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돌까지 남들만큼만 걷는게 목표" 속타는 '이른둥이' 부모들(종합)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첫 돌까지가 어떻게든 걸어야 하는 '골든타임'이라 이른둥이 엄마들은 다들 애를 태우며 아이 재활 치료를 받으러 다녀요."
"네 쌍둥이 엄마인데 태아보험을 단칼에 거절당했어요. 다태아라 아이들이 미숙아로 태어나게 됐는데 온갖 비급여 검사에 치료까지 경제적으로 버겁더군요."
국내 출생아 10명 중 1명은 미숙아로 태어난다.
'이른둥이'라고도 불리는 미숙아는 임신 기간 37주를 못 채우고 태어나거나 체중이 2.5㎏에 미달하는 출생아다.
미숙아들은 제때 치료를 잘 받고 운이 따라 준다면 큰 질환이나 발달 지연 없이 건강하게 자라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으면 장기 미성숙 등으로 인해 합병증을 겪고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뇌성마비 등을 갖게 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는 17일 서울 중구 비즈허브서울센터에서 미숙아 부모, 의료계 전문가 등과 미숙아 지원 방향을 논의하는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28주 만에 태어난 세쌍둥이·29주 만에 태어난 네쌍둥이 등 미숙아를 키우는 부모 5명이 초대돼 육아 경험과 양육 애로사항을 공유했다.
몇 년 전 임신 29주만에 세상에 나온 네쌍둥이를 기르고 있는 최혜옥(35)씨는 "일단 태어난 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인큐베이터를 찾는 것부터 문제"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늘어나는 미숙아 수에 비해 인큐베이터 수가 모자라 임신부들은 인큐베이터가 비는 날에 맞춰 수술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최 씨는 "우리 아이들은 다태아라 심지어 여러 병원으로 나뉘어 갈 뻔했다"고 말했다.
무사히 퇴원하게 되면 대부분의 미숙아들은 재활 치료를 받는다. 근육 발달 등이 제때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이상이 있으면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재활 치료 기관이나 인력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최씨와 마찬가지로 몇 해 전 이른둥이 세쌍둥이를 낳은 정혜은(43)씨는 "대부분은 낳은 병원에서 소개로 재활 치료를 받게 되는데, 물리치료사 수도 현저히 부족하고 기본 3∼4개월씩은 대기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하루하루 '발달 골든 타임'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애가 탄다"고 토로했다.
다태아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 자체가 버겁다.
최 씨는 "미숙아를 위한 카시트가 네 개씩이나 있는 차가 어디 있겠느냐"며 "치료일마다 온 가족이 동원되는데, 도와 줄 사람이 없으면 갈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상황에 따라 방문 재활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건의가 나오기도 했다.
이른둥이 부모들은 경제적 문제도 더 크다. 다태아인 경우나 의학적 문제가 있는 경우 태아보험을 거절당하고, 조산의 합병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온갖 비급여 검사를 받는다.
정 씨는 "신체 장기 미성숙으로 인해 아이들이 아플 확률이 커 5년 동안 진료비 산정 특례를 받는데, 실제로는 5살 이후까지 아픈 아이들이 많다"고 지적하며 급여 진료의 경우에도 산정 특례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 출생으로 인한 행정적 고충도 크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미숙아의 부모는 "아이가 2월생이어야 하는데 11월에 태어났다"며 "어릴 때는 발달 차이 때문에 제 연령에 보육 시설에 보낼 수 없어 계속 한 살 아래 연령대 반으로 보냈고 마지막 해에는 지원도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또 부모들은 육아휴직도 아이가 태어난 이른 시점에 맞춰 써야 하지만, 실제로는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나오는 때부터 육아가 시작되기 때문에 고충이 있다고 말했다.
한 엄마는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무려 1년을 있었다"며 "병원을 나올 때쯤 되자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 양육을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숙아 부모들은 간담회에서 교정일(당초 출생 예정일)로 출생 신고가 가능하게 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김이경 서울대 어린이병원 교수는 "퇴원하고 뇌 가소성이 있다는 시기에, 재활의 효과가 좋을 때 제대로 재활 치료를 빨리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며 "소아재활 인력, 시설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산정특례 같은 경우도 특정 질환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 등이 있어서 조금 더 합리적으로 대상을 선정해야 할 것 같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재활치료나 발달 검사 같은 경우 부담이 커서 부모에게만 떠넘길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아이들을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견을 청취한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지난달 국내 첫 자연임신 다섯쌍둥이가 태어나는 등 심각한 저출생 상황에서 '이른둥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간담회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이른둥이가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부족했는지, 어떤 지원을 더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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