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판에 눈이 달렸어요' 한물가는 줄 알았던 옥외광고의 진화
AI 기반 옥외광고 성과측정 플랫폼 개발기
여성 모델과 남성 모델 중 대중의 시선을 오래 끌 인물은?
광고주들은 늘 고민이다. 적잖은 돈을 주고 옥외광고를 집행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광고와 상이한 옥외광고 환경의 특성상 광고 효율을 측정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스타트업 스페이스비전에이아이의 이동욱 대표는 시각 이미지로 취득한 정보를 기반으로 판단하는 인공지능 ‘비전AI’에서 옥외광고 성과 측정 문제의 단서를 발견했다. AI 기반 옥외광고 성과 측정 사이니지 플랫폼 ‘어텐션:디’를 개발한 배경이다. 이 대표를 만나 옥외광고가 화수분인 이유를 들었다.
◇사람의 ‘시선’을 분석하는 옥외광고 성과 측정 플랫폼
지난해 7월 설립한 스페이스비전에이아이는 애드테크(ADtech) 기업 데이블의 사내벤처로 출발한 스타트업이다. 데이블은 AI 기반 개인 맞춤형 기사 및 콘텐츠 솔루션 운영사로, 네이티브 광고 분야에서는 유명한 기업이다. 유명 언론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옥외광고’다. 온라인 광고는 광고 성과를 측정하고 그 결과를 다음 광고에 반영하기가 쉬운 구조다. 사람들의 방문기록인 ‘데이터’가 남기 때문이다. 반면 옥외광고는 성과 측정이 쉽지 않다. 대중들이 광고판 앞을 스쳐도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한 단서인 '시선'을 흔적으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광고를 보는 사람의 ‘외양 정보’를 데이터로, 성과를 분석하는 방법론이다. 컴퓨터 비전을 활용해 옥외광고판 앞 사람을 분석한다. 광고의 어느 부분을 오래 봤는지 등의 정보도 확인 가능하다. 카메라로부터 20~30m 이내에 있는 사람의 자세와 시선이 측정 가능하다.
시각 정보는 스페이스비전에이아이가 개발한 사이니지나 셋톱 박스를 통해 수집한다. 옥외 광고를 송출할 디스플레이와 성과 측정 도구가 모두 필요한 이들은 사이니지를 활용하면 된다. 옥외 광고용 디스플레이를 이미 보유 중인 기업은 보유한 기기에 셋톱 박스만 설치하면 광고 성과를 측정할 수 있다. 수집한 데이터는 전용 대시보드로 확인 가능하다.
‘광고 소재 최적화’ 서비스도 제공한다. 여러 광고 소재를 두고 고민 중인 고객사는 모든 소재를 노출시킨 뒤 가장 주목도가 높은 소재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시간대나 장소별로 반응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는 광고 시안을 자동으로 노출해 광고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온라인 광고와 오프라인 광고의 차이점
이 대표는 연세대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했다. 물리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학문을 공부했지만 가상 공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컴퓨터라는 기계 안에서 사람의 상상력이 무한한 결과물로 이어지는 것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가상의 공간이 많은 사람을 동원하거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신기했어요. 언젠가 이 세상이 컴퓨터안에 담기는 날이 오겠다고 생각했죠. IT분야에서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입니다.”
LG CNS, SK플래닛, 데이블 등의 유명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에게 직장은 뛰어난 인재들과 어울리며 함께 성장하는 플랫폼이었다. “LG에서 개발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했습니다. 9년간 근무하다가 존경하던 분들이 SK플래닛으로 이직해서 저 역시 직장을 옮겼어요. 이곳에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VOLO라는 여행 기록 서비스로 사내벤처를 설립해 글로벌 사용자수 120만명에 달하는 서비스로 키운 적도 있어요.”
VOLO를 운영할 때 옆 팀은 사내벤처로 ‘데이블’을 창업했다. “데이블은 데이터를 토대로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기업입니다. 이용자가 좋아할만한 기사 추천 서비스, 네이티브 애드 등의 상품으로 온라인 광고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어요. 다수의 언론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죠. 창업 초기부터 훌륭한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합류할 기회가 생겼어요. 1도 망설이지 않고 옮겼습니다.”
데이블에서 신사업 발굴을 담당했다. 새로 파고들 분야를 찾던 그의 눈에 옥외광고 시장이 개척지로 보였다. “고도화된 온라인 광고 시장과 달리, 옥외광고 시장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업은 적게는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으로 광고를 집행하는데요. 공을 많이 들여도 성과 측정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광고주들은 대중들이 광고의 어떤 부분을 유심히 보는 지 노심초사하지만 광고판 앞의 사람 수, 머무는 시간 정도만 측정 가능합니다. 광고판 인근의 유동인구를 파악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사람을 수기로 센 기업도 있어요. 그렇다 보니 옥외 광고는 ‘부르는 게 값’인 시장이었습니다.”
◇여성 모델 A와 남성 모델 B, 누가 더 좋을까
처음엔 데이블 내 신규 사업 프로젝트로 출발했다. 옥외광고 성과 측정에 대한 광고주나 공간주의 수요부터 파악했다. “초반에 50곳이 넘는 공유 오피스에 사이니지를 설치하고, 광고를 집행한 후의 성과를 정리해서 광고주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분들이 요청한 것은 아니었지만 옥외광고 성과 분석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했더니 점차 굵직한 광고주분들이 성과 분석을 위해 저희를 찾기 시작했어요. 광고주들이 갈증을 느끼는 부분을 파악한 덕에 정성적인 가능성을 봤습니다.”
작년 7월 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AI가 무거운 상태로 출발했어요. 시장에선 소형화된 기기를 원했죠. 많은 일을 하는 AI 모델을 작은 장비에 탑재하는데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초반엔 아예 구동이 안되거나 느리게 돌아가곤 했는데요. 팀원들과 의기투합한 덕에 소형화에 성공했습니다.”
AI 기반 옥외광고 성과 측정 사이니지 플랫폼 ‘어텐션:디’는 사이니지, 셋톱 박스, 분석 대시보드로 이루어져 있다. “사이니지로 광고 송출 후 이를 본 대중의 외양정보를 정보를 수집합니다. 대중의 성별, 연령, 복장, 자세, 시선은 물론 그 공간에서 어떻게 이동하고, 이동 후 어떤 행동을 했는지 추적 가능하죠. 분석 결과는 대시보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중의 주목도를 기반으로 광고의 성과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광고 최적화’도 가능하다. “협력사와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습니다. 한 치킨 업체는 저녁 시간이나 금요일, 주말 전에 주목도가 상승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직장인들이 치킨을 생각하면서 퇴근한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드러난 것이죠. 한 숙박 플랫폼은 여성 모델과 남성 모델을 두고 고민 중이었는데요. 사람들이 여성 모델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여성 모델로 광고를 집행하기로 했습니다.”
광고 최적화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고, 옳은 의사결정은 매출 증대와 직결된다. “광고의 어느 부분에서 브랜드 메시지를 노출할 지 고민하던 한 기업은 3개의 광고 시안을 모두 돌려본 후, 구성을 확정했습니다. 시안별로 주목도가 20% 이상 차이 난 사례도 있어요. 어느 광고가 ‘잘 먹힐지’ 모르겠다면 저희 플랫폼에 맡겨보세요. 몇 시간만 지나면 어떤 사람들이 어떤 광고 시안에 관심을 주는지 알아서 추려줍니다. 광고 효율을 대폭 높일 수 있죠.”
개인정보 유출 우려는 원천 차단했다. “한국 개인정보보호법 및 기타 국가의 개인정보 보호체계를 준수했습니다. 사람의 모습은 지우고 분석과 관련된 숫자와 문자와 남깁니다. 저희 광고판을 유심히 본 여성은 그날 그 광고를 10초 이상 본 1300번째 30대 여성으로만 남아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미지는 분석 후 사이니지 단에서 삭제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광고주의 우려를 없앴습니다.”
◇공간 분석이 막강한 무기인 이유
지난해 10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현재는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공간에 사이니지 플랫폼을 도입하는 중이다.
기업들의 관심이 뜨겁다.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펼쳐지는 중입니다. 쇼핑몰, 피트니스 센터, 전기차 충전소, 극장, 쇼핑몰 등에 진출할 구상입니다. 유명 해외 유통 대기업의 러브콜도 받았습니다. 국내외 리테일 업체들이 큰 관심을 보여요. 대기업 옥외광고 시장 부문의 주요 협력사로 2024년 CES, ISE 전시에 참가합니다. 해외 무대를 어텐션:디를 알릴 기회로 활용할 구상이에요.”
물리적인 공간 분석은 결국 그 속의 사람을 분석하는 일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 분석 결과를 연계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온라인 광고는 방문기록을 토대로 퍼포먼스를 측정해서 사람을 규정합니다. 옥외광고는 컴퓨터 비전으로 사람의 행동을 파악하죠. 온라인 퍼포먼스 광고와 옥외광고의 측정결과를 조합하면 막강한 무기가 됩니다. 플랫폼 별로 최적의 콘텐츠를 전달해 온오프라인 통합 전략을 수립할 수 있죠.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별개가 아니라 모두 이해해야 하는 공간입니다.”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