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랏? 손아섭 첫 홈런을 저렇게 반겨주면 안 되는데

사진 제공 = OSEN

전입 첫날의 홈런

초반 스코어는 원정 팀 편이다. 베어스가 5-2로 앞선다.

이어진 4회 초 공격이다. 이적생 박찬호가 2루타를 터트린다. 1루 주자 정수빈이 홈을 밟는다. 점수는 6-2로 벌어진다. (14일 인천 랜더스 필드, SSG 랜더스 – 두산 베어스)

계속된 1사 2루다. 또 다른 전입생의 타석이다. 바로 이날 합류한 ‘따끈한’ 신입이다. 손아섭(38)이 입술을 앙다문다.

좌완 박시후의 초구는 슬라이더다. 131km짜리가 밋밋하게 휜다. 코스도 달콤하다. 몸 쪽 약간 높게 걸린다. ‘아차’ 싶은 실투다.

아무리 그래도 이름값이 있다. 이런 걸 놓칠 타자가 아니다. 강렬한 스윙이 폭발한다. ‘번쩍.’ 공이 들린다. 까마득히 솟은 타구는 우중간 담장 너머로 사라진다. 투런 홈런이다.

6-2가 8-2로 바뀐다. 이제 기울기는 더욱 커졌다. 3루 쪽 응원석이 뒤집어진다. 펄쩍펄쩍 뛰고, 들썩들썩 흥이 넘친다.

타구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한껏 신바람을 낸다. 다이아몬드를 힘차게 일주한다. 3루를 돌 무렵이다. 오른손 검지로 어딘가를 찍는다. 열광하는 팬들을 향한 것 같다.

그렇게 화려한 달리기를 마쳤다. 개선 행진은 덕아웃까지 이어진다. 감독, 코치, 스태프, 동료 선수들. 모두가 뜨겁고, 격하게 맞아준다. 하이 파이브, 포옹…. 각자의 방법으로 환영식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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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한 무관심 세리머니

하지만 다들 깜빡했다. 이런 식으로 맞으면 안 된다. 말했다시피 전입생 아닌가. 전통적인 방식이어야 했다.

이른바 침묵, 혹은 ‘무관심 세리머니’다. 몰래카메라 형식의 환영 말이다.

다들 모른 척하고 있어야 한다. 무시하고, 투명인간 취급을 했어야 한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와~” 하면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야 한다.

메이저리그는 물론이다. KBO리그에도 오래전에 도입됐다. 그런데 그걸 깜빡한 것이다.

혹시 베어스의 팀 문화인가? 그럴 리 없다. 바로 몇 분 전이다. 그러니까 3회 초였다. 박찬호가 담장을 넘겼다. 역시 이적 후 첫 홈런이다.

이때는 덕아웃 풍경이 전혀 달랐다. 모두가 외면한다. 웃음을 꾹 참는다. 그리고 딴짓에 열중한다. 당사자는 머쓱하다. 빈손으로 허공을 휘젓는다. 호응 없는 하이 터치(파이브)가 애처롭다.

물론 잠시 뿐이다. 곧 흥겨운 축제가 벌어진다.

불과 1이닝 차이다. 므찐 오빠도 내용은 똑같다. 베어스가 된 뒤 첫 홈런이다. 그런데 이때는 ‘무관심’이 아니다. 진심 200%의 세리머니가 펼쳐진 것이다.

심지어 최고참 양의지(1년 선배)가 가장 격렬했다. 온 힘을 다해 오른손을 마주친다. 저러다가 다치는 것 아냐? 그런 걱정이 들 정도로 풀파워를 발휘한다. 게다가 권투까지 펼친다. 양손으로 보디샷을 연타한다.

아마 그런 것 같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래서 미리 짜고, 상의하고,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얼떨결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그 정도로 짜릿한 순간이었다. 그 정도로 극적인 장면이었다.

첫 홈런 후 양의지와 격렬한 세리머니 MBC Sports+ 중계 화면 / TIVING 캡처
첫 홈런 후 양의지와 격렬한 세리머니 MBC Sports+ 중계 화면 / TIVING 캡처

“겨울부터 너무 많이 힘들었다”

경기 후 인터뷰 때다. MBC Sports+의 전신영 아나운서가 얘기를 나눴다.

전신영 “오늘만 벌써 두 번째(경기 전 포함해) 인터뷰다. ‘손아섭 데이’ 같다.”

손아섭 “솔직히 부담도 많이 됐고,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많았다. 일단 팀이 이기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었다. 그게 너무 좋다.”

신영 “두산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겠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켰다.”

아섭 “이제 한 경기라서. 야구라는 게 정말 어렵다. 그 앞에서는 정말 겸손해야 할 것 같다.”

신영 “작년 가을부터 해서, 그간을 돌아보면 어떤가.”

아섭 “어~(한숨을 쉬고), 사실 좀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앞으로 내 삶에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신영 “매 타석 전력질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회 득점 때는 홈에서 몸을 던졌다. 머리부터 들어가는 슬라이딩이었다.)

아섭 “야구를 하면서, 그 부분은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당연한 일이다. 홈런이나 안타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나 주루 플레이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다.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다.”

신영 “홈런 순간의 느낌은.”

아섭 “잘 맞아서 넘어갈 것이라는 예상은 했다. 그런데 생각한 것만큼 거리는 나지 않더라. 웨이트(트레이닝)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신영 “홈런 후 양의지와 세리머니를 하던데.”

아섭 “최고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자리인지 잘 안다. 그래서 의지 형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경기 후 MBC Sports+의 전신영 아나운서와 인터뷰 MBC Sports+ 화면 / TIVING 캡처

18년 만에 숙소 생활

생각해 보시라. 나이가 38세다.

‘이미 한 물 갔다.’

‘이제 외야수로는 어렵다.’

‘그렇다고 지명타자도 쉽지 않다.’

그런 평가가 대세였다.

불과 몇 개월 사이다. 인생의 파도가 거칠다.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수십 억, 100억짜리 선수가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심지어 300억이 넘는 계약서도 나온다.

그 와중이다. 선수 생명 연장을 위해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가까스로 합의에 이르렀다. 적힌 금액은 ‘겨우 1억’이다.

그나마도 찬밥 신세다. 대전에 머무를 수 없다. 서산(2군)으로 쫓겨났다.

거기서도 편치 못하다. 주전 자리는 언감생심이다. 2군 경기조차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밀린다.

3주를 보냈다. 출전은 달랑 3게임이 전부다. 타석 기회는 10번뿐이다. 반면 (2군) 주전급들은 14~18게임, 50~60타석씩 소화했다.

그마저도 좋은 마음으로 넘긴다.

“한화 2군이 워낙 멤버들이 강하다. 게임만 하면 모두 이기는 것 같다. 특히 외야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

서운함이 왜 없겠나. 하지만 애써 감춘다. 아니, 자신의 탓을 인정한다.

“내가 워낙 보여준 것이 없었다.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았지만, 보답을 못한 것 같아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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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백넘버, 노시환과 같은 8번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계속된 트레이드설이다. 성사, 통보 과정도 그렇다. 안쓰러운 부분이다.

“오늘 훈련이 없는 휴일이다. 그런 날은 루틴이 사우나를 하는 것이다. 마침 목욕탕으로 가려고 운전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나이가 곧 40이다. 그런데 숙소에서 생활한다. 2군이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숙소 생활은) 아마 18년 정도 된 것 같다. 20대 초반 이후는 처음이다.”

그러니 오죽하겠나. 비슷한 경험한 선수들이 많다. 그들의 공통된 얘기다.

“(나이 많이 먹고 2군에서 지내면) 여러 가지가 힘들고 불편하다. 후배들은 어려워서 가까이 오지도 못한다. 식사 시간에도 혼자 먹기 일쑤다.”

왠지 그래서 그랬을 것 같다. 휴일을 사우나에서 보내려 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그러면서 눈빛이 달라졌다. 간간이 출연하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왠지 깊고, 신중한 얼굴이 됐다.

생각도 깊다. 두고 온 후배 걱정이 한가득이다.

“정말 고마운 동생이 있다. 노시환이다. 말도 안 될 정도로 긍정적인 친구인데, 요즘은 조금 기가 죽어 있는 것 같더라. (한화) 2군에서 보면 같이 훈련도 하고, 밥도 먹으려고 했는데….”

그러면서 등번호에 대한 속내도 털어놓는다.

“(두산) 구단에서는 등번호 36번을 추천했다. (손아섭의 31번은 정수빈의 백넘버다) 하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8번을 달라고 했다. 마침 시환이의 번호라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얘기를 노시환이 들었다. 그리고 손아섭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너무 잘 됐습니다. 선배님. 8번은 엄청 좋은 숫자입니다. 오뚝이 번호입니다.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겁니다. 선배님도,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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