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의 대지, 홋카이도 '비에이' 여행기

여행 3일째입니다.

오늘은 일찍 일어났습니다.

뭐, 여행할 때 언제나 일찍 일어나지만

이날은 더 일찍 일어났습니다.

좀 멀리 가거든요.

바로 비에이에 가는 날입니다.

처음에는 여길 어떻게 갈까 고민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아니면 렌트를 할까,

아니면 투어를 이용할까 고민하다가

투어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대중교통을 너무 이동이 불편했고

혼자 렌트를 하기엔 비용도 비용이지만

운전하다가 지칠 거 같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여행 하루 정도는

계획 따위 세우지 않고 투어에 몸을 맡겨보고 싶었죠.

9월 초인데 홋카이도 논은 벌써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이런 황금 들판을 보면 왠지 마음이 풍요로운 기분이 들어서 좋아합니다.

철도 건널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할 법한 그런 건널목이었죠.

목적지에 가기 전에 들린 첫 번째 휴게소

아침도 안 먹어서 가볍게 요기라도 할까 했는데

가이드가 이제 점심 전까지 화장실에 못 들린다는 말을 듣고

그냥 아무 것도 안 먹었습니다.

투어에서 제공해 주는 유바리 멜론입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냥 멜론인데도 마치 우유향이 나는 그런 멜론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이 유바리 멜론이 처음이자 마지막 유바리 멜론이었습니다.

더 사먹어야지 생각만 하고 결국 더 먹지 못 했습니다.

이건 지금도 좀 아쉽네요.

이제 투어의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풍경을 보니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목적지가 가장 기대하는 곳입니다.

사실 저는 홋카이도 하면 떠오르는 건

겨울에 눈 덮인 이미지가 아닌,

여름의 드넓은 초원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 본 게임 잡지 때문입니다.

누군가 버린 게임 잡지를 줍고 마르고 닳도록 읽었는데

그 때 게임에서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소개하고 있었거든요.

그 게임의 표지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뇌리에 박혀 홋카이도 이미지를 만들고 있을 정도입니다.

바로 풍우래기라는 게임입니다.

저 표지가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저에게 너무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홋카이도 하면 떠 오르는 게

넓은 초원과 그 초원을 가로 지르는 도로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번 비에이 투어에서 저런 풍경을 보고 싶었고

첫 번째 목적지인 패치워크의 길이 가장 저 풍경이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요.

비슷한 풍경은 보였지만

기대한 만한 풍경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둘러볼 시간도 20분 밖에 주지 않아서

진짜 주변만 대강 둘러볼 수 밖에 없었죠.

나쁘지는 않았는데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이 더 볼 만 했습니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구릉들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투어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이유 중 하나는

차창 너머로 본 풍경이 정말 끝내줬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짜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듯 했습니다.

만약 직접 운전을 했다면

운전에 집중하느라 놓치는 풍경이 많았을 테니 말이죠.

비에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투어가 비에이 투어인 걸 생각하면

이 마을은 여행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들린 건 관광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점심을 먹기 위해서 왔습니다.

저는 새우 카레 덮밥을 먹었습니다.

준페이라는 가게가 제일 유명하지만

거리가 멀고 기다려야 한다고 들은데다가

다행히 제가 음식 맛에 까다롭지 않아

그냥 근처 카레가게로 갔습니다.

음식 맛은 꽤 좋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남아 비에이 마을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마을은 뭐랄까...

뭔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의 작은 도시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곡선이 없이 직선을 쭉 뻗은 도로,

낮은 건물들,

멀리 보이는 산맥.

마치 미국 동부 산촌에 있는

작은 도시 같은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마을 중심 가면 비에이 정사무소가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동사무소같은 곳입니다.

이곳에 사계의 탑 전망대가 있습니다.

전망대의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그리 높은 전망대는 아니지만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였습니다.

전망대에 올라와서 봐도

여전히 마을이 일본처럼 느껴지지 않네요.

좀 더 느긋하게 마을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여기까지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다음 장소로 향했습니다.

비에이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가이드 말로는 지금 비수기라 길이 막히지 않아 20분 만에 갈 수 있지만

성수기 때는 길이 완전 주차장이 되어서

1시간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니 가능한 성수기는 피하는 걸 추천합니다.

다음 목적지는 청의 연못입니다.

사실 여기는 크게 기대했던 곳은 아니었습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그냥 그랬거든요.

하지만 실제 연못은 생각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물색이 사진의 보정이 아닌 정말 연푸른색을 띄고 있었는데

정말 신기하고 신비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진으로는 그 느낌을 제대로 담을 수 없어서 안타까울 정도로 말이죠.

사실 이 연못은 자연적으로 생긴 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연못입니다.

정확히 연못으로 만들려는 건 아니었고

예전에 화산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

용암이 마을이나 사람을 덮치지 않도록 구덩이를 파 놓았다고 합니다.

그 구덩이에 강물이 들어오고 수산화알루미늄 등 미네랄이 섞이면서

연못에 푸른 빛을 띄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청의 연못 주변으로 자작나무 길이 있어서

이 길을 걸으면서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산책하기에도 적당한 곳이었죠.

다만, 비수기인데도 사람들이 많아 북적거렸습니다.

아, 그리고 처음 여기 명칭은 청의 호수로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도, 투어 설명에도 대부분 청의 호수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처음 봤을 때 호수라고 불리기엔 너무 작았습니다.

호수가 아니라 연못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 조사해보니 일본어로도 '아오이이케',

푸른 연못으로 되어 있는데

어디서 청의 호수라는 명칭이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다음으로 흰수염 폭포에 갔습니다.

청의 연못 근처에 있어 5분만에 차로 갈 수 있었습니다.

절벽을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흰수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다만, 여긴 뭐, 그렇게 대단하든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겨울에 저 폭포가 얼어 제법 멋지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냥 절벽을 따라 흐르는 작은 폭포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요.

재미있는 건 여기 강물 색도 청의 연못처럼 푸르슴한 빛을 띄고 있었습니다.

폭포의 구경은 저 다리에서 합니다.

개인적으로 높은 곳을 좋아해서

저기서 아래를 바라보는 건 좋았습니다.

날씨가 좋아 멀리 있는 산들도 잘 보였습니다.

일기예보에서 날씨가 흐리다고 되어 있었고

실제로 오전엔 흐렸거든요.

다행히 오후 날씨는 너무 좋았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사계채의 언덕입니다.

입구에 짚으로 만든 마스코트가 저희를 반겨줍니다.

여긴 다른 관광지와 달리 입장료를 별도 받습니다.

그러니 만약 투어로 가신다면 잔돈은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진짜, 엄청, 놀라웠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멋진 풍경이었으니까요.

기대 이상이었고,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감탄을 자아낼 만큼 황홀했습니다.

사실, 여긴 그다지 기대하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관심도 없어서 어떤 곳인지 미리 찾아보지도 않았죠.

그런데, 이번 투어에서 가장 멋지고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이 사계채의 언덕이었습니다.

7만 제곱미터에 펼쳐진 꽃들 뿐만 아니라,

멀리 보이는 구릉과 산맥이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투어에서 이곳을 관광할 시간으로 가장 긴 1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컸습니다.

하나하나 꼼꼼히 보려면 1시간으론 택도 없었죠.

그래서 결국 저도 큰 욕심은 버리고,

한 바퀴 빠르게 훑어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사계채의 언덕에 대한 여운이 가시지도 않았지만

시간 관계상 다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마지막 관광지인 팜 도미타입니다.

사계채의 언덕과 마찬가지로 라벤더가 주축인 꽃밭이 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 체력의 거의 바닥이 난 상태입니다.

게다가 사계채의 언덕을 봐서 큰 감흥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를 마지막 코스로 넣은 이유는 따로 있어보였습니다.

사실 이 공원은 입장료가 따로 없습니다.

대신 이곳의 메인은 바로 음식이었습니다.

공원 주변에 많은 음식점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디저트나 음료를 파는 가게들입니다.

맞습니다.

바로 여긴 이렇게 디저트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여긴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진 않았습니다.

아마 이런 이유로 마지막에 이 코스를 넣은 거 같았습니다.

저도 가이드가 추천한 유바리 멜론으로 만든 쉐이크를 마시며 쉬었습니다.

맛은 분명 있었는데 꽤 비쌌습니다.

저렇게 보이지만 종이컵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인데 800엔이 넘었으니까요.

그냥 유바리 멜론을 먹을 걸 그랬습니다.

그래도 이왕 온 거 좀 둘러봤습니다.

주차되어 있는 관광 버스에 비해

정원은 한산했습니다.

대부분 디저트를 먹거나 음료를 마시며

쉬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투어가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삿포로로 돌아가야 합니다.

삿포로에 도착하니 해가 졌습니다.

아침 8시에 시작된 투어가 오후 6시를 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거의 10시간 투어를 했고 그 중 절반 이상, 아니 70% 정도가

대부분 차로 이동하면서 보냈습니다.

차로 이동한 거리를 보니 대략 350km 정도 되었네요.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서

그 주변 둘러보고 다시 돌아온 거리 정도 되네요.

이렇게 보니 홋카이도가 정말 크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혼자 렌트하고 다녔으면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지쳤을 텐데 말이죠.

역시 투어로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은 가이드가 추천한 라멘집으로 갔습니다.

생각 이상으로 지쳐 좀 가볍게 먹고 싶었거든요.

한 것도 없이 그냥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꽤 지치네요.

이렇게 여행 3일째가 끝났습니다.

힘들었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투어였습니다.

다음에 홋카이도에 오면 다른 곳은 몰라도

사계채의 언덕은 다시 한 번 가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