세전 월평균 임금은 대기업이 591만원인 데 반해 중소기업은 286만원에 그쳤다.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연봉만이 아니라 복지와 대우, 사회적 인식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크다는 걸 모두가 안다. 게다가 중소기업에 한번 입사하면 대기업으로의 이직도 쉽지 않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한편으로는 고용의 안정을 가져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로자의 이동을 제한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첫 일자리의 임금, 기업 규모, 고용 형태가 미래 고용과 임금 수준에 장기간 영향을 미친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경력을 시작하는 것이 향후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면 현실적으로 청년들로서는 당장 급하다고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얻기보다는 쉬는 것이 오히려 최적의 선택이 된다.
거듭되는 취업 실패로 받은 상처가 아예 일자리를 찾는 것을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흔히 이를 '상흔(scarring)'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2024년 5월 기준으로 대학 졸업자 중 취업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청년은 약 11% 가까이 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취업에 실패하고 아예 구직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짊어져야 하는 개인적 상처는 말할 것도 없지만, 노동 공급 감소와 청년층의 경력 단절이 가져오는 국가적 부작용도 치명적이다. 당장 국내총생산(GDP)의 감소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인적자본 축적의 저해로 이어져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해지고 미래의 GDP도 줄어든다.
"청년 문제, 교육·노동 개혁 병행해야 해결"
정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청년의 노동시장 유입을 위한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을 발표했고 심지어 지난주에도 당정 협의를 거쳐 장기 미취업 청년 발굴과 취업 지원 서비스를 위한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포함해 우리 사회의 복합적인 문제들 때문에 발생하는 실업이나 구직 포기를, 취업 지원에만 초점을 맞춘 인턴제도나 직업훈련 정도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국가적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아직 성과는 없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인구 감소와 고령화다. 마침 또 올해부터 11년간 순차적으로 60세 법정 정년에 도달하는 '2차 베이비붐(Baby boom) 세대(1964~1974년생)'가 현업을 떠나게 된다. 2023년 말 기준으로 954만 명에 이른다. 당연히 생산가능인구는 더 빠르게 줄어든다. 한국은행의 전망에 따르면 2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앞으로 10년 동안 연간 경제성장률은 0.3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와중에 청년들이 노동시장을 이탈하면 성장률 하락 폭은 더 커질 것이고 경제 활성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저 쉰다는 청년의 증가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모순과 문제점들이 모두 얽혀 있다. 일할 청년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있는데, 정작 일하는 청년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고학력 비경제활동인구를 기형적으로 양산하면서 낮아진 출생률을 높이자는 것은 의미 없는 구호다. 날이 갈수록 청년층 인구는 줄어드는데, 고용 지표 또한 악화하고 있다.
9월21일은 청년의 날이었다. 청년의 권리 보장과 발전의 중요성을 알리고, 청년 문제에 관심을 높이기 위해 법으로 제정한 기념일이다. 올해도 행사가 많았고 정치권에서는 청년에 대한 지원을 다짐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응원과 위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현 정부가 연금 개혁과 함께 3대 과제라고 불러온 교육 개혁과 노동 개혁이 그만큼 시급하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