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Veteran] SSG 랜더스 한유섬

꿈을 꾸는 한 야구는 계속된다

내일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그저 오늘을 살아 낼 뿐이다. 남들보다 한 발 더 움직였음에도 선택받지 못한 순간, 그는 또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 속엔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의 시간마저 저물어가던 그때, 극적으로 그의 이름이 불렸다. 200홈런이라는 목표를 마음에 품고 시작한 프로 생활. 이번 시즌 드디어 200이라는 숫자를 새겼다. 그가 세운 기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스물네 살 청춘이 그렸던, 찬란한 꿈 그 자체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Sangeun Yeon Location Incheon SSG Landers Field

<더그아웃 매거진>과는 2022년에 만나고 3년 만이네요. 그동안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9월 29일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SSG 랜더스 외야수 한유섬입니다. 그냥 노화만 급격하게 왔고, 다른 건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그때 인터뷰는 늘 어렵다고 했던데, 아직도 그래요?
매번 어렵다고 느끼긴 하지만, 그래도 능수능란하게 넘어가는 스킬은 살짝 는 것 같아요.

#마잠발

구단 유튜브를 보니까 활약이 대단하던데요.
약간 ‘억까’가 있긴 합니다. 그래도 쓱튜브가 예쁘게 잡아 주고 편집도 잘 해 주는 덕분에 그렇게 활약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근데 저를 너무 괴롭혀요. (웃음)

처음에는 안 해 줄 것처럼 까칠하게 나오다가 결국에는 다 잘 참여하잖아요.
콘셉트가 그렇게 잡혀서요. 사실 카메라 앞이라고 제가 갑자기 부드러워질 수도 없고… 평상시에도 그다지 부드러운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래서인지 쓱튜브에서도 그런 식으로 방향을 잡아 줘서요. 제가 의식 아닌 의식을 하는 것도 있어요. 게다가 쓱튜브 팀이 원체 잘하다 보니까 다 함께 잘되면 좋잖아요. 마침 최근에 구독자 20만 명을 달성하고 시상식도 만들어 줘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잠발(마름모 잠자리 발)’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축구를 못한다고 한 것뿐인데 갑자기 발이 마름모가 돼 버리고, 잠자리를 한 번 언급한 것뿐인데 다 갖다 붙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솔직히 제가 팀의 고참이다 보니까 그런 별명이 생기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렇게 엮어 준 덕분에 팬분들도 그렇게 불러 주시니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듭니다.

올해 순위 싸움이 참 치열했어요. 시즌 중반에는 힘든 시기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시즌이 다 끝나진 않았지만, 올 시즌을 돌아본다면 투수들은 정말 다 잘해 줬어요. 다만 타격 부침이 오래 이어지다 보니까 야수 입장으로 너무 미안했죠. 시즌 초중반쯤엔 주축 타자인 (최)정이 형이라든지 (기예르모) 에레디아의 공백도 길어지고, 어린 친구들까지 헤맸을 때는 진짜 힘들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다 잘해 주고 있지만, 그 당시엔 순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작년보다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마음을 모두가 갖고 있었어요. 저 역시 중심 역할을 해야겠다는 압박감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꽤 받았어요.

그래도 SSG가 돈독한 선후배 관계를 유지했기에 그 위기를 이겨 내지 않았나 싶어요. 선수단 속 ‘한유섬 선배’는 어떤 이미지인가요?
후배들이 저를 어떤 선배로 받아들이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 시선에서는 동생들이 저한테 다가오기는 쉽지 않아 보이긴 해요. 최대한 후배들이랑 얘기도 자주 나누려고 하는데,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까 막 다가오긴 쉽지 않은가 봐요. 특히 저는 간혹 쓴소리도 하니까 어느 정도는 어렵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2022년 통합 우승 당시 주장을 맡기도 했잖아요. 차기 주장을 맡을 만한 후보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누가 있을까… 나이가 중간인 친구가 그리 많진 않아요. 너무 극과 극인 게, 선배들은 너무 베테랑이고 어린 친구들은 너무 어려요. 하지만 아무래도 (최)지훈이라든지 (박)성한이? 이 두 친구가 한 번 정도는 주장을 맡이 보면서 선배들이 얼마나 고충이 심했는지도 느껴 봐야겠죠? 지금으로선 팀의 중심 역할에 제일 적합한 친구들이에요.

#200홈런

시즌 초반엔 허리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어요.
모든 선수가 100%의 컨디션으로 할 수가 없잖아요. 저 또한 트레이닝 파트랑 잘 협력해서 보강 운동도 열심히 하고 트레이닝도 철저하게 해서 지금은 괜찮아요. 더 악화하지 않게끔 유지를 잘해야 하겠죠.

올해는 개인 통산 200홈런을 달성하기도 했어요.
프로에 오기 전, 어린 마음에 딱 200홈런을 목표로 잡은 적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제 동료들이나 나이가 비슷한 또래 친구들보다는 늦게 달성했지만, 제게는 꼭 이루고 싶은 중요한 목표였거든요. 그래서 달성했을 때 스스로 수고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어요.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에게 질타만 자주 하지, 긍정적인 말은 잘 해 주지 않잖아요. 저도 평소에 그런 편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게 고생했다는 얘기를 해 줬어요.

목표가 왜 하필 200홈런이었나요?
건방이라고 받아들이실 수도 있을 텐데, 스물네 살의 혈기로는 100홈런을 칠 자신이 있었어요. 근데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르는지라 300홈런까지는 너무 많은 것 같고, 그 아래인 200개 정도를 목표로 잡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200이라는 숫자가 다가오면서 의식이 되진 않았나요?
의식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몇 개 남았다고 계속 카운트를 하더라고요. 어차피 한 시즌을 치르면 당연히 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시즌 치르다 보면 나오겠죠’라고 했는데 계속 안 나오고 안 나오고… 시즌 초반에 또 장타가 안 나와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언제 치려나’ 이랬던 것 같아요.

기록 달성을 앞두고 아홉수에 빠질 때도 있는데, 199호 홈런을 치고 나서는 그다음 홈런까지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어요.
제삼자가 봤을 때는 일주일도 안 걸렸으니 금방 나왔다고 느꼈을 수 있지만, 당사자는 그렇지 않아요. ‘왜 안 나오지? 왜 안 나오지?’ 이렇게 계속 곱씹고요. 게다가 전 장타를 생산해야 하는 역할이라 그 기간이 더욱 길게 다가왔죠. 근데 홈런이라는 게 한 번 나오면 계속 나오거든요. 제가 또 몰아치기에 능하다 보니 199번째 홈런을 쳤으니 이제 나오겠지… 하다가 결국엔 나왔습니다.

한 달 후 열린 200홈런 시상식 때는 딸 예소의 시구도 있었기에 더 뜻깊었겠어요.
딸이 어느덧 이렇게 커서 시구를 한다는 자체가 의미가 있었고, 잘 던지기보다 예쁜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긴장도 안 하고 잘 던져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마침 그날 제가 홈런도 쳤거든요. 딸이 승리 요정이 돼 줘서 보람찬 날이었어요.

예소가 한 번씩 시구한 날의 얘기를 하나요?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또 하고 싶다고 얘기해요. (아빠를 닮아 무대 체질인가 보네요?) 저는 무대 체질은 아니긴 한데 기회가 잦아지니까 적응한 거고요. 예소는 앞으로 어떻게 클지 모르겠네요.

#사실은 다정해요

포차코 유니폼 화보를 찍던 날, 딸과 함께 앙증맞은 모습을 곧잘 보여 주던데요.
제가요? 쓱튜브가 저격한 거죠. (웃음) 딸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기분을 맞춰 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행동한 거예요. (딸이 생기고 나서 성격이 변한 부분도 있어요?) 변하려고 꽤 노력했어요. 전 엄한 아버지 아래서 자랐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엄하게 안 키우고 싶었는데, 막상 제가 자란 환경이 유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보니 저도 모르게 딸에게 그대로 하게 되더라고요. 세네 살짜리 아이가 뭘 안다고, 저도 자꾸 엄하게 하게 된 거죠.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후회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집에 거의 반년은 없어요. 그래서 함께 있을 때만이라도 딸에게 최대한 맞춰 주려고 해요. 화도 줄이려고 노력하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네요.

평소 본인 성격은 어때요?
밝진 않죠. 그래서 밝아지려고 노력을 하고 평상시에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고 해요. 근데 경기 시간이 다가오면 집중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말수가 꽤 줄어들죠. (야구를 대할 때는 예민한 편인가 봐요.) 계속 예민하면 너무 힘드니까 변화를 주려고 열심히 시도했어요. 무엇보다 지금은 제 밑에 후배가 더 많을 나이잖아요. 제가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표출하면 동생들은 더 위축되기 때문에 감정을 통제하려고 해요.

유튜브에 ‘한유섬’을 치니 연관 검색어에 ‘한유섬 인성’이 나오더라고요. 무슨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다행히 긍정적인 내용이었어요. 혹시 본 적 있나요?
요즘에는 저와 관련된 기사도 잘 접하지 않으려고 해요. 물론 선수들은 다 본인을 검색해 보거든요. 어떤 글이 올라왔는지 궁금해하는데 최근엔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내용이 보기에는 까칠해 보이지만 사실은 다정하다는 거예요. 몸에 맞는 공이 나와도 투수가 미안할까 봐 웃어 보이고 괜히 말도 건네고 하는 장면들이 나오더라고요.
저보다 한참 어린 선수가 맞힌 건데 제가 맞대응을 할 순 없잖아요. KBO리그 문화 자체가 몸에 맞는 공이 나와서 출루를 하면 투수가 인사를 하는 거니까, 저도 당연히 받아 주고 그런 거죠.

#두 번째 진기록

9월 16일엔 KBO리그 역사상 네 번째 네 타자 연속 홈런이라는 진기록을 합작하기도 했죠. 그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 궁금해요.
앞서 백투백 홈런(에레디아, 최정)이 나온 상황에서 제 차례가 왔고, 그다음 타자가 (류)효승이었어요. 근데 효승이가 “형님, 형님도 하나 치시죠!”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힘 들어가면 안 된다. 그게 말처럼 쉬워? 나는 그냥 어떻게든 살아 나갈 테니까 네가 쳐!”라고 한 뒤에 타석에 들어갔어요. 와, 근데 제가 거기서 홈런을 친 거예요. 소름이 돋더라고요. 한 바퀴 돌고 나서 홈플레이트를 밟고 효승이에게 “이왕 이렇게 된 거 너도 치고 와!”하고 들어왔죠. 더그아웃에 들어와서 축하를 받고 보호 장비를 풀고 있는데 효승이가 또 친 거예요. 그때 막 닭살이 돋으면서 정말 좋았죠.

재밌는 건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2021년 6월 19일에도 최정, 제이미 로맥, 정의윤과 네 타자 연속 홈런을 합작한 적이 있어요.
홈런을 치려고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럴 때 대기록이 나오는 날인가 보다 하고 감사하게 여기게 돼요. 특히 두 번이나 합작한 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기록이다 보니까 정말 좋았죠. 그리고 중간에 껴 있는 타자보다 마지막 타자가 제일 힘들거든요. 기록을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배로 커지니까요. 그럼에도 효승이가 그 압박감을 견디고 마지막을 잘 장식해 줘서 고마웠어요. 근데, 저는 이 기록보다도 최정 선수랑 함께 가장 많은 백투백 홈런을 합작한 듀오가 됐다는 점이 훨씬 와닿았어요. 제가 입단할 때만 해도 최정이라는 선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고, 함께 야구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거든요. 그런 형과 제가 나란히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자체가 영광스러웠어요. 이제 공동 1위까지 올랐으니까, 기회가 된다면 단독 1위에 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잠시 추억 여행을 떠나 볼까 합니다. 경남고 시절 청룡기 2연패의 주역이었음에도 프로로 직행하는 대신 경성대에 진학했어요. 첫 드래프트 때는 어떤 마음이었어요?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근데 제가 고3병이 제대로 걸렸던지라 확률이 반반이라고 봤어요. 저학년 때는 나름 성적이 괜찮아서 어디에서라도 지명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국 안 됐죠.

경성대 진학 후에도 준수한 활약을 이어가면서 명성을 날렸어요. 근데 두 번째 드래프트가 거의 끝나가는데도 호명되지 않아서 초조했겠어요.
그렇죠. 지금은 드래프트 방송도 화려하게 하고, 선수들도 초청받아서 유니폼을 건네받고 인터뷰도 하잖아요? 그때는 안 그랬어요. 지명이 거의 확실한 친구들 소수만 참석하고 보통은 학교의 일정에 맞게 움직였거든요. 그래서 그날이 생생히 기억나요. 훈련이 있는 날이었는데, 4학년 친구들은 번갈아 가면서 컴퓨터 화면을 보고 새로 고침을 계속 눌렀어요. 지명 결과를 확인하려고요. 저는 한두 번 왔다 갔다 하다가 안 갔어요. 그러다가 한 6라운드까지는 나왔는데, 그 이후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거예요. 그때 만약 지명이 안 됐으면 시원하게 야구 그만두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쉼 없이 달려왔었고, 남들이 놀 때 더 열심히 노력했으니까 그만둬도 후회가 없겠다고 봤거든요. 근데 감사하게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가 9라운드에서 절 뽑아 주셨죠.

지명됐다는 걸 안 순간 어떤 느낌이었어요?
지명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죠. 제가 3학년 때까지 잘했고 드래프트에서 상위 순번 지명 후보로 나오기도 했거든요. 근데 막상 프로에 와 보니까 제가 그 정도 단계에서 지명된 게 당연하다는 걸 느꼈어요. 정말 야구를 잘하는 사람이 2군에도 즐비했고, 이런 선수들이 1군에 못 올라가는 걸 보니 프로의 벽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죠.

하지만 대졸 선수 성공 사례를 써 내려가고 있어요. 대학 리그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에게 한마디 부탁해요.
제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보다 대학 선수의 지명 확률이 떨어진 게 안타까워요. 그럼에도 고등학교 때 한 번 실패를 맛본 후에 다시 도전하는 거니까 후회 없이 준비를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야구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잖아요. 이왕 시작했으니 좋아하는 야구를 오래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저 야구만 보고 열심히 해서 프로 지명이라는 결실을 얻길 바랍니다.

본인의 커리어하이 시즌으로는 2018년이 뽑히곤 하죠. 한 시즌 40홈런, 한국시리즈 MVP 등 여러 성과를 거둔 1년이었어요.
그냥 추억이죠. 지금도 그걸 계속 들먹이면 안 될 듯해요. 정말 최고의 시즌이었고,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는 시즌이긴 했어도 그 영광에 빠져서 못 헤어나면 안 되잖아요. 그냥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겨 둘까 합니다. (그래도 그해에 제일 특별했던 기록은 어떤 거예요?) 아무래도 40홈런이요. 대졸 출신 타자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타이틀이니까요.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그걸 깬다면 제가 또 한 번 언급이 될 테고요.

요즘은 마흔이 훨씬 넘어서도 커리어를 이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잖아요. 본인도 혹시 현역 생활을 목표로 하는 나이가 있나요?
염두에 둔 나이가 있긴 해요. 하지만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만약 제가 설정해 놓은 기준점을 넘어선다면 더 좋은 거고요. 그렇지 못해도 후회는 없습니다.

혹시 남은 선수 생활 동안 추가하고 싶은 이력이 있을까요?
그래도 야구를 시작했으면 골든 글러브는 한 번쯤 받고 싶어요. 근데 KBO리그에 워낙 잘하는 외야수가 많잖아요. 그래도 일단 목표는 계속 갖고 가려고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진짜 받아 보고 싶습니다.

‘더그아웃 베테랑’ 공식 질문입니다. ‘한유섬의 남은 야구 인생은 어떨 것이다!’ 이 문장을 어떻게 완성하고 싶어요?
음, ‘할 것이다’ 말고 다르게 하면 안 돼요? ‘한유섬의 남은 야구 인생, 비겁한 변명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괜찮죠? (뿌듯) 전 몸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플레이하려고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게 정말 안 된다고 느껴질 때가 되면 그만둬야죠. 구질구질하게 ‘안 되는’ 이유를 찾으면서까지 야구하고 싶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을 사랑해 주시는 팬분들에게 한마디 부탁해요.
이번 시즌 중위권 싸움이 정말 혼전이었어요. 남은 경기에서도 팬분들을 기쁘게 만들어 드리고 싶고, 3위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게 올라가겠습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5년 175호 (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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