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화재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정부 부처 간 책임 회피와 제도 미비가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화재 발생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점에서 단일 기관 중심 대응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비판이다.
최영석 원주한라대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교수는 9일 제주신화월드에서 열린 '국제 e-모빌리티 엑스포' 기자 간담회에서 "전기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건축, 소방, 에너지, 통신까지 얽힌 복합 시스템인데, 아직까지도 부처들은 사고가 발생하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이제는 부처 간 입장 차이를 조율하고, 문제 발생 시 총괄 대응할 수 있는 범정부 통합기구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 조사가 늦어지는 것도 부처 간 협조 부족이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는 차량에 이상이 생겨도 제조사가 소방이나 경찰에 데이터를 직접 제공하지 않으면 사고 분석이 어렵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빠른 원인 규명도 불가능하고, 결과적으로 화재 예방 역시 요원하다"고 말했다.

또 최 교수는 "주차 중에도 BMS(배터리관리시스템)가 작동되도록 국토교통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각종 부처가 따로 움직이는 한계가 여전하다"며 "국립과학수사원 보고서에도 차량이 '가만히 있던 상태'가 아니었다는 표현이 명시돼 있어, 법적 소송에선 제조사 책임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문제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충전소 설치는 전력설비와 부동산 구조 문제로 귀결되는데, 주차공간 부족과 안전 우려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향후 아파트 주차면을 분양하거나 전용 면적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주택법·건축법을 개정해야 하고, 지자체가 공동주택 규정을 조정해 실질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참여한 이광범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자동차안전연구원 부원장)도 전기차 화재 조사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동차 화재는 하루 평균 15건 이상 발생하는데, 전소되는 경우엔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아 원인을 특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소방이나 수사기관이 단락 흔적을 근거로 원인을 추정하지만, 전기차는 고전압 배터리가 관여될 경우 화염이 빠르게 퍼지면서 증거를 모두 잃는다"고 말했다.

이어 "전기차의 장점 중 하나는 커넥티드 시스템인데, 이런 데이터를 제작사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접근할 방법이 없다"며 "EDR(사고기록장치)의 정보 공개는 차량 소유자가 요구해야만 가능한 현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도적으로 사고 데이터 접근 권한을 공공기관이 직접 가질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고문은 충전 인프라 문제에 대해서도 “상업용 충전소가 활성화되면 공동주택 내 갈등이나 주차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며 “고속도로처럼 기존 주유소 자리에 충전소가 들어설 수 있는 상업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차는 이미 보급 단계를 넘어 사업화 시기로 진입했으며, 이제는 민간 사업자들이 진입해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전기차의 안전 교육 문제도 강조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납축전지와 특성이 완전히 다르며, 이를 사용하는 모든 계층에 대해 단계별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는 정비 인력 외에 일반 사용자나 택시 기사조차 회생제동이나 출력 설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단순한 운전면허로 전기차를 운전할 수 있는 지금의 구조는 화재나 사고 위험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