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실망과 희망 사이…주효상·박민의 2025

2025시즌이 끝난 뒤 KIA는 울산에서 진행된 KBO 가을 리그를 통해 새 시즌 밑그림을 그렸다. 주효상도 가을리그에서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김여울 기자

KIA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절망의 2025시즌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다음 꿈을 꾸게 하는 기회의 시즌이기도 했다.

기회라는 것은 그렇다. 기회는 누군가의 실패와 좌절, 누군가의 기대와 희망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내야수 박민에게 시즌이 끝난 후 “2025시즌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박민은 ‘기회’를 말했다.

야수진의 줄부상 속 기회를 얻은 박민은 올 시즌 71경기에 나와 105타석에 들어갔다. 프로 6년 차에 처음으로 담장을 넘기고 그라운드를 돌기도 했다. 매일 자신의 이름이 선발 라인업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서 행복한 6월을 보내기도 했다. 기회였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였다. 수비는 준비한 대로 잘 풀렸다.

박민은 “긴장된 상황에서 대수비 투입됐을 때 자신 있게 했던 게 좋았던 것 같다. 경기 안에서 공만 잡으려고 한 게 아니라 타자의 주력, 어느 방향으로 많이 치는지, 투수의 구종 다 생각해서 움직이니까 도움이 많이 됐다. 상황에 맞는 플레이는 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지난해 주어진 기회를 완벽하게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또 다른 기회를 붙잡게 한 힘이다.

박민은 “작년에 부딪히기도 하고. 에러도 많이 해보고 하니까 올해는 어떤 상황에서든 많은 것을 체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회에 대한 간절함도 박민의 플레이에 영향을 줬다. 박민은 일찍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이다.

사람들은 군복무를 끝냈으니 마음 편히 야구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박민의 마음은 반대였다.

박민은 “도전하는 것은 군대 가기 전인 애들이 더 해보기 좋을 것 같다. 군대 갔다 와서는 갈 데가 없다. 계속 여기서 보여줘야 되고, 자리 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KIA 타이거즈의 위기의 시즌, 박민에게는 기회의 시즌이 됐다. /김여울 기자

신인 시절의 간절함과는 또 다른 간절함으로 박민은 그라운드에 올랐다.

박민은 “경기장에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고, 보여주고 싶고 그런 게 큰데 예전과는 다른 간절함이다”며 “긴장이라는 게 ‘못하면 어떻게 하지? 내려가면 어떻게 하지? 관중이 야유를 하면 어떻게 하지?’이런 생각을 하면서 생기는 것이다. 올해는 그런 것보다는 다른 것을 더 신경 쓰니까 자연스럽게 긴장이 없어지고, 해야 하는 플레이가 머릿속에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야수로서 기회를 살렸지만 타자로서는 고민이 많다.

박민은 “한 타석 못 쳤다고 다른 생각이 들면 안 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타율 떨어지는 게 보이고 마음도 급해지고 안타 하나에 집착하니까 더 소극적으로 됐다. 타석에서 자신 있게 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며 “나름 고등학교 때도 잘 쳤고 상무가서도 잘 쳤는데 더 이상 업그레이드가 안 된다. 작년에는 수비는 잘 못했어도 방망이를 잘 쳐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멘털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희망을 봤던 순간도 있다. 주축 선수들이 동반 이탈했던 ‘위기의 6월’ 박민은 다음 타석, 다음 경기 걱정 없이 마음껏 뛰어볼 수 있었다.

박민은 “6월에는 경기를 1주일 내내 나간 적도 있어서 안타도 많이 나오고 자신감도 많이 붙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경기가 수월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직 확고한 자리가 없는 박민은 다시 타석에서 쫓기면서 아쉬움의 가을을 보냈다. 기회를 받았고, 기회를 내주기도 하면서 박민은 배웠다.

박민은 “어려워도 해내야 기회를 주는 것인데 그걸 못했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많이 치고, 많이 공부도 해야 한다. 올해 하면서 느꼈다고 생각한다. 내년에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음 기회를 기대했다.

준비되지 않았던 기회는 주효상에게 독이 됐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주효상은 진짜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김여울 기자

포수 주효상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그의 대답 역시 배움과 기회였다.

주효상은 “기술적인 것보다는 마인드 컨트롤 이런 것을 많이 배웠다. 솔직히 야구에서는 이런 게 더 크다. 그리고 말 그대로 기회를 얻었다. 전보다는 더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올 시즌 주효상에게 주어진 기회는 8경기 17타석. 5개의 안타를 만들었고, 1개의 도루 저지도 남겼다. 미약한 수치일 수도 있지만 주효상에게는 다시 꿈을 꾸게 하는 큰 숫자들이다.

2023년 5월 13일 두산전 이후 자취를 감췄던 주효상은 지난 5월 17일 설레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1군으로 왔다.

더블헤더 특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던 주효상은 눈을 빛내면서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주효상은 덕아웃을 지키다가 돌아갔다.

다시 주효상의 이름이 불린 것은 9월 13일이었다.

길었던 시간이지만 주효상은 지치지 않았다. ‘진짜 기회’를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덕분이다.

주효상은 “올라가고 못 올라가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큰 아쉬움은 없었다. 언제든 기회만 오면 보여주겠다는 상태로 항상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며 “내 기준에는 준비한 만큼 다 못 보여준 것 같아서 조금 아쉽지만 나쁘지 않게 좋은 모습 보여준 것 같다. 2군에서 계속 좋았던 도루저지도 1군에서 다행히 하나 보여줬다. 타격도 생각한 것보다 더 괜찮게 좋은 결과 만들었다. 타석에서 카운트 싸움을 잘 가져갔다. 유인구성 변화구도 참아지고 유리하게 가져가니까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돌아봤다.

KIA에서 주효상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방 고민에 빠진 KIA는 2022년 11월, 2024년 신인 2라운드 지명권을 내주는 조건으로 키움에서 주효상을 영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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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입장에서는 당장 트레이드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고, 주효상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준비되지 않은 기회였다.

주효상은 “처음 KIA 왔을 때 기대가 크셨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건 내 잘못이기도 하고 아쉬운 게 컸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준비가 많이 안 됐던 것 같다. 전역하고 얼마 안 됐고, 수술하고 팔이 너무 아팠었다. 어찌 됐든 좋은 기회가 온 거였다. 그걸 한 번 잡아보겠다고 참고했다. 시합 도중에 발목이 돌아가기도 했었다. 발목이 퉁퉁 부었는데 참고했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는데 그게 독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준비되지 않은 기회에서 큰 실패를 경험한 주효상은 원점에 섰다.

마음을 다시 먹고 다음 기회를 기다렸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기회가 지나간 뒤 주효상은 주효상이 아니었다.

주효상은 “팔꿈치가 너무 아프다 보니까 송구 강도도 그렇고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부분에서 많이 부족한 선수로 인식이 됐던 것 같다. 다른 사람으로 봤다”며 “키움에서는 나를 신인 때부터 봤으니까 ‘수술을 해서 몸이 아직 안 올라왔구나’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KIA에서는 처음에 와서 보여준 모습이 실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주효상은 애를 썼다. 그 과정에서 몸도 마음 같지 않았고, 마음도 마음이 아니었다. 올해 초 주효상은 떠날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주효상은 “올해 초에도 너무 안 됐다. 참다 참다 마지노선에 온 것 같았다. 김동혁 팀장님이랑 면담하면서 ‘내 느낌에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라고 말씀드렸다. 조금이라도 빨리 젊은 나이에 딴 길을 찾아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팀장님이 원래 위로의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냉정하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면서 ‘너무 아깝다. 조금만 더 해보자’고 하셨다”며 “신기하게 그 뒤로부터 너무 잘됐다. 면담 뒤로 확 달라졌다. 2군에서 성적도 그렇고 달라졌다. 돌아보면 잘 버텼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바닥까지 내려가서 모든 걸 내려놓은 주효상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차분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아직은 부족하지만 찾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효상은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선수들 다 그런 마음이 있을 것이다. (오)선우 형도 버텨내서 왔다. 그 전에는 뭐가 하려고 하고, 성공해야 한다 이런 압박감이 있었는데 그걸 내려놓으니까 편안해졌다. 부담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었다”고 웃었다.

주효상의 이야기처럼 때로는 기회가 기회가 아닌 경우도 있다.

‘진짜 기회’를 맞기 위해서는 노력과 안내가 필요하다.

냉정한 자기 평가도 필요하다. 어설픈 기회를 잡으려다가 진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