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서비스 알바인 줄 알고 배달했는데… ‘피싱 수거책’으로 기소

한영원 기자 2025. 9. 1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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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알았다면 유죄 가능성 커
“낌새가 이상하면 의심해 봐야”
보이스피싱 사범 등 필리핀 도피 피의자들이 지난 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뉴시스

40대 남성 A씨는 인터넷 채용 사이트에서 퀵서비스 알바 글을 보고 지원해 채용됐다. 고용주는 A씨에게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박스를 수거한 뒤 관악구의 한 지하철역 앞에 기다리는 남성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단순 배달 업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세 번 배달을 했다가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경찰에 체포돼 기소됐다. A씨가 운반하던 박스 안에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체크 카드가 들어 있었다. 이 카드에 연결된 계좌는 실제 범죄에 사용됐다. 지난 7월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A씨는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다”며 “박스가 수상쩍어 (고용주에게) 범죄가 아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지난 5월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수거책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 B씨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B씨는 2022년 보이스피싱 조직 지시에 따라 7일간 피해자 8명에게서 1억6900만원을 현금으로 받아 범죄 조직 계좌로 송금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채권 추심 아르바이트인 줄 알았다”고 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면접도 거치지 않은 데다 돈을 100만원 단위로 쪼개 무통장 입금하는 방식은 정상적인 거래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사회 경험이 충분한 B씨가 범죄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이라는 취지다.

이처럼 최근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단순한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해 일을 시작했다가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피고인들 대부분은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줄 몰랐다”고 하지만, B씨 사례처럼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범행 당시 자신이 범죄에 가담하고 있을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는지가 보이스피싱 가담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요소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범죄 여부를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부를 재판에서 명확히 규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근엔 행위가 얼마나 반복됐는지, 사회생활 경험이 얼마나 되는지 등이 주요 지표가 되고 있다.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는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할 경우 A씨처럼 범죄 가능성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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