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수학 경쟁, 지적 노동 위협” 허준이 등 필즈상 25명의 경고

곽수근 기자 2026. 9. 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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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등 필즈상 수상자 25명이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수학 난제 풀이 경쟁이 수학 연구와 학계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사진은 재작년 고등과학원 연구실에서 탁자에 올라앉은 허준이 교수.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테런스 타오 UCLA(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 등 필즈상 수상자 25명이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수학 난제 풀이 경쟁이 수학 연구와 학계에 해를 끼칠 수 있다며 공동 경고에 나섰다.

AI가 문제의 정답을 빠르게 내놓는 데 집중할 경우, 수학의 본래 목적인 개념적 이해와 새로운 통찰이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문제가 수학뿐 아니라 과학과 창작 등 인간의 지적 활동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필즈상 수상자 25명은 ‘수학에서 AI의 심각한 목표 불일치’라는 제목의 공동 성명을 지난 11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필즈상은 4년마다 뛰어난 젊은 수학자에게 주어져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서명자에는 2022년 필즈상을 받은 허 교수와 2006년 수상자인 타오 교수뿐 아니라 피에르 들리뉴, 세드리크 빌라니, 페터 숄체 등 세계적인 수학자들이 포함됐다.

이들은 최근 몇 달 사이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수학 능력이 급격히 향상되어 여러 수학 분야의 주요 미해결 문제까지 풀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AI 기업들이 유명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을 AI 성능을 평가하는 지표로 삼는 것은 수학이라는 학문과 수학 공동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답보다 중요한 건 ‘이해와 통찰’

이들은 “AI 기업의 목표와 수학 공동체의 목표 사이에는 심각한 불일치가 있다”고 했다. 수학 연구의 목적은 단순히 문제의 정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과 방법을 찾아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공동 성명은 수학사의 유명 난제들이 그동안 새로운 지식으로 향하는 ‘이정표이자 등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난제가 풀리면 해법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학자들이 오랜 시간 강연과 토론을 거쳐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을 정리하고 단순화한다. 이를 통해 처음에는 극소수 연구자만 이해하던 결과가 대학원생이나 학부생도 배울 수 있는 교과서 지식으로 발전하고, 일부는 수십 년 또는 수백 년 뒤 과학과 기술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AI가 빠른 속도로 수학 문제를 대량으로 풀어내기 시작하면서 이런 과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수학자들의 우려다. 이들은 “문제 풀이는 개념적 이해와 통찰이라는 주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자 대리 지표일 뿐”이라며 “이를 잊으면 도구가 오히려 본래 목표를 해칠 수 있다”고 밝혔다.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수학적 명제들이 빠른 속도로 대량 생산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랄 토양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AI가 만든 해법이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발표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새로운 방법과 아이디어를 제대로 정리하거나 기존 연구를 인용할 시간이 부족해질 경우, 연구 공로와 표절을 둘러싼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AI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더라도 이를 검증하고 기존 수학 체계에 편입시키는 인간 수학자가 없다면 지식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지적 노동에 대한 일반적 위협”

수학자들은 학생 교육에 미칠 영향도 우려했다. 지금까지 어려운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는 과정은 정답을 얻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고 새로운 질문을 만드는 능력을 훈련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수년간 훈련해야 얻을 수 있었던 결과물을 AI가 직접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훈련 과정’과 ‘최종 결과’ 사이의 연결이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수학계만의 문제가 아닌 “지적 노동에 대한 일반적인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과학과 창작 등 다른 분야에서도 오랜 훈련은 이해력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능력을 기르는 역할을 해왔지만, AI가 기존 인간의 성과를 학습해 완성된 결과를 곧바로 생산하면서 비슷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필즈상 수상자들은 AI 자체를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AI는 수학 연구와 이해를 강화하고 가속할 잠재력이 있으며 수학이라는 직업도 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런 변화가 수학 발전에 도움이 될지, 오히려 학문을 훼손할지는 AI 기술을 통제하고 사용하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AI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과정에서 애초 그 일이 무엇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며 수학계와 AI 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시급히 다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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