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도 안 바꾼다" 팔만대장경 지킨 공군 대령의 항명

"명령을 거부하면 사형"이라는 군법 앞에서, 한 공군 대령이 폭탄을 다른 데 떨어뜨렸습니다. 그 한 번의 판단이 팔만대장경을 살렸어요.

1951년 해인사 상공에서 일어난 김영환 대령의 결단을, 위키백과·시사저널·해인사 추모재 보도를 토대로 5가지로 정리했습니다.

1951년 9월, 해인사 폭격 명령이 떨어졌다

1951년 9월, 해인사 일대로 들어간 인민군 잔존 부대(약 900명)를 격멸하라는 미군 작전사령부의 명령이 한국 공군에 전달됐습니다. 4기 편대장이 김영환 대령(당시 10전투비행전대장)이었습니다.

네이팜탄 한 발이면 팔만대장경은 잿더미

당시 편대 전투기에는 네이팜탄과 로켓탄이 실려 있었습니다. 네이팜탄 한 발이면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영환 대령은 폭탄을 사찰에 떨어뜨리지 않았습니다.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줘도 못 바꾼다"

미군 작전사령부에 호출돼 항명 사유를 설명한 김영환 대령은 "영국인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안 바꾼다고 했지만, 우리는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줘도 팔만대장경과 바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듣고 있던 미군 소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올렸다고 전해집니다.

군법회의 사형 회부, 형의 구명으로 면제

명령 불복종으로 김영환 대령은 군법회의에서 사형이 거론되는 상황까지 몰렸습니다. 친형이자 당시 공군참모총장이던 김정렬 장군의 적극적 설득으로 처형은 면제됐고, 김영환 대령은 다시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1954년 비행 중 추락 순직, 추모재는 지금도 이어진다

김영환 장군은 1954년 비행 훈련 중 추락 순직했습니다. 해인사는 매년 6월 김영환 장군 추모재를 봉행하며 '호법신장(護法神將)'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70주기 추모재도 봉행됐습니다.

무엇이 그날 그를 멈춰 세웠을까요?

직속 명령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는 한 사람의 판단이, 천 년의 문화재를 살렸습니다. 군인의 용기는 적을 향한 사격에만 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결단에도 있습니다.

그날 떨어지지 않은 폭탄 한 발이, 지금까지 천 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