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위스키 가져가는 대신 ‘좋은 숙성’ 선물을 준다?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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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가 가지고 있는 가장 대표적이고 독특한 특징은 오크통 숙성이다.
오크통 숙성은 위스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며, 실제로 위스키의 풍미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과거 앤젤스 셰어를 그저 천사가 가져가는 잃어버린 몫으로 생각했었는데, 천사가 위스키를 가져가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숙성'이라는 선물을 남겨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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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기간 중 증발량 ‘앤젤스 셰어’
스카치 2~3%로 최적, 지역편차 커
대만·인도 증발 많지만, 품질 호평
위스키가 가지고 있는 가장 대표적이고 독특한 특징은 오크통 숙성이다. 오크통 숙성은 위스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며, 실제로 위스키의 풍미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오랜 숙성기간은 위스키의 가치를 평가하는 핵심 요소다.
그런데 위스키는 숙성하는 동안 증발된다. 숙성 기간이 길면 길수록 증발량은 많아진다. 따라서 오래 숙성을 하기 위해서는 증발량이 적어야 한다. 위스키가 증발하는 것을 ‘앤젤스 셰어’(angels’ share)라고 하는데, 잃어버린 양에 대한 아쉬움을 재치 있게 표현한 용어다. 스코틀랜드는 연간 앤젤스 셰어가 숙성하는 위스키 전체의 2~3%로, 오랜기간 숙성이 가능한 최적의 지역으로 여겨져왔다. 위스키는 기후가 더울수록 많이 증발한다. 스코틀랜드는 한여름에도 기온이 20도를 넘지 않아 증발량이 적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에 정부 주도하에 위스키 증류소를 설립했으나 앤젤스 셰어가 너무 많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위스키 숙성에 반드시 긴 기간이 필요하다는 기존의 관념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이런 생각을 이끌어 내고 있는 곳은 미국보다 앤젤스 셰어를 많이 떼어주는 나라인 대만과 인도다. 카발란과 암룻은 각각 대만과 인도를 대표하는 위스키다. 2005년 설립된 대만의 카발란 증류소와 2004년 설립된 인도의 암룻 증류소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큰 성공을 거뒀다. 이들은 지리적 요건상 8~12% 이상의 높은 앤젤스 셰어가 발생함에도 위스키 증류소를 설립했다. 전세계 위스키 시장을 스코틀랜드와 양분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록 성장하고 있는 미국의 위스키도 스카치위스키보다 조금 많은 4~6% 정도의 앤젤스 셰어 때문에 숙성을 하기 좋은 환경은 아닐 텐데, 8~12% 수준이면 정말 나쁜 천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만과 인도는 5~7년의 짧은 숙성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는 품질의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다. 과거 앤젤스 셰어를 그저 천사가 가져가는 잃어버린 몫으로 생각했었는데, 천사가 위스키를 가져가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숙성’이라는 선물을 남겨둔 모양이다.
물론 이처럼 앤젤스 셰어가 많은 나라들이 생산하는 위스키가 도약하는 이유가 단순히 숙성 기간과 숙성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소비자들이 더욱 특별하고 다양한 풍미의 위스키를 선호함에 따라 싱글몰트 위스키는 물론 싱글 캐스크(오크통), 캐스크 스트렝스(숙성하던 오크통에서 물을 타지 않고 바로 병입한 위스키) 등 좀 더 특별하고 차별화된 풍미의 위스키들이 일반화된 영향도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과거의 위스키와는 다르게 강하고 독특한 풍미의 카발란과 암룻 같은 새로운 브랜드들의 성공 발판이 됐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앤젤스 셰어가 많아 포기했었지만, 2020년 마침내 위스키 증류소가 두 곳이 설립됐다. 그 이듬해엔 최초로 국산 위스키를 출시했는데, 위스키 인기 트렌드와 국내 최초 출시라는 이유로 굉장한 관심을 끌었다. 맛으로도 1년 정도밖에 숙성되지 않은 위스키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국산 증류소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호평을 받는 위스키를 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5~10% 이상의 적지 않은 앤젤스 셰어가 생기는 것으로 보고 있으니, 한국의 위스키 천사도 가져가는 만큼 좋은 숙성과 품질이라는 선물을 보답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국산 위스키의 인기는 때마침 불어온 위스키붐과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됐다는 화제에 힘입은 바 컸지만, 이전부터 꾸준히 준비하고 마침내 시작하지 않았다면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천사를 만나야 앤젤스 셰어든, 천사의 선물이든 주고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성욱 위스키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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