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처럼 등장했던 '국민 승합차', 르노차 그대로 베꼈네

1.5박스 세미보닛 스타일의 매끈한 디자인, 승객석과 엔진을 분리한 설계로 같은 엔진을 쓰는 현대 '그레이스'에 비해 훨씬 조용했고 인테리어도 승용 감각으로 꾸몄습니다. 포터 트럭과 다를 바 없던 그레이스의 운전석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났죠. 특히 운전대 각도에서 큰 차이가 나는데 이 부분은 지금도 상용차와 승용차를 구분하는 기준처럼 여겨지고 있어요.

1세대 스타렉스 하면 항상 언급되는 게 바로 이 미쓰비시에서 출시한 '델리카 스페이스 기어'라는 차인데요. '스타렉스'의 베이스 모델이라거나 라이선스 생산이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디자인과 패키징, 컨셉 등 일부만 참고했을 뿐 스타렉스는 현대차가 직접 설계한 독자 개발 모델이라고 합니다. 다만 스타일이 워낙 유사하다 보니까 충분히 오해할 만도 하죠.

당시 출시된 모델들을 살펴보면 특히 현대기아차가 일본차 업체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오랜 기간 일본차 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맺어 오기도 했고요. 원래 잘 나가는 친구 있으면 따라해보고 비슷하게 만들어 보고 싶기도 하니까요.

스타렉스는 전장이 짧은 기본 모델과 휠 베이스를 늘린 점보 모델로 이원화했고 7인승, 9인승, 11인승, 화물용 밴까지 준비해 다양한 수요를 만족시켰습니다. CD 플레이어와 AV 시스템, 듀얼 썬루프 등 그레이스에는 없던 고급 사양을 대거 적용해 고급형 RV임을 내세우면서 가격도 좀 더 비싸게 책정했는데도 소비자 반응이 상당히 좋았죠.

또 차고를 높여 4륜구동을 장착한 모델까지 내놓으면서 캠핑, 낚시 등 자연과 함께 레저를 즐기려는 아빠들의 마음을 저격해 버렸습니다. 아예 좌석을 떼서 베이스캠프처럼 개조해 다니시던 분들도 있었어요.

엔진 라인업도 다양했습니다 포터와 동일한 2.7L 4기통 디젤 엔진을 사용했고 정숙성이 돋보이는 2.4L 가솔린과 2.4L LPG, 후에 V6 3.0L 엔진도 내놓았지만 연비가 나빠 판매량은 많지 않았죠. 6기통 LPG 엔진의 가속력은 상당했다고 하네요. 이후 미니버스 시장에서는 현대 그레이스와 기아 프레지오, 쌍용 이스타나 등 원박스카와 경쟁을 했고 나중에 등장한 기아 카니발과는 태동기 미니밴 시장도 함께 나눠 가졌습니다.

2002년 간단한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면서 외관을 깔끔하게 손봤고 소렌토에 사용하던 2.5L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장착해 성능을 개선했습니다. 참고로 현재 포터에도 사용하는 그 엔진이죠.

2004년 큰 폭의 페이스리프트로 귀여운 얼굴을 장착한 '뉴 스타렉스'가 출시되면서 스타렉스에게 전공 선택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안전 규제로 봉고차들이 하나둘씩 단종되기 시작하면서 얼떨결에 같은 해 단종된 그레이스의 포지션까지 떠맡게 된 건데요. 막상 원박스카가 사라지자 처음부터 완전한 미니밴이었던 카니발에 비해 승합차에 가까운 스타렉스가 가격도 저렴했고 사람을 실어 나르기에도 편리했죠. 이때부터 교회와 학원, 어린이집, 인력사무소 등에서 스타렉스를 많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국민 승합차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지금은 당시 만들어진 국산 차들이 그렇듯 차체 부식이 워낙에 심해서 무지개다리를 건넌 친구들이 많고 제3세계 국가들로 입양 간 친구들도 많아서 도로에서 예전만큼 많이 보이지는 않죠. 또 노후 경유차 조기폐차 지원정책도 힘을 보탰고요.

2007년 뉴 스타렉스의 단종과 함께 2세대 스타렉스가 출시됩니다. 차체가 짧은 숏 바디와 롱 바디로 나뉘었던 전작과는 다르게 모든 면에서 차체를 키운 롱 바디 사양 하나로 통합되면서 앞에 '그랜드'라는 수식어를 붙였죠. 유럽 수출을 목적으로 만들어서 외관도 유럽의 상용밴 느낌이 나게 만들었습니다. 또 이때부터 슬라이딩 도어를 양쪽에 달아서 타고 내리기가 더 좋아진 것이 특징이죠.

이전 모델에 쓰이던 2.5L 커먼 레일 디젤 엔진을 VGT로 개선해 출력을 높였고, 6단 수동, 5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렸습니다. 차가 더 커지고 무거워졌지만 엔진의 힘이 눈에 띄게 좋아져서 밟는 대로 튀어나가죠. 연비도 오히려 더 좋아졌어요. 함께 출시한 2.4L LPi 모델은 정숙성과 힘은 나쁘지 않았지만 연비가 안 좋아 판매량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전통이네요.

혹시 법타렉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법인 소유의 스타렉스 혹은 법인카드로 기름값 걱정 없는 스타렉스를 뜻하는 말인데요. 디젤 엔진의 시원한 출력으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스타렉스가 많아져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후륜구동에 밟는 맛이 있다는 건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빠르게 달리기 위한 차가 아닌 만큼 운전에 주의가 필요한 차량이죠. 특히 후륜구동 특성상 눈길이나 빗길에 취약하고 무게중심도 높아서 고속주행 시 균형을 잃기가 쉽습니다. 한 번에 많은 인원이 타는 차량인 만큼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많기 때문에 안타까운 뉴스도 종종 나왔죠.

이런 이유로 지난 2013년 11인승 이상 승합차에도 110km 속도제한장치가 의무화되면서 과속을 미연에 방지하게 됐는데 자가용으로 11인승 모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고 이건 카니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전한 이동에 도움이 되는 조치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쉽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았죠. 실제로 법 개정 이전에 출고된 차들, 속도제한장치가 장착되지 않은 차량의 중고차 값이 뛰기도 했어요.

1세대에 있었던 4륜구동은 어떤 이유에선지 출시 6년이 지난 뒤에 추가가 됐습니다. SUV가 다양해진 지금은 1세대처럼 레저형 보다는 미끄러운 골목을 누빌 일이 많은 어린이 통학 차량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더라고요.

이후 2015년 간단한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내외관 디자인을 깔끔하게 손봤고 배기가스 규제에 따라 요소수 장치를 추가했습니다. DMB 내비게이션과 통풍 시트 같은 편의 사양을 추가해 상품성도 높였죠.

여담으로 활용도가 높은 차량인 만큼 다양한 특장 모델도 등장했는데요. 1세대부터 있었던 리무진은 물론이고 앰뷸런스, 냉동탑차, 장애인 이동 차량, 렉카와 픽업트럭으로 개조되기도 했고요. 집채만 한 모터홈 캠핑카가 등장하기도 하고 팝업 루프가 들어간 순정 캠핑카도 나왔죠. 또 어떤 특장 업체에서는 스타렉스의 차체를 늘려 15인승 모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봉고가 단종되면서 15인승 미니버스 시장이 텅 비어버렸고 그 틈새를 공략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독특하죠.

하긴 대안이 없었습니다. 예전처럼 15명을 소형 버스인 카운티나 쏠라티 같은 대형 밴으로 가야 하는데 이놈들은 가격이 스타렉스의 2배를 뛰어넘죠. 기동성도 훨씬 떨어지고요. 때문에 예전 봉고차들이 노후됐는데도 불구하고 고가에 거래되면서 그 자리를 위태롭게 지키고 있었죠. 최근 르노 마스터 버스가 들어와 그나마 해소가 되고는 있는데, 2014년에는 현대에서 어린이 통학용 15인승 버스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 2차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더 뉴 스타렉스가 출시되는데요. 그릴과 범퍼를 크게 손봐 이전 모델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바뀌었는데, 어디서 튀어나온 디자인인지 생뚱맞게도 르노의 패밀리 룩과 흡사한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출시된 지 10년이 지난 사골 모델이지만 나름 신경을 썼는데요. 기존의 11인승 승합 상용 모델은 왜건과 밴으로 유지하고 고급형 모델인 9인승 '어반'을 따로 추가했습니다. 세금은 11인승보다 더 내야 하지만 2종 보통 자동면으로도 운전이 가능하고 6명 이상 탑승 시 버스 전용 차선 혜택과 110km 속도 제한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이점이 있죠.

그중에서도 어반 익스클루시브 모델은 LED 리어램프와 전용 휠, 전용 컬러를 사용하는 등 일반 모델과 외관을 차별화했고, 특히 인테리어를 거의 다른 차 수준으로 꾸며낸 것이 특징입니다. 같은 연식의 같은 차에서 트림에 따라 인테리어가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 것도 흔하지 않은 케이스죠. 다행히 고급 택시, 전세버스 등 비즈니스용 밴으로 좀 팔린다고 하네요.

리무진도 새롭게 단장을 했는데 그중에서 6인승 리무진은 6천만 원이라는 가격에 걸맞게 뒷좌석이 정말 압권입니다.

2세대 스타렉스는 국내 시장에서 유일하게 남은 상용밴인 만큼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죠. 때문에 상품성 개선을 게을리한다는 지적도 늘상 받았습니다. 20년 채울 기세인 포터와 함께요.

특히 신형 모델을 내놨음에도 차선이탈경고와 긴급제동보조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조차 추가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스타렉스'라는 이름은 2세대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현대차가 스타렉스의 후속 모델을 '스타리아'라는 이름으로 출시하면서 기존 스타렉스는 단종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인데요. 유리창 면적을 크게 넓힌 디자인이 기존에 봐오던 익숙한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죠. 우주선을 닮은 모양새가 마치 미래에서 온 것처럼 생겼는데, 현대차에서 앞으로 자율주행 시대로 변화할 것을 대비해 그 컨셉을 미리 적용했다고 발표했죠.

2세대 신형 플랫폼을 적용하면서 기존의 후륜구동 방식을 버리고 카니발과 동일한 전륜구동 방식으로 교체했습니다. 4륜구동은 그대로 유지했고요. 엔진은 카니발과 동일한 2.2L 디젤 엔진이 탑재가 됐고 판매량이 저조했던 2.4L LPi는 V6 3.5L LPi 엔진으로 대체되어서 힘이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고속도로의 제왕은 이제 스타리아 가스차가 될 수도 있겠네요. 또 수소연료전지 모델도 추가한다고 합니다.

직전 모델인 더 뉴 스타렉스의 구성과 마찬가지로 고급형인 라운지와 일반형인 투어러, 상용 모델인 카고 모델로 라인업을 분리해 다양한 용도에 맞게 구매할 수 있게 했죠. 더 커진 차체로 거주성을 높였고 전동식 도어나 2열 VIP 시트 같이 카니발 부럽지 않은 고급 사양도 갖췄습니다. 덩달아 가격도 많이 올랐죠?

새 플랫폼을 탑재하고 서스펜션도 개선해 승차감이 좋아졌다고 합니다만 실제로 타본 사람들은 그냥 기존 스타렉스와 큰 차이가 없다고 하네요. 숨겨지지 않는 상용 모델의 한계 같은 걸까요?

본 콘텐츠는 해당 유튜브 채널의 이용 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다만 이전 모델의 단점 중 하나였던 유압식 핸들을 전자식으로 바꾸면서 차로유지보조가 가능해졌고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비롯한 반자율 주행 장비를 화물용 밴에도 기본 사양으로 탑재했습니다. 그 어떤 차보다 도로 위를 달리는 시간이 많은 차량인 만큼 주행 안전 장비를 빵빵하게 챙긴 건 환영할 만한 부분이죠. 뒷좌석을 카메라로 확인할 수 있는 캐빈 캠이나 어라운드 뷰 등 고급 안전 사양도 추가해 아이들을 태울 때 좀 더 안전한 차가 된 것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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