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 몰표 찍던 곳이었는데…"민심 돌아섰다" 초유의 사태 [박의명의 불곰국 이야기]

박의명 2024. 9. 17.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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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결사 항전을 펼치고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분위기가 지금과 같지 않았습니다.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대부분은 러시아를 '형님이자 혈육'으로 생각했습니다.

우크라이나어를 구사하는 서쪽과 달리 동부 주민 대부분은 러시아어가 모국어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탱크가 우크라이나 영토로 진입하는 순간, 동부 지역 주민들이 러시아 깃발을 들고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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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형님이자 혈육'으로 생각하다
뒤늦게 후회한 우크라이나 동부 주민들
지난 4일 우크라이나 서부 최대 도시 르비우에서 러시아 폭격에서 살아남은 시민 두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결사 항전을 펼치고 있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분위기가 지금과 같지 않았습니다.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 대부분은 러시아를 ‘형님이자 혈육’으로 생각했습니다.

러시아가 국토를 짓밟고 가족들이 죽어 나가자 뒤늦게 자신들이 ‘우크라이나 국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2010년 대통령 선거. 빅토르 야누코비치 지역당 대선 후보(파란색)가 결선 투표에서 48.95%를 득표해 4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당선됐다.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은 모국어인 우크라이나어도 제대로 배우지 않아 공개 석상에서 말을 더듬는 경우가 많았다. 2014년 시위대가 의회를 점령하자 러시아로 도주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우크라이나는 서쪽은 유럽, 동쪽은 러시아를 지지하는 뿌리 깊은 ‘동서분열’을 겪었습니다.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 동부 지역은 러시아의 ‘꼭두각시’로 불리는 빅토르 야누코비치 지역당 대선 후보(기호 2번·48.95% 득표)에게 몰표를 줘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습니다.

우크라이나 전통 헤어스타일과 복장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은 율리아 티모셴코 후보(우리 우크라이나 당)는 서쪽 지역의 몰표를 받아 45.47%를 득표했습니다. 

동부 주민들이 러시아를 믿었던 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어를 구사하는 서쪽과 달리 동부 주민 대부분은 러시아어가 모국어입니다.

언어가 인종을 가른다는 논리로 본다면, 동부 지역은 러시아에 더 가까운 것입니다.

2012년 우크라이나 총선. 파란색이 친러시아 성향 지역당(Party of Regions).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겠다고 결심한 배경에도 동서분열이 자리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탱크가 우크라이나 영토로 진입하는 순간, 동부 지역 주민들이 러시아 깃발을 들고 환영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쟁 시작과 함께 국토의 반을 먹고 시작할 수 있는 쉬운 전쟁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누자 우크라이나 국민은 저항을 택했습니다.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예상됐던 전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배경입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곡사포를 발사하고 있다. 사진=러시아 국방부 제공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에서 민족의식이 싹트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생각했던 동부 지역 주민이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사례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한 러시아인 한반도 전문가는 “북한 지도부는 북남통일에 대한 목표를 버리지 않았다”며 “남한도 평화 통일에 대한 꿈을 버릴 때가 됐다”고 전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제공, 연합뉴스


강대국이 나라를 대신 지켜줄 것이라고 믿어서도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러시아인 전문가는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는 것은 러시아가 핵을 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이라며 “북한이 미국 본토에 핵을 쏜다고 협박하면 그때도 미국이 한국을 지켜줄 수 있겠나. 한국도 자신을 지킬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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