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보다 얼굴이 익숙한 배우 김명국은 많은 작품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지만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다.
1980년대부터 대학로에서 연극 무대에 서기 시작하며 오랜 시간 무명 배우로서의 삶을 견뎌낸 그는 “그땐 연극만 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닥치면서 그의 삶은 더욱 힘겨워졌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가장의 책임을 지고 있던 그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을 시작했다.
그는 “기술이 없어 보조 일꾼으로 시작했다. 타일과 시멘트를 나르다 보니 시멘트 가루 때문에 피부 염증까지 생겼다”며 당시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하루라도 쉬고 싶었지만 아내의 “가장으로서 나가야 한다”는 말에 매일같이 힘겹게 일터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김명국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광고 출연 기회를 얻게 되면서 대중의 시선 속에 서기 시작했다.
8살에 세상을 떠난 아들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은 무명 시절의 어려움이 아니었다. 2000년, 광고를 통해 ‘햄버거 아저씨’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 직후, 그의 첫째 아들이 급성 림프성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됐다.
그는 “백혈병은 드라마나 영화 속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내 가족, 내 아들에게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은 5년간의 투병 생활을 하며 어린 나이에 고통을 겪었다. 김명국은 아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싶다”,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2005년 5월,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명국은 아들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며 “아이가 가장 좋아하던 옷을 입혀서 입관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후 그는 20년 넘게 조혈모세포 기증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김명국은 “내가 이 캠페인을 이어가는 이유는 오직 환아들을 돕기 위해서다. 아들이 남긴 유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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