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이후, ‘응급실 뺑뺑이’ 대신 ‘전화 뺑뺑이’
[기승전21]
전국 53개 병원의 응급실 의사가 2023년에 견줘 약 41% 급감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밝힌 조사 결과(2024년 9월12일)다. 사례는 통계보다 아프다. 2024년 8월 열경련을 일으킨 28개월 여아가 수도권 응급실 11곳에서 수용 불가 통보를 받은 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9월에는 충북 청주에서 한 산모가 ‘양수가 샌다’며 119에 도움을 청했지만 75곳의 병원에서 거절당하고 구급차에서 6시간 대기하다 가까스로 치료받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허석곤 소방청장은 10월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응급실 뺑뺑이’ 등 구급대원의 업무 증가 지적에 “의료 파업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보면 업무량 증가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10월11일 김동욱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사무처장에게 현 상황에 대해 물었다.
—소방청이 일선 소방관들에게 언론과 접촉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노동조합이 8월23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응급실 뺑뺑이’ 관련 대책 마련 기자회견을 통해 구급대원의 현실을 알렸다. 그랬더니 소방청장님이 추석 연휴 무렵 전국 소방서장들이 모이는 지휘관 회의에서 언론 접촉을 통제하는 지시사항을 전했다. 핵심적인 내용은 언론과 접촉하려면 각 소방서장한테 보고하고 지시받고 나가란 거다. 일선 소방관들이 이런 상황에서 누가 언론에 얘기할 수 있겠나.”
—왜 언론 통제를 한다고 보나.
“보건복지부와 정부는 ‘응급의료 대란은 없다, 정상적’이라고 하는데, 사실 실제 상황에서는 힘들다. 전공의가 8천~9천 명 빠져나갔는데 ‘응급실 뺑뺑이’가 실감 나지 않겠나. 그런데 그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반발하는 거다. 소방청장이 정부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실제 현장은 어떤가.
“환자가 발생하면 응급실에 가기 전에 전화한다. 응급실에 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전화를 걸면 이런저런 사유로 ‘오지 말라’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화 뺑뺑이’다. 문제는 이게 통계에 안 잡혀서 예전과 비슷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다. 구급일지에는 첫 병원으로 옮겼는데 안 받아줘서 다른 병원으로 옮겼을 때만 기록에 남는다. 일지에는 실제로 옮겨졌는지만 기록되고 ‘전화 뺑뺑이’는 기록되는 게 아니다. 구급대원 본인만 알지 통계자료로 안 잡힌다.”
—소방관들은 애타겠다.
“예를 들면 현장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긴급환자가 발생해 일단 구급차에 실었다. 그런데 ‘전화 뺑뺑이’를 돌리다보면 구급차가 바로 출발해야 하는데 출발을 못한다. 받아주는 병원이 있어야 갈 게 아닌가. 그러면 지나가는 시민들도 이 현장을 보고 ‘왜 환자 실었는데 빨리 출발 안 하냐’고 하고, 보호자들도 계속 재촉한다. 구급대원들의 심적 부담이 크다. 압박을 심하게 받는다.”
—대도시와 지역의 차이는 어떤가.
“지역은 출동이 수도권처럼 많지 않다. 예를 들면 지역에선 구급대원이 하루 2~3건 출동할 경우 압박감을 크게 못 느낄 수 있는데, 대도시에선 하루에 10~20건도 출동한다. 그러면 계속 전화할 때마다 받아주는 곳을 찾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런데 지역은 지역대로 병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멀리까지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지원이 필요하다.”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소방은 ‘응급의료’에서 병원 전 단계를 맡고 있다. 우리는 ‘최초 발생, 상담, 이송’을 담당한다. 그런데 항상 보면 응급의료 대책을 만들 때 논의는 병원 진료 중심으로 한다. 의료진이 중심축이 되는 건 맞다. 그런데 논의기구에 소방을 꼭 포함해야 이송이 원활해지지 않겠나. 조직체계상 소방청과 보건복지부는 분리돼 있다보니 보건복지부 중심의 논의에서 소방청은 소외되는 거다. 법률을 제정하거나 이송책을 논의할 때 소방관들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대책이 나아질 수 있다.”
—‘이태원 참사’ 때 한겨레21에 ‘구급대원 트라우마’에 대한 말씀을 주셨는데, 요즘은 상황이 어떤가. 또 한겨레21에 바라는 게 있다면.
“태풍 때 급류에 소방관 두 명이 휩쓸렸는데 한 분은 순직하고 한 분은 살아남은 적이 있다. 그런데 살아남은 분이 3년 뒤 목숨을 끊으셨다. 소방공무원 특성상 약한 모습을 보여주길 꺼리기 때문에 동료라도 고통을 잘 모른다. 체계적 데이터로 관리가 돼야 한다. 또 심리상담이 외주업체와 1년짜리 계약을 통해 이뤄지는데, 친분이 생겨야 속 이야기도 꺼낼 수 있지 않겠나. 1년에 한두 번 봤는데 또 심리상담사가 바뀌어 있고, 내년에 또 바뀌는 식이다. 한겨레21에 특별히 바라는 건 없고 앞으로도 ‘응급실 뺑뺑이’ 등 소방 현안들을 잘 다뤄주면 좋겠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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