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을 잘 먹여야 한다’ 1700인분 밥 짓는 혁명가의 사랑 [은유의 ‘먹고사는 일’]

은유 2024. 9. 26.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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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흩어진 존재들을 모으는 점성 강한 연결의 수단이다. 급식 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묻자 김규희씨는 “애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답했다.
자택에서 김규희씨가 직접 만든 불고기. 급식실에서 불고기를 처음 만들었을 때 남몰래 펑펑 울었다.ⓒ시사IN 신선영

‘모든 사람들은 명예심을 가지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일이 몰려들 때마다 모두가 이를 해내기 위해 장대한 협주곡을 연주하는 노력으로 임했다. 모든 사람이 잘 짜인 각자의 일을 맡아 주도면밀하게 해내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데뷔작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문학동네, 2016)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떤 현장일까? 파리의 호텔 주방이다. 오웰은 대용량의 음식을 제시간에 내놓는 건 “복잡하기 짝이 없”고 “생각보다 훨씬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라서 “때때로 우리는 인생이 단 5분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움직인다”라고 쓴다. 일하는 양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데서 오는 자부심이 있다고.

이는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1700인분의 밥을 차리는 급식 노동자 김규희씨의 목소리와 겹쳤다. 다만 오웰도 미처 담아내지 못한 사실이 있으니, 대용량 밥하기 노동에 무려 20년을 종사할 수 있는 힘, 그로 인한 몸과 삶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최장기 열대야가 이어지던 8월에 급식 노동자 김규희씨를 만났다.

그가 일을 시작한 시기는 2005년 여름, 이맘때다. 처음엔 “불순한 마음”으로 재취업의 문을 두드렸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남매를 키우며 삼시 세끼를 시아버지의 밥상을 차렸다. 돌아서면 점심, 돌아서면 저녁. 요즘 말로 ‘돌밥돌밥’의 회오리에 갇혀 지쳐가는 중이었다.

“우리 시아버지가 당신이 워낙에 어렵게 사셔서 외식하면 돈을 허투루 쓴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김치에다 그냥 먹으면 된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잖아요. 밥 차리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해방 삼아서 잠시나마 집을 떠나 있어야겠다, 애들 학원비랑 반찬값이라도 벌고 싶다고 생각했죠.”

지인의 소개로 한 사립초등학교 급식실 조리원으로 갔다. 학생 700~800인분 식사를 여자 조리원 다섯 명에 남자 조리장 한 명이 맡고 있었다. 그도 나름 밥하기 구력이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곳의 조리 규모와 방법은 집밥과는 차원이 달랐다. 불이 솟고 물과 기름이 끓는 현장은 정신을 쏙 빼놓았다. 설거지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유일한 초보자인 그가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착착 돌아가던 시스템이 삐걱거렸다. 눈치가 보였고 힘에 부쳤다. 그만두려다가 이왕 시작한 거 3개월만 더 버티기로 했는데 겨울방학이 왔다. 한숨 고르고 나니 “다시 이 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근무지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공립학교로 자리를 옮기면서 소속이 바뀌었다. 교육청 소속 교육공무직으로.

김규희씨는 서울의 한 공립 초등학교에서 급식 노동자로 일한다. 아이들이 잘 먹는 메뉴는 1800~1900인분을 준비해야 한다.ⓒ시사IN 조남진

“밥하는 게 쉽다는 인식이 있어요. 근데 저는 요리를 과학이라고 생각해요. 들어가는 양, 조리하는 시간에 따라서 맛이 달라져요. 머리가 좋아야 하고 판단을 잘해야 해요. 국수 삶을 때도 레시피는 팔팔 끓는 물에 10분이라고 해도 물의 양과 끓는 속도에 따라 다르니까 8분이 될 수도 있고 12분이 될 수도 있죠. 동물적인 감각으로 빨리 빼! 이렇게 해요. 이런 일을 하찮게 여기는 분들 너무 미워요.”

“애들 뜨끈하게 먹이려고”

한 정치인은 ‘그 아줌마들은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라며 대놓고 무시했다가 나중에 급식 노동자에게 사과했다. 덜 노골적일 뿐 학교에서도 밥하는 일에 대한 세심한 존중은 없었다. 어느 학교에선 교사들이 시무식 때 떡국 끓여달라, 단합대회 하면 수육을 삶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려면 불 앞에 서서 몇 시간을 낑낑대야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또 우리가 다 엄마들이니까” 그냥 해줬다. 알고 보니 그건 정식 업무가 아니었고 시간외수당을 받아야 했다. 급식 노동자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을 위해 종사하니까. 또 다른 학교에서는 급여에서 식비 5만원을 공제하겠다고 통보했다. 아니, 우리가 밥을 하는데 밥값까지 내고 밥을 먹으라고?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당시 월급이 75만원 정도라서 “내 월급이 100만원만 돼도 소원이 없겠다”는 말이 나오던 시절이다. 때마침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에서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알리러 학교 급식실을 방문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 8~9명이 일시에 가입했다. 2011년에 그렇게 ‘김규희 조합원’이 되었다.

“우리가 노조 가입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식비 제한다는 얘기가 안 나오더라고요. 노조에서 공문을 보내고 직접 찾아가서 급식 노동자 식비 제하는 거 막은 학교도 많아요. 상급 노조가 오면 학교가 큰일 나는 줄 알았나 봐요(웃음).”

그는 현재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공립 초등학교에서 일한다. 하루 일과는 이렇다. 오전 7시에 출근한다. 식자재 검수를 마치고 고무장갑, 앞치마 같은 소모품을 발주하고 인력관리 등 행정 업무를 한다. 오전 8시에 조리원들이 다 출근하면 자체 회의를 한다. 식단표에 따라 ‘솥을 쓰는 순서’ 등을 엉키지 않게끔 정한다. 11시10분까지 음식 세팅 완료. 식수 인원 1700명을 12명이 맡는데, 아이들이 잘 먹는 메뉴는 1800~1900인분을 준비해야 한다. 인기 메뉴 베스트 3은 단연 돈가스, 치킨, 마라탕. 돈가스는 냉동식품이 아니라 살코기에 손수 밑간을 해서 밀가루, 달걀물, 빵가루를 차례로 입힌다. 힘은 들지만 냉동식품보다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다. 튀김 요리는 땀이 비 오듯 오고 눈도 따가워 고역이지만 “애들 뜨끈하게 먹이려고” 배식 종료 15분 전까지 계속 튀겨낸다. 미리 해놓으면 숨이 죽는 채소 친구들인 나물도 세 번에 나누어 무친다. 떡국이나 국수도 “애들한테 최대한 불지 않게 맛있게 먹이려고” 여러 번에 걸쳐 끓인다. 낮 12시40분에 기본 배식이 끝나고 추가 배식대가 운영된다. “애들 마저 먹는 거 보고” 나서 조리원들은 1시 정도에 식사를 한다. 설거지와 청소가 끝나면 오후 3시에 퇴근이다.

김규희씨는 요리를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국수 레시피는 팔팔 끓는 물에 10분이라고 해도 물의 양과 끓는 속도에 따라 다르니까 8분이 될 수도, 12분이 될 수도 있죠.” ⓒ시사IN 신선영

“메뉴가 수월하면 물 한잔 마실 시간이 있는데 너무 바쁜 날은 화장실도 못 가요. 누가 가지 말래서 못 가는 게 아니에요. 일도 밀려오고 화장실을 가려면 모자랑 앞치마를 죄다 벗고 가야 해요. 웬만하면 안 가려고 하다 보니 다들 방광염이 있죠. 우리끼리 ‘나 물도 한잔 못 마셨네’ 이래요. 키위나 참외를 깎고 나면 팔이 안 펴져서 팔 좀 펴달라고 하죠. 다 직업병이 심해요. 먼지 때문에 폐암도 많고, 손가락 휘는 건 기본이고 계속 서서 조리하고 배식하니까 무릎이랑 허리가 아프죠. 저는 뼈가 워낙 튼튼해서 연차에 비하면 아픈 것도 아니에요.”

충남 당진에서 일곱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1971년생 김규희씨는 간장게장이 365일 밥상에 오르는 성장기를 보냈다. 열네살 터울인 큰언니에겐 아직도 “애기”로 불린다. 평생 받은 예쁨의 마법인지 안색이 밝고 허리는 유독 꼿꼿했다. 건강한 신체를 타고난 듯 보였지만 혹사당한 관절은 속에서 울고 있었다.

몸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 건 7년 차 즈음. 생고기 치댈 때나 볶을 때 삽질을 하다 보니 어깨부터 팔꿈치, 손바닥까지 쑤셨다. 정확하게 치료를 받고자 작년에는 녹색병원을 찾아갔다. 소문대로 의료진이 “내 말을 다 들어주는 느낌”이랄까, 일하는 몸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보통 병원에서는 어디 아프다고 하면 그 부위 쓰지 말라고 하기 일쑤인데, 이곳 물리치료사는 쓰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대신 이렇게 쓰라며 몸의 구조와 사용법을 쉽게 설명해주었다. 이번 여름방학엔 갑자기 다리 저림이 심해서 동네 큰 병원에 갔다가 척추협착증 진단을 받았다. 무기계약직은 방학에 월급이 안 나오는데 치료비로 100만원이나 썼다.

“연차가 쌓일수록 방학이면 병원 순례하기 바빠요. 일이 힘들어도 이미 일하던 분들은 저처럼 무던하게 했는데, 최근에 오시는 분들은 안 참아요. 한 달도 못하고 그만두거나 길어야 3개월 버틸까. 어떤 분이 사표를 내면서 그래요. 여기 분들은 하루 일당 30만원 이상 받아야 한다.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 나는 교육청에 전화할 거다. 이 일 하는 분들 너무 대단하시다.”

가루처럼 부서진 ‘키위 넉넉’ 불고기

무던하게 일하다가 대단하게 된 사람. 김규희의 무던함은 어떻게 대단함이 되었나. 그에게 급식 노동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을 물었다. “애들 사랑하는 마음? 음, 사랑까지는 오버지만 잘 먹었다고 하고 가면 예쁘죠. 저 두 그릇 먹었어요, 세 그릇 먹었어요, 하면 너무 기뻐요. 일단 애기들을 잘 먹여야 한다. 누가 시킨 건 아닌데 우리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요. 돈 벌려고 오지만 책임감으로 일하죠.”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말만 매미울음처럼 요란한 세상에서 ‘애들을 잘 먹여야 한다’는 말이 청량한 바람 한 줄기로 목에 감긴다. 그가 애들을 잘 먹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이렇다. “밥 먹으러 학교 오는 애들이 있어요. 그 애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요. 선생님들도 ‘저 밥 먹으러 학교 와요’ 그래요. 밥을 맛있게 먹을 준비가 돼 있죠.”

2022년 4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급식 현장의 노동환경에 대해 증언했다.ⓒ시사IN 신선영

사랑의 마음이 찰랑이던 11년 차의 일이다. 그동안 보조만 하던 그는 직접 요리하는 일을 처음으로 맡았다. 주찬은 불고기. 연육 작용을 위해 고기에 파인애플과 키위를 좀 넉넉히 넣고 재워두었다. 잘 숙성시킨 후 볶고 있는데 불고기가 가루처럼 부서지는 게 아닌가. 아뿔싸! 의욕이 넘쳐서 키위를 너무 많이 넣은 거다. 남몰래 펑펑 울었다. 좋은 상품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망쳤으니 애들한테 미안했다. 그런데 영양사는 여사님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지 않으냐며 달래주었다. 다행히 아이들도 여느 날처럼 흡족한 얼굴로 식판을 반납했다.

그렇게 한바탕 “애기들을 먹이고” 퇴근하면 집에서도 앞치마를 맨다. 밥에서 밥으로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일상이기에 “물론 힘들 때도 있다”라며 그는 자분자분 말을 이었다. “애들 키울 적에, 제가 부엌에서 음식할 때 남편하고 애들이 티비 보고 웃고 있으면, 그게 너무 행복했어요. 내가 집에 있어야 식구들이 마음이 놓이는 느낌을 받아요. 그게 너무 행복해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해요.”

누구나 하나의 직업에 오래 몸담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일에 대한 자기 철학, 그리고 지지 기반. 그에겐 노조가 있다. 가입 후 소식만 듣다가 노조를 통해 녹색병원에서 지원하는 무료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러면서 우연히 알게 된 ‘이소선 합창단’에도 들어갔고 2019년에 서울일반노조 서대문지회장 상근직을 3년간 맡았다.

“하다 보니 적성에 맞아요. 사람들 설득하고 조합원들 얘기 들어주는 것도 재밌고요. 집회 때 대로에 앉아 있으면 뿌듯한 거예요. ‘나도 사회 일원이 되나 보다’ 혼자만의 그런 생각(웃음). 나 여기 앉아서 사람들하고 같이 협심해서 뭐라도 이뤄지나 보다 생각하면 뿌듯하죠.”

노조 활동 후 변화를 묻자 그는 “쓸데없이 용감해졌어요”라며 활짝 웃는다. 노조 상근을 마치고 복귀한 학교에선 협상이 수월해졌다. 동료들이 아파서 돌아가며 병가 쓴다고 했을 때 학교 측에서 안 된다고 했다가도 면담을 요청해서 상황을 설명하면 되는 식으로, 눈에 보이게 개선됐다.

“슬슬 불의를 못 참게 되고 권리를 말하게 된” 그는 더 나은 활동가가 되고 싶었다. 직업의 전문성을 갖추고자 방송통신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갔고 이제 마지막 학기만 남았다.

그의 집 거실장에는 가족사진 액자들 사이에 ‘서울일반노조 대의원대회’ 사진이 놓여 있다. 식구들도 노조 활동을 전폭 지지했다. 아들은 말했다. “밥하는 엄마보다는 혁명가 엄마가 좋다”라고. 하지만 매일 1700인분의 밥을 짓는 사람이 혁명가다. 밥은 타인에 대한 사랑의 실행이고, 밥은 흩어진 존재들을 모으는 점성 강한 연결의 수단이다. 인간은 밥 주위로 모여든다.

“사람들은 이 일이 쉬운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직업을 물어보면 저도 그냥 ‘교육공무직이에요’ 하고 말아요. 밥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낮춰 보니까. 우리들 자신부터 좀 용감해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저부터도 밖에 나가서 밥하는 사람이라고 얘기 안 해요. 동료들도 말 안 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임금이 높아지고 인식이 개선되면 나아질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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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 너머 사회를 치료하는 이 병원의 이름은 ‘전태일’입니다.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들여다보면 구조적인 안전 문제가 꼭 숨겨져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덜 아프고 덜 다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사회와 함께 행동하는 병원을 만듭니다. 전태일의료센터는 2027년 건립을 목표로 시민들의 건립기금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참여 문의: taeilhospital.org)

은유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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