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인규같은 검사 나오지 않아야" 비판한 이유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문제점 지적
"박연차 노무현 대화 공개, 직무상 얻은 정보 유포"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라는 금언 실감"
노무현재단 "검증되지 않은 수사기록으로 인권짓밟고 유족 2차가해"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검사장)의 회고록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대화 내용을 공개한 점을 들어 직무상 얻은 정보를 유포했다며 대한민국에 더는 이런 검사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상언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2일자 중앙일보 오피니언면에 실린 <[이상언의 시시각각] 이인규, '협박 수사'가 자랑인가>에서 이 전 검사장의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같이 평가했다. 이 위원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이 전 검사장의 기억으로 채운 책 후반부에 “과장은 지시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16장짜리 보고서를 올렸다. 박연차 회장을 압박할 새로운 범죄 혐의사실이 총망라되어 있었으며 향후 수사 계획까지 들어 있었다. 이 정도면 박 회장을 항복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변호사에게) 수사 진행 중인 박 회장의 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중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기다리면 연락이 올 것이다(고 생각했다)”와 같은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은 “압박과 거래, 같은 방법이었다”며 “이 전 검사장은 자신이 노 전 대통령과 검찰청에서 나눈 말, 노 전 대통령과 박연차 전 회장이 조사실에서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직무상 얻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유포했다”며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은 반박조차 할 수 없다”고 썼다. 그는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조계 금언의 소중함을 실감한다”며 “이 전 검사장은 자신이 자랑스러운 검사였다고 믿는 모양인데, 대한민국에 더는 이런 검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비판했다.
실제 책에 상세히 묘사 … 노무현재단 “검증안된 수사기록 일방적 게재”
실제로 이 전 검사장은 이 위원이 언급한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의 조사실 대화 내용(2009년 4월26일)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했다. 그는 박 전 회장의 진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부인하자 검찰이 대질하겠다고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이 완강히 거부했다고 썼다. 이 검사장은 자신의 지시로, 우병우 검사가 그날 밤 11시30분경 조사가 끝나자 만나서 인사나 하는 것이 어떻느냐고 제안해 두 사람이 만났다고 썼다. 이 검사장은 “박 전 회장이 뒷짐 진 상태로 걸어 들어오면서 원망 섞인 목소리로 노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우짤라고 이러십니까!'라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 고생이 많습니다. 저도 감옥 가게 생겼어요. 감옥 가면 통방합시다'라고 인사했고, 박 전 회장은 '그런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얼버무리듯이 말했다”고 기록했다.
이밖에도 이인규 전 검사장은 노 전 대통령이 이날 조사에 들어가기 전에 차를 마시면서 자신에게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말했다고 썼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조사과정에서도 고가의 피아제 남녀 시계 수수 혐의에 “아내가 박 회장으로부터 시가 2억500만원 상당의 남녀 명품시계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퇴임후 봉하마을 사저에서 형 노건평의 처로부터 받았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으며 (2009년) 4월22일 KBS 9시뉴스 보도 후 아내로부터 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을 적었다.
문제는 이 전 검사장이 그 진술을 두고 일방적으로 추측한 내용까지 실었다는 점이다. 그는 “너무 작위적이어서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박 회장이 회갑 선물로 시계를 보낸 사실을 권 여사가 2년6개월 동안 노 전 대통령에게 숨겼다니 상식에 맞지 않는다”라고 추측했다. 우병우 검사가 “시계를 제출해달라”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이 “처(권양숙)가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된 후 겁이 났던지 밖에 내다 버렸다고 합디다”라고 대답했다고도 이 전 검사장은 썼다. 그는 특히 “모니터로 지켜보던 나는 '밖에 내다 버렸다'고 진술하는 장면에서 '대통령을 지내셨던 분이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주관적 감정을 담았다.
또한 이 전 검사장은 책 뒷부분에 노 전 대통령 수사 개요라는 형식의 글에서 권양숙 여사가 2007년 6월29이 정상문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전 회장으로부터 100만달러를 받았고, 같은해 9월22일 추가로 홍콩에 있는 임웡 계좌로 40만 달러를 송금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검사장은 아들의 미국 주택 구입 자금 명목으로 140만달러를 수수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썼다. 그러나 이 역시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부인해왔고, 법정에서 판단한 법적인 사실관계라고 보기 어려운데도 본인의 판단으로 단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미국에 집을 사는데 돈이 들어가 사용처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자 노 전 대통령이 “가족이나 내가 미국에 주택을 구입하면 조중동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말도 안됩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면서 고인의 진술도 기재했다.
이에 노무현재단은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지목하면서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노무현재단은 17일 보도자료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치검사가, 정치공작의 산물이며 완성되지도 않았던 검찰 조서를 각색해 책으로 출판한 것은, 고인과 유족을 다시 욕보이려는 '2차 가해' 행위일 수밖에 없다”며 “이인규씨의 책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닌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정면 반박했다.
노무현재단은 “공소시효 만료 시점에 맞추어, 무죄추정 원칙과 피의자의 방어권을 짓밟고, 미완 상태에서 중단한 수사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수사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검증된 사실인 양 공표하는 것은 당시 수사 책임자로서의 공적 책임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까지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했다. 노무현재단은 “특히 수사기록은 검찰이 관련자들을 밀실에서 조사한 조서일 뿐”이라며 “공개된 법정에서 변호인의 반대신문 등을 통해 진실성이 검증된 문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노무현재단은 “물적 증거들도 적법절차를 준수해 수집하였는지 여부를 살펴보지 않아서 마찬가지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수사기록의 일부를 꺼내어 고인과 유족을 모욕하는 것은 또 한 번의 정치공작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이인규 전 검사장이 쓴 내용 가운데 일방적 주장을 두고 노무현재단은 피아제 시계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이 받았다는 시계는 박연차 회장이 회갑 선물로 친척에게 맡겼고 그 친척이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후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야 시계의 존재를 알고 폐기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노무현재단은 박연차 회장에게 140만 달러를 받았다는 주장을 두고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권양숙 여사가 타향살이하는 자녀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정상문 비서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정 비서관이 박연차 회장에게 100만 달러를 빌린 것이 사실이다. 이 역시 노무현 대통령은 몰랐던 일”이라고 밝혔다.
노무현재단은 “노무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정상문 총무비서관이 대통령 퇴임 후를 걱정해 특수활동비를 모아놓은 것은 사실”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문 비서관의 구속과 관련해 '그 친구가 저를 위해 한 일입니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제가 할 일은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죄하는 일입니다'라고 심경을 밝힌 바 있다”고 반박했다.
노무현재단은 “노무현 대통령은 위 사실들을 재임 중에 전혀 몰랐으며 일체 관여한 바가 없다”며 “사실관계에 대한 이인규씨의 다른 주장들은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한다”고 비판했다. 노무현재단은 “정치수사의 가해자인 전직 검사 이인규 씨에게 노무현 대통령과 유족에 대한 2차 가해 공작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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