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공작새 5총사가 은진사에 사는 이유

조윤화 기자 2022. 9. 2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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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어느 새 완연한 가을입니다. 요즘 라노는 점심시간 사무실을 나설 때마다 “놀러 가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합니다. 그러다 황금 같은 휴일이 되면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기 일쑤! 친구 ‘소담’이는 “내가 사는 데가 놀기엔 딱 좋아”라고 하더군요. 취재를 핑계 삼아 오랜 친구를 만나러 라노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은진사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라노. 마을버스에서 내려 15분 간 걸어야 은진사에 도착한다. 동해선 좌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은진사에서 내리는 걸 추천한다.


파란 하늘이 기분을 들뜨게 만들던 지난 22일. 동해선을 타고 부산 기장군 좌천역에서 내렸어요. 마을버스로 갈아 타고 10여 분간 달리자 소담이가 사는 ‘은진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은진사는 1500여 종에 달하는 야생화의 성지로도 유명한데요. 최근에는 다섯 마리의 공작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공작 중 한 마리가 바로 라노의 친구 ‘소담’이인데요.

1년 전 소담이와 라노가 함께 찍은 사진.


SBS의 예능 프로그램 ‘TV 동물농장’은 지난달 ‘사찰에서 생활하는 다섯 마리 공작’을 주제로 은진사를 소개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분은 “방송이 나가고 30분 지났을 무렵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해 평소보다 10배 넘게 왔다”고 소개합니다.

퇴직 이후 전국일주를 하고 있는 박용석 씨는 벌써 여러 차례 은진사를 방문했는데요. 그는 “사찰에서 개를 키우는 경우는 봤는데 공작 무리가 사는 것은 처음”이라며 “은진사는 야생화나 분재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합니다. 황령산에서 태어난 라노도 은진사를 거닐며 처음 보는 꽃을 여럿 발견했어요.

나무에 올라가있는 공작들. 스님이 방목 형태로 키우고 있으나 은진사 멀리까진 공작이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사찰 구경이 끝났을 무렵. 라노를 초대한 소담이는 정작 다른 공작 친구들과 나무에 올라 내려올 생각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발걸음을 돌리긴 아쉬워 주지 도곡 스님과 만나 은진사에 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스님을 뵈러 온 신도들이 많아 종무실에서 30분간 기다리자 드디어 라노의 차례! 친견실로 들어서자 스님이 은진사에서 자란 야생화로 만든 향긋한 꽃차를 내어주셨어요. 가장 먼저 5마리의 공작이 은진사에서 살게 된 계기부터 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진료차 병원을 찾았아요. 대기실에 틀어둔 TV에서 공작이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 문득 ‘공작을 키워야겠다’ 결심했답니다. 공작 알 10개를 구해 정성껏 돌봐 부화시켰는데요. 부화에 성공한 공작 상당수가 어디론가 떠나고 현재는 5총사만 남았어요.”

스님은 공작에게 각각 소담·사랑·백작·소백작·청담이란 이름을 지어줬는데요. 같은 색을 띈 공작들은 구분하기 어려울 법도 한데 스님은 공작들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어 절대 헷갈리지 않는다고 해요. “백공작 소담이는 독립심이 강해 혼자서 잘 다녀요. 나머지 아이들은 몰려다니길 좋아하는데 가장 어린 청담이가 우두머리 역할을 합니다.”

공작들은 스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어디선가 날아온다고 해요. “지붕 위에 올라앉아 있던 공작이 반대편 지붕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보면 전설 속에 나오는 봉황이 눈앞에 살아있는 것만 같아요. 날개를 활짝 펼치고 비상하는 장면을 본 신도들은 몇 번이고 은진사를 다시 찾습니다.”

스님의 정성 아래 자라나는 생명체는 공작 말고도 또 있는데요. 은진사에는 1500여 종의 야생화가 피어있습니다. 스님에 따르면 식물도감에도 찾아볼 수 없는 꽃들도 여럿 피어있다는데요. 은진사 근처 교회 신도들도 꽃의 정취를 즐기러 은진사를 자주 방문합니다.

금화규는 ‘꽃의 콜라겐’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스님의 왼손 엄지손톱은 작업 중 망치를 잘못 내려친 탓에 부상의 흔적을 남겼다.


은진사를 거닐며 대화하던 스님이 노란 빛깔의 큼지막한 꽃잎이 매력적인 금화규를 가리켰어요. “꽃잎을 만져보면 표면이 보드랍고 맨들맨들한데 콜라겐이 풍부해서 그렇다고 해요. 꽃차로 자주 만들어 먹습니다.”

문득 스님은 어떤 꽃을 제일 어여삐 여기실지 궁금해졌어요. 스님은 “어느 것이 더하고 덜하고는 없다. 어느 꽃이든 각자 자리에서 피어나고 지는 그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순위부터 매기고 드려는 라노를 반성케하는 말이었습니다.

스님이 손수 작업한 수십여 개의 분화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은진사로 향하게 한다.


은진사가 ‘꽃의 사찰’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지난 30여 년간 스님의 고된 작업이 축적된 결과인데요. 스님은 “처음 10여 년간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작업했다. 사찰 어느 곳 하나 내 손을 안 거친 곳이 없다”고 합니다. 야생화 하나를 심을 때조차 위치를 고민하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위치를 바꾸길 반복. 청량감을 느끼게 하는 작은 폭포마저 스님이 직접 만든 결과물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일하지 죽어있는 사람은 일하지 않습니다. 몸이 아프고 두렵지 않은 이상 일해야 합니다.” 스님은 또 해야 할 일을 눈앞에 두고 ‘왜’라는 질문을 자꾸만 해선 안된다는 조언해주셨어요.

라노는 친구 만나러 왔다 꽃구경과 함께 고민 상담도 알차게 했는데요. 청명한 가을 날씨를 벗삼아 자연을 즐기고 싶다면 목적지를 은진사로 맞추는 건 어떨까요? 다섯 마리 공작이 날개를 활짝 펴고 아름답게 비행하는 모습을 꼭 볼 수 있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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