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사망자 10명 중 8명…'아버지' 세대 근로자였다

5년간 사망사고 78%가 50대 이상…외국인 근로자 사망도 매년 증가
건설현장.

한여름 건설현장은 뜨거운 철근과 콘크리트가 바닥까지 달아오른 상태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 일찍부터 자재차가 드나들고, 크레인이 움직이며, 비계와 거푸집 위로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중장년층은 안전벨트를 착용하고도 높은 곳에서 자세를 낮춰 자재를 고정해야 한다.

작업 중간에 햇볕을 피할 그늘이 부족한 구간이 있고, 바닥은 습기와 먼지로 미끄럽다. 현장마다 안전수칙 게시판이 서 있지만 시끄러운 장비 소리 속에서 지시 전달이 끊기는 순간이 생긴다. 작업 속도와 숙련도 차이가 존재하고, 장시간 서서 일하는 과정에서 관절과 허리 피로가 누적된다. 이 환경에서 추락·협착·낙하물 사고 위험은 늘 가까이에 있다.

건설현장 사망자 10명 중 8명, 중장년 근로자였다

벽돌을 나르기 위해 준비 중인 건설 근로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14일 발표한 건설업 산업재해 통계는 현장의 풍경을 수치로 확인해 준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건설업에서 업무상 사고로 숨진 인원은 2061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60세 이상이 900명으로 43.7%를 차지했고 50세 이상까지 합치면 1619명으로 78.6%에 달했다. 10명 중 8명이 중장년 이상이라는 뜻이다. 안전모와 추락 방지설비, 신호수 배치가 보편화되었어도 고령층의 비중이 높은 구조가 사고 통계에 그대로 반영됐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건설기성 및 건설기능인력 동향’은 인력 구성을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건설기능인력 중 60대 이상 비율은 26.6%다. 2018년 말 16.3%와 비교하면 10.3%포인트 상승했다.통계를 시작한 2001년 12월의 6.6%와 견주면 증가 폭은 20%포인트에 이른다.

올해 말 40대 이상 비중은 82.6%로 전망돼 전체 산업 평균 67.4%보다 15.2%포인트 높다. 젊은 층이 현장을 꺼리는 흐름 속에서 빈자리를 중장년과 외국인이 채우는 구조가 굳어졌다.

외국인 근로자 사망 3년 새 30% 넘게 증가

건설현장에서 자재를 옮기는 모습.

외국인 근로자 증가도 현장의 안전 과제를 키운다. 언어와 현장 용어가 바로 통하지 않으면 신호수 지시, 중장비 접근 경보, 위험 구역 표지의 의미가 늦게 이해되는 일이 생긴다. 건설현장 외국인 근로자 사망은 2021년 42명, 2022년 47명, 2023년 55명으로 늘었다.

여름철 온열질환에 취약한 사람은 경고 증상을 초기에 인지하지 못해 위험에 더 가까워진다. 햇볕이 강한 날, 거푸집 철판과 비계는 금세 뜨거워지고, 땀에 젖은 장갑은 그립을 약하게 만든다. 장시간 작업으로 피로가 쌓이면 경사면 이동과 고소에서의 발걸음이 흔들린다. 여기에 신호 소음과 먼지가 겹치면 상황 판단은 느려진다.

한 건설업계 현장 관리자는 “여기 들어가면 안 된다” “헬멧과 턱끈을 반드시 매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안내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일부는 지시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더위 속에서 장비를 잠깐 벗었다가 그대로 작업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런 순간들이 사고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현장에서는 장비 미설치보다 ‘규칙을 지키지 않은 행동’이 더 잦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보 장치와 안전난간이 있어도 마지막 1분의 방심이 추락과 협착으로 이어진다. 중장년은 무거운 장비를 들 때 허리와 어깨 보호대가 필수인데, 맞춤형 보호장구가 부족한 현장에서는 치수와 착용감 문제로 사용을 꺼리기도 한다.

한여름엔 철근보다 뜨거운 안전 과제

건설현장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제도와 현장 운영 모두를 손보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생산현장 사망사고 억제를 위해 중대재해를 반복한 건설사의 입찰 자격을 영구 박탈하고 금융 제재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고용노동부는 13일 “법 위반에 대한 경제적 불리함을 크게 높여 기업이 이득을 위해 재해 발생을 묵인하는 고리를 끊겠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동시에 2명 이상 사망’해야 영업정지 요청이 가능했는데 앞으로는 ‘연간 다수 사망’이 발생해도 영업정지를 요청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동시에 2명 조건만으로는 1년에 10명이 숨져도 조치가 어렵다”고 말했다. 영업정지 요청 이후에 사망사고가 다시 발생하면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에 건설사 등록 말소를 요청하는 규정도 신설한다. 제조업과 조선업 등 재해가 잦은 업종에도 인허가 취소 사유를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사후 처벌만 강화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전 예방 장치도 늘린다. 중대재해가 아직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위험이 뚜렷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보는 안이 검토된다. 지방자치단체에 근로감독 권한을 부여하고 감독관 인력을 확충해 상시 점검을 촘촘히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일상 점검 과정에서 안전 의무 위반이 확인되면 즉시 사법 조치로 이어지고, 노동자 대표가 추천하는 사람을 명예산업안전감독관으로 위촉하는 절차가 의무화된다. 공공조달에서도 중대재해가 잦은 사업장의 입찰 참가를 강하게 제한하고, 금융권 대출 심사와 공시·평가 과정에 안전 위험요인을 반영해 자금 조달 단계에서부터 위험 관리를 하도록 한다.

원청의 책무도 더 무거워진다. 원청은 하청 노동자를 포함한 재해 현황과 재발 방지 계획을 공개해야 하고, 산재 예방 능력이 검증된 하청과만 계약하도록 제도를 정비한다. 불법 하도급은 합동 단속을 정례화해 차단한다. 또한 정부는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제도 개선이 현장에 안착하려면 발주·설계·시공 전 과정에서 안전예산이 별도로 설계되고, 일정 관리가 ‘안전 우선’으로 재배치되어야 한다.

현장은 비용과 일정 사이에서 흔들린다. 공사 기한이 촉박하면 밤낮없이 공정을 당기는 관행이 생기고, 이 과정에서 무리한 작업이 반복된다. 대형사는 전담 안전관리 조직과 예산이 비교적 충분하지만 중견·중소 업체는 수주 가격과 하도급 구조 속에서 안전 설비 교체와 교육비를 줄이려는 유혹에 놓인다.

업계에서는 공공입찰 제한이 실제 안전 개선으로 연결될지 의문을 제기한다. 공공 공사는 수익률이 낮고 규제가 많아 대기업 참여가 많지 않은데, 제재가 더 강해지면 참여 자체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안전 투자 없이 공사를 이어가면 사고 위험은 누적된다.

이 딜레마를 풀려면 발주 단계에서 안전예산을 의무 반영하고, 낙찰가 심사 항목에 실질적인 안전 투자 계획과 과거 재해 이력, 교육 이행률을 높은 비중으로 넣어야 한다.

건설현장에 등장한 포크레인.

여름철 안전은 별도의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열 스트레스 지수에 따라 시간대별로 작업 강도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특히 가장 더운 시간대에는 철근 결속이나 거푸집 해체처럼 힘이 많이 드는 공정을 피하는 것이 좋다.

둘째, 그늘 휴게시설과 냉수·염분 보충을 상시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그늘막과 이동식 쿨링팬, 안쪽이 밝은 색의 냉감 안전모 라이너 같은 장비를 보급하는 방법이 있다. 셋째, 고령 근로자와 신규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짧고 자주’ 형태의 휴식과 물 섭취를 안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넷째, 온열질환 전조 증상인 어지럼, 메스꺼움, 두통, 과도한 피로를 현장 반장과 안전요원이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신호 카드를 도입하는 방안도 있다. 다섯째, 다국어 픽토그램과 색상 통일 표지를 현장 동선마다 설치해 언어 장벽 없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추락과 협착은 계절과 관계없이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 발끝이 걸릴 수 있는 위치에 케이블이 방치되지 않도록 전선 정리대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있으며, 개구부와 단차부는 난간·덮개·시건 장치를 동시에 적용하는 것이 좋다.

고소작업대는 이동 전 360도 회전 여부와 바닥 평탄 상태를 확인하도록 체크리스트를 표준화하고, 신호수와 작업자가 주고받는 수신호·무전 신호를 1대1로 맞추는 방법이 있다. 크레인 하역 구간은 바닥을 비닐 대신 미끄럼 방지 매트로 교체하고, 살수 작업 시에는 고소작업대 이동을 잠시 중단하는 것이 안전하다. 야간 작업에서는 작업등의 눈부심으로 물체 윤곽이 사라지지 않도록 확산형 조명을 배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교육은 서류로만 끝내기보다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다. 현장 입구에서 QR로 본인 확인을 하고, 그날의 위험요소 3가지를 사진과 아이콘으로 요약한 ‘오늘의 안전’ 콘텐츠를 1분 안에 확인하도록 운영할 수 있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근로자는 모국어 버전으로 자동 표시되게 하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개인보호구 착용 여부는 턱끈·안전화·추락 방지대 세 가지를 사진 인식으로 확인해 통과해야 출입 게이트가 열리도록 설정하는 방식이 있다. 고령 근로자에게는 무릎·허리 보호대 착용법과 무게 중심 옮기는 방법을 짧은 영상으로 안내할 수 있다.

신규 입사자는 첫 주에 고소작업과 중장비 근접 작업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상황극 형태로 배우게 하고, 반장·동료와 함께 위험 구간을 돌며 직접 위험 포인트를 지목해 확인하는 절차를 두는 것도 좋다.

발주·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 요소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추락 위험이 큰 외벽·개구부 주변에는 설계 단계에서 고정 난간과 안전망을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공정표에는 안전설비 설치·해체 시간을 별도 공정으로 반영하고, 양중 계획에는 하역 대기선과 보행자를 분리하는 동선을 명확히 그려 넣는 것이 필요하다.

하역대 주변은 손 끼임 방지 틈새를 기준에 맞춰 설계하고, 공정 간섭이 예상되는 구간은 BIM 화면을 통해 위험 겹침 여부를 확인해 배치하는 것이 좋다. 도면과 실제 배치가 달라지는 경우가 잦으므로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되 기록은 반드시 남기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외국인 근로자와 고령 근로자에 맞춘 건강관리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체력 수준과 과거 질환 이력을 고려해 무거운 하역을 배제하는 시간대를 설정하고, 연속 근무 시간 제한을 두는 방법이 있다. 반장과 안전요원이 동행해 산소포화도·심박 간이 측정을 실시하고, 위험 신호가 나타나면 즉시 휴식을 취하게 할 수 있다.

현장 의료함에는 얼음팩, 전해질 파우더, 자동제세동기와 사용법 카드, 일사병 응급조치 매뉴얼을 구비해 두는 것이 좋다. 현장 차광막은 바람이 통하는 구조로 설치하고, 콘테이너 휴식실은 냉방과 환기가 함께 작동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권장된다.

보험과 계약 조건도 개선이 필요하다. 하청사가 안전 설비를 대폭 교체하는 경우 원청과 발주처가 비용을 분담하는 조항을 표준계약서에 포함할 수 있다. 사고 이력 공시는 ‘건수’뿐 아니라 ‘재발 방지 조치 이행률’과 ‘교육 이수율’을 함께 공개하는 방식이 있다.

입찰 평가표에서는 무재해 일수보다 ‘중대 위험 개선 완료율’을 높게 반영해 실적보다 실효성을 평가하는 것이 좋다. 금융권에서는 대출 심사에 안전지표를 신용평가 항목으로 반영해, 안전 점수가 낮은 업체는 금리를 높이고, 안전 투자에 적극적인 업체는 자금 조달에서 이점을 얻도록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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