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 한형조의 유작 ‘두개의 논어’

1년에도 수십권씩 쏟아지는 논어 책들을 보면,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논어’ 학이편 첫 문장,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시작해 앵무새 같은 고어투 번역. 그 식상한 작업이 십중팔구다.
그러나 한형조의 논어를 보면서 눈을 다시 비비지 않을 수 없다. 한형조는 논어를 완전히 해체해서 한형조가 본 공자, 한형조가 본 주자, 한형조가 본 다산의 논어를 내놓았다. 무려 1천쪽이 넘는 벽돌책 ‘두개의 논어’에서 한형조는 1부 사건과 인물들, 2부 공자의 제자들, 3부 공자의 사상으로 논어의 ‘헤쳐 모여’를 시도했다. 논어 속에 숨어있는 역사적 상황과 인간 관계를 복원한 시도다.
논어는 만세사표, 즉 세세생생 인류의 스승 중의 스승이라는 공자 삶과 사상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에 일본의 이토 진사이는 ‘우주 제1서’라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주자의 나라 조선에서는 주자가 그어놓은 금 밖을 한치라고 벗어나면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을 각오해야 했는데, 평생 유교를 공부한 학자가 이처럼 공자와 논어를 샅샅이 난도질해서 다시 모자이크해 숨을 불어넣었으니, 전통적인 유학자의 틀을 넘어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정통 논어’로 알고 있는 것은 대체로 주자의 해석이다. 그러나 다산은 주자의 풀이가 잘못되었다고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방대한 문헌 고증을 통해 공자의 말씀이 송대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언어로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 한형조는 이 충돌 지점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진정한 공자의 가르침’을 가늠하는 지적 탐험을 이 책에 담았다.
그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주자와 다산의 대비는 단순한 주석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유학이라는 거대한 문명적 기획 안에서 ‘인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근본적 갈등이다. 주자는 철학자이자 명상가로서 우주론적 형이상학 속에서 도덕의 근거를 찾는다. 그에게 인(仁)의 완성은 도덕적 노력이 마침내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실천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경지다. 목공의 솜씨나 자동차 운전처럼, 처음에는 의도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익숙해지면 모든 의식적 행위가 떨어져 나가는 그 상태다. 반면 다산은 정치가이자 역사가로서 유교의 원리를 우주론적 형이상학이 아닌 ‘사회적 관계’ 속에서 되찾으려 한다. 다산이 보기에 주자학은 ‘하나의 이치가 인간과 우주를 뒤섞음으로써 형이상학의 늪에 빠졌고, 인간은 일상에서 무엇을 성취해 나가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형조는 이 대립을 절충하거나 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다. 그는 주자학과 다산 모두가 거시적으로는 이학(理學)에 속하며, 삶의 의미를 세속적 관행 너머에서 찾고 개인의 욕망을 제어하여 타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도덕’의 기획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본다. 두 체계의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그 공통의 토대를 놓치지 않는 시선이야말로 이 책이 단순한 논쟁의 중계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한국학대학원 입학 때부터 기숙사에서 동학 한형조, 김현과 한 방을 쓰며 절차탁마를 한 지음자인 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쓴 이 책 말미의 추천사를 보면 한형조는 동해안의 작은 마을 강구 출신인데 부산으로 가 경남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가라는 교사들의 권유를 거부하고 서울대 철학과를 가고, 학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한국학대학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진학해 석박사를 받았다. 권위적인 교수는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그를 버르장머리 없다고 하고 다른 교수는 수염을 깎으라고 타박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뱃사람처럼 거칠고 깨달은 자처럼 자유로운 야성의 자유를 지닌 인물이었다고 평했는데, 이 책 자체가 그런 성정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한형조는 불교로 동양학에 입문해 일상에서 구원을 모색하는 유학을 주로 공부했다. 다산의 고전해석학(경학)을 다룬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의 철학적 전환’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94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재직하며 동아시아 고전의 옛길을 파고들며, 문명의 비평적 전망을 탐색했다.
그는 2024년 7월 향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는데, 그의 제자들조차도 그의 부고를 보고서야 알 정도로 자신의 병을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최후의 유작이 된 이 책은 인간 한형조에 대한 깊은 그리움으로 읽지 않으면 안될 책이 되었다.
하여 ‘두개의 논어’는 단순한 고전 해설서가 아니다. 이 책은 조선 유학의 정통으로 받아들여져온 주자학적 ‘논어’와 다산 정약용의 해석을 정면으로 대비시키며,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공자의 모습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묻는다. 그는 공자를 성인의 전형으로 박제하지 않고,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던 사상가로 복원함으로써 주자와 다산이라는 두개의 해석 틀을 통해 공자의 사상을 새롭게 드러낸다.

책의 핵심은 주자와 다산의 해석 차이를 통해 공자의 본래 가르침을 가늠하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논어’는 주자의 주석을 통해 전해진 것이지만, 다산은 주자의 해석이 지나치게 형이상학화되었다고 보았다. 주자가 인간의 도덕을 우주적 이치와 연결하려 했다면, 다산은 그것을 구체적인 인간 관계와 사회 속에서 다시 찾으려 했다. 저자는 이 차이를 단순한 학설 대립으로 보지 않는다. 철학자이자 명상가였던 주자와,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다산은 서로 다른 시대와 현실 속에서 고민해 다른 결과를 빚어냈다는 것이 한형조의 풀이다. 그리하여 주자의 유학은 자연과 원리를 향하고, 다산의 유학은 현실과 관계를 향한다. 그러나 동시에 두 사상 모두 개인의 욕망을 절제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려는 ‘사회적 도덕’의 기획이라는 점에서 통한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저자의 문체와 시선이다. 그는 학술적 엄밀함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언어로 읽는 맛을 더한다. 공자가 군주의 권력을 ‘책임’으로 이해해야 나라가 흥한다는 대목을 해설하면서, 오늘의 정치 현실을 떠올리게 하고, 주자의 인과 서 개념을 설명하면서는 몸에 익은 기술처럼 도덕이 자연스러워지는 상태를 비유한다. 이러한 설명은 고전을 낡은 교훈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로 끌어온다.
이 책은 단순한 연구서가 아니라 한 학자의 삶 전체가 스며있는 기록이다. “공부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그 문장을 읽는 나를 알아가는 일”이라는 그의 말은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는 논어를 해석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해석했고, 주자와 다산을 읽으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오늘날 고전 읽기는 대개 교양의 장식으로 소비되거나 시험을 위한 지식으로 축소된다. 그러나 한형조의 ‘두개의 논어’는 고전을 다시 삶의 문제로 돌려놓는다. 공자가 왜 정치의 책임을 강조했는지, 왜 인간 관계 속에서 덕을 찾았는지, 그리고 왜 후대의 유학자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걸었는지를 집요하게 따져 묻는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두개의 논어’는 단순한 논어 해설서가 아니다. 한형조라는 한 학자가 평생에 걸쳐 동양 사상의 핵심을 투시하고,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려낸 기념비적 작업이다. 주자와 다산이라는 두 거인의 충돌을 통해 공자를 새롭게 읽는 이 책은, 동시에 전통과 근대, 형이상학과 역사 사이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책이기도 하다. 두개의 논어가 있다면, 이 책 자체가 ‘세번째 논어’다. 한형조의 논어. 그리고 그것은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조현 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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