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론 산재 못막아" 역발상 '자율예방' 전환…효과는?

강지은 기자 2022. 11. 30. 14:4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사내용 요약
고용부, 중대재해 처벌규제→'자기규율' 감축키로
산재사망 증가 우려도…이정식 "자기규율엔 책임"
노동계 "처벌, 한계 느낄 정도로 진행됐나" 우려도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2022.11.30. kmx1105@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정부가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핵심으로 하는 로드맵을 내놓은 가운데, 과연 실질적 효과를 낼 지 주목된다.

경영 책임자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오히려 산재 사망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규율 방식이 중대재해 감축에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고용노동부가 30일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현재의 '처벌' 위주 규제에서 벗어나 '자기규율' 방식으로 산재 사망 예방 체계를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처벌과 규제 중심 하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는 828명, 노동자 1만명당 사고 사망자를 나타내는 '사고사망 만인율'은 0.43‱(퍼밀리아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0.29‱)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특히 2020년 1월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면 개정, 올해 1월 중대재해법 시행 등 산재 사망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지만 만인율은 8년째 0.4~0.5‱대에서 머물고 있다.

고용부는 이를 처벌과 규제의 '한계'로 진단했다.

기업이 타율적 규제에 길들여져 자체적으로 위험 요인을 개선하고 투자를 늘리기보다 당장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서류 작업에 집중하거나 대형 로펌 자문 등을 통해 처벌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1월27일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지만, 본래의 취지와 달리 노동자 사망 사고가 오히려 증가한 것도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라고 고용부는 분석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산재 사망자는 51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8명 늘었다.

이에 정부는 노사가 사업장 내 위험 요인을 스스로 파악해 개선 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위험성 평가' 의무화를 중심으로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확립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우리와 유사하게 산재 사망 감소 정체기를 경험한 영국, 독일 등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기규율이라는 미명 아래 자칫 안전관리가 '방임'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처벌을 강화한 지금도 노동자 사망 사고가 증가하고 있는데, 자기규율 방식에선 산재 사망이 더 늘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자기 규율에는 책임이 따른다"며 "중대재해 발생 시에는 예방 노력의 적정성을 엄정히 따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부는 이와 관련 정기 감독을 위험성 평가 점검으로 전환하되,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해서는 수사와 기획 감독을 통해 엄중한 결과 책임을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2022.11.30. kmx1105@newsis.com

이 장관은 위험성 평가가 자의적으로 집행될 우려에 대해서도 "자의적 운용 가능성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등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며 "그런 일들이 없도록 관련 TF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 등의 사례를 들며 자기규율 방식의 실효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 장관은 "과거 선진국도 자기규율 예방체계로의 전환 과정에서 여러 사회적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일관된 정책을 지속 추진함으로써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감축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패러다임 전환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확신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간다면 우리 일터의 안전 수준도 그만큼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법 시행이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법 시행의 효과를 언급하며 자기규율 카드를 꺼내든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논평을 내고 "정부는 과연 현행의 규제와 처벌이 한계를 느낄 정도로 진행돼 왔는가에 우선 답해야 한다"며 "기업 처벌은 완화하고 노동자 의무만 강화한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재판이 평균적으로 3~5년 정도 걸린다는 것을 가정할 때 처벌 강화로 인한 효과성을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경영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안전보건규제 완화 내용만 곳곳에 박혀있다"고 했다.

다만 경영계 역시 자기규율 방식에 일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자율은 명목뿐이고 오히려 처벌과 감독 등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위험성 평가 의무화 등 새롭게 마련된 규정에 우려를 표했다.

이날 로드맵에 중대재해법이나 시행령 개정과 관련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정부는 중대재해법이 모호하다는 경영계 요구를 반영해 올해 하반기 시행령 개정을 예고한 바 있다.

다만 이 장관은 이날 "시행령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정부 부처, 여야, 노사, 전문가 간 많은 논란이 있었다. 로드맵에 시행령 개정과 관련한 모든 고민이 담겨 있다"고 말해 시행령 개정 작업이 더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kkangzi87@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